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24.나무날. 흐림

조회 수 343 추천 수 0 2022.04.22 13:39:59


생강나무 꽃이 언제 저리 다 폈더랬나.

목련 봉오리들이 몽글거리고 있다.

 

겨우내 가물어 바닥을 드러낸 아침뜨락의 밥못과 달못이었다.

비도 비고 얼었던 땅이 녹아서도 산이 머금고 있던 물들이 내려왔을.

메마른 것들은 마음도 푸석거리게 한다.

출렁이는 물이 마음도 넉넉하게 해주었다.

 

달골 대문께 울타리를 치려고 한다.

허술한 대문만 있었다. 그것도 경운기 정도 지나다닐 공간은 남긴.

트럭은 함부로 들어오지 마시오, 정도를 말하는.

기숙사 앞마당을 지나가야 하는 어느 댁 밭도 있고, 산소도 또한 있는데,

다른 길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고

차량이 드나들 건 더욱 아니라(우리 일에도 차량 통행을 조심하는 마당인)

달골 관리를 돕는 준한샘과 울타리를 치기로 최종 논의를 끝내다.

오랫동안 사람들이 통행해왔기에

시골 마을 정서상 나름 합의점이 지금까지 달았던 대문이었는데,

그 대문에도 가타부타 말이 없던 게 아닌.

경운기는 물론이고 심지어 굴착기도 말없이 밀고 들어온 일이 다 있었다.

바르셀로나로 떠났던 1년의 공백기가 좋은 구실이 되어주어

그 대문이라도 달릴 수 있었던.

이제 더는 밀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달골에서 더 많은 교육일정이 이루어질 계획이어서.

남은 건 울타리를 어떻게 만들까 하는 방식과 재료.

그에 대해서도 우리 살림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 정도까지 대략 가닥을 잡다.

식목일까지 준한샘네 일이 목구멍까지 찰 때이므로

4월 중순께 작업하기로.

자재만 들어오면 일이야 구성원들 손으로만도 될.

 

달골 오르는 길에 가로등 하나 있다.

대문에 이르기 100미터 전 전주에 달린.

오래 되었고, 깜빡거렸다.

이장님이 살펴 면에 신청을 해두었다.

오늘 달았노라는 연락이 왔다, 살펴보라고.

밤에 그 아래 갔다.

LED등이 달려있었다.

이 길을 밤에 걸어 다닐 일이 그리 있지는 않지만,

불빛 하나 밝아진 것에도 안전감이 매우 높아졌다.

 

오래 묵혀두고 있는 간장집을 들여다보았다.

더는 사람이 살기 어렵겠다.

유리가 깨져있는 현관마루 문짝은 가장자리 나무들이 너들거린다.

문갑만 달골로 옮겨 쓰기로 한다. 서랍 안에 든 물건들을 치워내 두었다.

날 받아 사람 손 있을 때, 내가 좀 더 힘을 낼 때 아주 올리리라 하고.

 

상심(傷心)이 깊었다.

잠으로 도망가는 대신 책을 폈다.

그럴 때는 더 깊이 문장들이 들어와 앉는다.

책에 기댈 수 있어서 고마웠다.

사실 그 누구도 나 자신을 다치게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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