2020. 7. 8.물날. 갬

조회 수 249 추천 수 0 2020.08.13 03:29:47


 

제도학교의 아침.

이른 출근 뒤 숲의 정자에서 명상하다.

해가 잠깐 하늘을 열고 있었다.

건넛산 밑으로 기차가 지나갔다.

고단은 한데 그제도 어제도 잠을 설쳤더랬네.

엊저녁 늦게 많이 먹은 음식이 손발까지도 붓게...

 

가끔 오늘처럼 늦게 오는 등교  발열체크 담담교사가 있으면 자리를 지키기도.

발열체크는 학교지킴이아저씨를 더해서 진행되는데,

1호차가 들어오고 다음 차까지 20여분 간극.

그 사이 앉았는 아저씨를 일으켜 세워

손뼉치기도 하고 간단한 몸풀기를 한다.

아이들도 어느새 둥글게 서서 같이 하고 있는 양을 볼라치면,

절로 웃음이 자글거리는.

아이들이 등교개학 전에는 

이른아침 학교 둘레를 걷다 지킴이아저씨와 청소여사를 만나면

장갑을 벗으시라 하고 손뼉치기를 마주서서 하곤 했더랬지.

 

오늘 아침도 1학년 아이들과 논다.

놀이터로 갔다가 체육관으로 달려간다.

싫어라는 말이 제가 아는 모든 말인 양 대부분의 말이 그런 채밤이,

그간 그 말 대신 쓸 수 있는 말을 찾고 말하기를 훈련해왔더랬다.

같이 노는 덩치 큰 윤전이가 놀릴 때

울거나 엎어지거나 하는 대신 상대하는 말을 같이 찾아 쓰기도.

! 이제 말로 응대하고 있는 저 아이를 보라.

며칠 전 단상으로 공을 좇아 갔던 윤전이가 

아래 서 있는 내게 깜짝 놀란 목소리로 외쳤더랬다.

옥샘, 흰머리...”

말끝을 흐렸던.

저들하고 같이 뛰어놀 땐 할머니란 생각을 못했겠지.

그러다 높은 데 가 있으니 머리카락이 내려다 보였던.

그래, 이 할미가 그리 애쓰며 너들이랑 논다, 하하.

 

1교시에 예능실 문을 열고 환기를 시켜놓고 2교시 수업 준비.

악기들도 미리 쳐보며 습에 늘어진 줄도 매고.

나만 쓰고 있는 공간.

코로나19로 방과후 공부를 전면 하지 않고 있는 이번 학기라.

자폐를 앓는 진세는 악기 소리를 듣고 나 거기 가야한다고 대성통곡까지 했더라나.

 

2교시 1학년 아이들을 몰고 예능실로.

오늘은 그간 오지 않았던 예벽과 성상이까지 왔다.

(코로나19로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가정들이 여럿 있었다.)

모두 모인 1학년이라.

딱딱 박을 맞추는데, 멋지기도 하여라.

그럴 때 돋는 소름이 있지, 감동이 있다.
장구 치는 소리가 나니 대학 때 풍물 쳐봤다는 샘 하나도 기웃기웃.

멀리서 장구 가락에 신명을 냈다는 샘들의 인사도 받았네.

 

오늘까지 연수 하나를 다 들어야 하는 본교 특수샘,

그래서 내리 4교시까지 내가 다 수업을 하마 하였네.

3교시와 4교시는, 본교샘이 4학년들을 맡고 내가 6학년 수업을 하는데,

오늘은 같이.

6년 한동이가 먼저 왔다.

요새 대체로 앞 시간이 끝나면 제 교실에서의 쉬는 시간 대신

특수학급으로 일찍 오는 그이라.

그러면 작은 간식 하나와 음료를 마시며 4학년들을 기다린다.

엄마 없이 할머니랑 사는 그 아이,

이렇게라도 챙겨본다.

1,2교시를 한 덩어리로 3,4교시를 한 덩어리로 이어 공부하니

그 사이 전이시간이 20.

제법 긴 쉬는 시간인 셈.

잘 됐다. 이거 먹고 같이 뭐 좀 보자.”

다른 것에 견주어 퍼즐을 월등히 잘하는 줄 지난 달날 찾아가는 영어캠프를 같이 하며 알았네.

잘하는 줄 자기도 몰랐다고.

오늘 같이 인터넷에 들어가 퍼즐을 사주다.

500피스를 산다는데, , 일단 100피스를 사야지 않았나 싶기도.

 

2시부터 학부모 상담 두 시간.

세 아이를 키우는, 둘째가 장애를 가진 엄마였다.

찻자리에 놓인 다화를 가리키며 물었네,

이 꽃이 예쁜 줄은 아시는가,

짙어가는 저 초록이 보이기는 하신가 하고.

애 잡지 말고 엄마 삶을 보살피시라,

자신의 영혼이 좀 쉬게 해주십사 했다.

울고, 반성하고, 결심하시는 과정이었네.

 

물꼬에서는,

달골 길을 하얀샘이 예취기로 정리하고,

본관 모둠방 장판을 바꿀 준비를 하고 있단다.

인근 도시의 한 대학 기숙사에서 나온 멀쩡한 장판이 얼마쯤 들어왔더랬고,

낡은 물꼬의 살림 한 구석을 그렇게 또 바꾸게 된.

물꼬 식구들이 돌아가며 다녀가는 날로 둔 물날이라.

오늘도 샘 하나 와서 마을 안에 살던 집을 카페로 낸,

작은 정원을 잘 가꾸는 곳에서 차를 마셨더랬네.

그가 받으려고 했더라는 위안이었는데,

내게 위문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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