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9.나무날. 뿌연 해

조회 수 260 추천 수 0 2020.08.13 03:30:22


 

여기는 제도학교.

수업을 시작하기 전 1학년 아이들이 특수학급을 들어와서 논다.

함께 보드게임을 하고 체육관으로 가고,

이제 놀이터로 가자 하는데 1교시가 다가와 있다.

우리에겐 내일이 있잖아!”

그래서 내일 또 우리는 즐겁겠다.

 

본교 교장샘이 분교 학부모 대상 교육을 요청했다.

제도학교를 오던 때부터 말은 있었으나

코로나19로 학사일정이 여러 차례 바뀌는 동안

다른 일정들도 자리를 잡기 어려웠던.

오는 22일 물날 하자 했다.

강의라기보다 차나 나누며 아이들 얘기를 다루겠다 했네.

사실 아이들보다 어른들 삶을 말하는 자리가 될 테지.

 

여름방학 중 근무일을 조율 중이다.

본교와 달리 분교는 교사들이 돌아가며 늘 있어야 한다는데,

넷이 3주를 보내려면 주말 빼고 사나흘씩 맡아야.

물꼬 계자를 치르고 주말에 정리를 바삐 한다면

817일 달날부터 가능할 수 있겠는, 몸이야 좀 고단켔다만,

20일까지 나흘 하겠노라고.

21일은 서울걸음을 계획하고 있고.

출판사 한 곳에서 기획한 책을 내게 쓰라 요청한 일이 있었더랬다.

그때 얼굴 보고 구체적으로 논의키로.

 

1학년 자폐아는 어제 수월했다고(돌보기가) 오늘도 그런 건 아니었다.

통합학급 담임교사랑 그 아이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었더랬는데,

나는 장애교육의 근본은 태도(장애를 보는) 문제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했다.

우리가 교사이기 이전 인간으로

사람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졌는가 하는 문제라는.

그는 내 의견을 들어보려는 의지가 없어보였는데,

내 수업에 대한 반감, 나아가 대안학교에 대한 못마땅함이 있는 듯.

조율의 가능성이나 들어는 보겠다는 태도조차 없었고,

우리는 곧 예의를 가장해 대화를 멈췄다.

그는 가끔 내가 하는 수업, 그러니까 대안학교 교사라는 정체성과

제도학교 교사라는 자신의 정체성 사이의 거리에 대해 말하고는 한다.

예컨대 내일은 없듯이 온몸으로 뜨겁게 수업을 하고 나서면

제도학교에서는 늘 그렇게 수업 못한다는 말부터 대뜸한다.

어제 2교시 풍물 수업도 그런 하나였을 것이다.

마치 내일이란 없겠듯이 온 신명으로 수업을 하니까.

잠깐은 그럴 수 있겠지만 하루 종일 그럴 수 없다는.

오해가 있다면 그게 그의 잘못이겠는가, 잘 말하지 못한 내 잘못일 지라.

나도 내리 4교시까지 수업도 여러 날 하는디.

진도도 빼야 하고...


고교 1년 때 만난 국어선생님은 내가 교사 노릇 한 뒤로 내 수업 진도에서 모범으로 삼는 분이다.

어떤 교사는 아주 빽빽하게 교과서에 써야했던 반면

당신은 대개 설렁설렁 수업을 하셨는데,

참고서의 숱한 설명들보다

우리한테 뭔가를 물었고 생각하게 했고 그리고 대답하는 것들로 수업이 채워졌다.

가끔 그런 수업으로 전국 단위나 시도에서 주관하는 시험을 커버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

막상 시험지를 받아보면 당신이 수업하신 게 다 있었다.

국어성적이 중요했던 나는

우려했던 그 학기에도 국어에서 크게 어렵지 않게 좋은 성적을 받았다.(국어만 잘했던 걸로 )

큰 줄기, 당신은 그걸 짚고 계셨던 거다.

교과서를 하나하나 다 따져가지 않아도 큰 줄기를 놓치지 않았던.

물론 국어라서 가능하기도 했을.

수학에선 또 다른 게 요구될 수도.

예를 들면 앞의 것이 안 되어 있으면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한다든지 하는.

그런데, 우리 장사 하루이틀 하는가,

십년도 넘어 되게 학교 현장에 있었으면

진도 그런 걸 무에 그리 골머리 앓나.

교육 안에서 진도 너머 더한 무엇을 할까를 뽑아낼 수 있지 않냐 말이다.

정작 진도에 허겁지겁하고 있을 때 

그야말로 교육에서 정작 챙겨야 할 것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야 할 것.

 

저녁초대를 받았다.

제도학교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 교사의 집이었다.

부부가 다 교사다.

“10? 15?”

동료가 자신들의 집을 방문한 게 그만큼 됐다나.

요새는 다들 퇴근하기 바쁘고,

학교를 벗어나 같이 뭔가 공동의 것을 하거나

서로 만날 일이 잘 없다고.

댁이 전주라는 그의 남편이 이 여름에 김치수제비를 만들어 내다.

내가 퍽 좋아한다는 말을 진즉에 들으셨더라는.

너무 먹어 바른 자세로 앉았을 수가 없었고,

돌아와서도 앉을 수가 없어 한참을 서 있었더랬네.

초대의 첫 목적은 사실 그 댁 청년의 고민이 있었던.

그의 방에서 그의 삶을 들었다.

책을 가까이 하는 아이라 나눌 이야기가 많았네.

누가 들으면 때리는 줄 알겠어!”

한바탕 눈물바람으로 자신을 털어내는 자리였더라.

힘내시라.

 

물꼬에서는,

남자방 바닥 장판을 바꾸다.

그러자면 짐들이 다 나와야 하고, 낡은 장판을 걷어야 하고,

다시 깔아야 하고, 청소를 하고, 다시 짐을 넣어야 하고,.

학교아저씨가 찬찬히 혼자 하셨더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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