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4.불날. 흐림

조회 수 413 추천 수 0 2022.01.08 15:49:28


바람이 많이 불었다.

기온은 아침에 0도까지 올랐다.

연일 학교아저씨는 땔감을 마련하는 중.

운동장에서 작업해 수레로 화목보일러실로.

낙엽을 쓰는 게 날마다 하는 소일거리이기도.

 

며칠 전 운동을 심하게 해 어깨를 가볍게 다치다.

침을 맞고 물리치료 중.

천천히 움직이는 덕분에 책을 뒤적일 시간도 넉넉한.

 

(...) 그 안엔 책이 가득 들어있었어. (...) 특히 그 책 마지막 장에 뉴펀들랜드의 고대 화산 활동에 관한 

연구가 나왔는데 책에서 뉴펀들랜드라는 이름을 보기는 모두들 그때가 처음이었다네. 그것이 우리의 

지적 욕구에 불을 붙여 지적 혁명이 일어났지. 뉴펀들랜드가 책에 나온 것 말이야. 그동안 우린 세상과 

동떨어져 살고 있다고 생각했거든.

 

애니 프루의 <시핑 뉴스>를 펼치고 있었다.

나는 그가 그리는 공간에서 대해리를, 그리고 그 속의 물꼬를 만나고는 한다.

, 그는 낱말과 문장부호와 문장을 얼마나 꼭 맞게 쓰는 작가이던가.(번역의 힘도 크겠지.)

뭐 하나 되는 일 없는, 모든 것을 잃은 남자가 두 딸과 고모와 함께 펀들랜드로 향한다.

사람을 잡아먹는 바다와 모진 바람과 척박한 바위투성이의 땅에서,

가십만 싣는 신문을 내는 곳에서,

바다를 두려워하면서도 악착같이 그곳으로 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거친 자연과 이상한 사람들이 가져다주는 온기를 엮어낼 수 저 작가적 힘이라니.

멀리 있기는 한데 별반 우리 삶과 상관없이 돌아갔던 세상이

우리를 포함한 세상이 되며 가져오는 인식의 확장,

거기 책이 있었다.

한 인간이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

문장과 서사가 주는 즐거움에 흠뻑 젖다.

 

2017년 전미도서재단의 평생공로상을 수상할 때

그가 한 연설도 그의 소설처럼 인상 깊게 읽었다.

카프카의 암울한 작품들이 연상되는, 절망과 부조리의 시대에도 행복한 결말을 꿈꾸던.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무시되었던 옛 가치와 열망은 여전히 명맥을 유지합니다. 진실, 타인에 대한 

존중, 개인의 명예, 정의, 공평한 나눔 같은, 유행에 뒤진 가치들에 우리는 아직도 애틋한 감정을 품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가치를 이루기 위해 그저 노력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죠.

우리는 여전히 행복한 결말을 꿈꿉니다. 살면서 그런 결말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폴란드의 시인 

비슬라바 심보르스카는 엄혹한 현실과 해피엔딩에 대한 열망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작가의 딜레마를 잘 포착했습니다."

그가 비슬라바의 위안’ (Consolation)을 읽었다.

찬찬히 읽어본다.

 

먹구름 가장자리로 빛나는 햇빛 같은 희망은

따라서 필수불가결하다

연인들은 재결합하고, 가족은 화해하고,

의심은 해소되고,

정절은 보상받고, 재산은 도로 찾고,

보물은 발견되고,

뻣뻣하던 이웃들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화해하고, 명예는 회복되고,

탐욕은 징치되고, 나이든 하녀는 괜찮은 목사와 결혼해 안정을 찾고,

말썽꾼은 다른 세상으로 사라져버리고,

문서 위조범들은 계단 아래로 내던져지고,

유혹꾼들은 억지 결혼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리고,

고아들은 피난처를 찾고, 미망인들은 위안을 얻고,

자만은 망신을 당하고, 부상자는 치료를 받고,

탕아는 집으로 돌아오고,

슬픔의 잔들은 바다로 내던져지고,

손수건은 화해와 기쁨, 축복의 눈물로 젖고,

1장에서 길을 잃고 사라졌던 개 파이도는

마지막 장에서 반갑게 멍멍 짖으며 나타나고.

Hence the indispensable
silver lining,
the lovers reunited, the families reconciled,
the doubts dispelled, fidelity rewarded,
fortunes regained, treasures uncovered,
stiff-necked neighbors mending their ways,
good names restored, greed daunted,
old maids married off to worthy parsons,
troublemakers banished to other hemispheres,
forgers of documents tossed down the stairs,
seducers scurrying to the altar,
orphans sheltered, widows comforted,
pride humbled, wounds healed over,
prodigal sons summoned home,
cups of sorrow thrown into the ocean,
hankies drenched with tears of reconciliation,
general merriment and celebration,
and the dog Fido,
gone astray in the first chapter,
turns up barking gladly
in the l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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