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수행.

아침뜨락을 걸었다.

비 살풋 내리는데 거니는 데 그리 불편치는 않았다.

어제 같이 심었던 잔디를 밟아주었다.

비가 오니 물을 주지 않아도 되어 고마웠다.

나오면서 11학년 남학생이 말했다.

물꼬 날씨 정말 신기하네요!”

쨍해서 마음을 풀어주는 하늘이었다.

 

이거요...”

뜨거운 물을 넣은 보온주머니를 간밤에 주었더랬다.

아이는 그걸 또 잘 챙겨 돌려주었다.

더러 방에다 그냥 두기도 하는 걸.

성격은 또 얼마나 좋은지.

저리 세세하게 다 반듯하려니 저가 그토록 힘들었던 게 아니었을지.

괜찮아, 좀 못해도, 좀 안 해도!

 

학교에 내려와 수행방에 들어 해건지기를 했다.

몸을 풀고, 대배 백배를 하고, 그리고 좌선했다.

앞에 있는 저 아름다운 존재를 위한 기도로 동행했다.

아이가 울었다. 저 아래에서 올라오는 감정이 있었기에.

왜 그런가 물었고, 들었다.

눈물이 흐르듯 고였던 상처도 흘러갔음 좋겠다.

어제의 힘든 노동에 오늘 안 쓰던 근육까지 썼으니 여간 고단하지 않겠다.

그런데도 계속 잘 (일정을) 따라오고 있었다.

 

아침을 먹었다.

아이가 두 차례나 배식대로 가서 음식을 더 가져왔다.

영혼의 양식으로 먹는 것 같아 고마웠다.

실타래가 이어졌다.

그가 쓴 글을 보여주었다.

부모도 담임교사도 아이가 친 막으로 답답해하는데,

낯선 이곳에 와서는 자기를 다 드러낸다.

그가 가까운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은 지 달포가 넘어 되고 있는 아이였다.

역시 가족상담과 함께하는 기회가 있어야겠다.

 

갈무리 글을 다 쓴 아이에게 가벼운 낮밥을 멕였다.

아이가 낮 버스를 타고 떠나자 다시 묻어오는 비.

그제야 식구들이 낮밥을 챙겨먹고 잠시 숨돌렸다가,

 

다 저녁에 아침뜨락에 들어 흙일을 좀 하다.

비가 있었기 피하느라 늦었다.

하는 중에도 비가 흩뿌리기도 했으나 일을 그만둘 만큼은 아니었다.

며칠 전에 구절초 뿌리가 얼마쯤, 수선화 알뿌리도 얼마쯤, 낮달맞이도 얼마쯤 왔더랬다.

구절초는 감나무 아래 심었다.

땅을 고르고 돌과 뿌리들을 추려냈다.

간격이 멀면 그 사이로 풀이 채우고 그러다 그만 풀에 잡아먹히기도 하니

너무 멀지 않게 심었다.

수선화 알뿌리는 옴자의 회양목 울타리 안에다 한 동그라미로 심었다.

낮달맞이는 대나무 낮은 울타리와 벽돌길 사이로 얼마쯤 심었다.

봄을 더욱 기다리게 하는 존재들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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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집중상담(이라고 하지만 1박2일 여행에 가까웠던)을 하고 남은 갈무리글이다.

늘처럼 맞춤법이 틀리더라도 고치지 않았으며,

띄어쓰기도 가능한 한 원문대로 옮겼다(그게 아니라면 한글 프로그램이 잡아주었거나).

다만 의미 전달이 어려운 경우엔 고치고, 띄워줌.

 

11학년 배**:

남기는 것 없이 소중이 다루시는 선생님의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고 모든 것에 감사하시는 모습에 존경스러웠다

걷기만 해도 뿌듯해지는 느낌을 받으며 시간이 느리게 가서 시간의 소중함과 여유를 알게 되었다몸을 스트레칭하면서 

병원에서보다 시원한 느낌을 받아 난 세상을 다 아는 것이 아니고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1. ‘물꼬 한바퀴’: 자립심과 독립성을 기를 수 있을 것 같으며 소박하지만 다양하며 여러 가지 창의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임을 알 수 있었다.

2. ‘아침뜨락’ 잔디심기(15:00~18:00, 3시간): 처음엔 나태한 마음가짐으로 저 정돈 할 수 있겠지라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하여 

거의 10분 만에 퍼지고 한계가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로마에는 로마에 법을 따라야 하지 않는가 밥을 먹었으니 낙장불입으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하다보니 

오기가 생겨 끝까지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 들어서 나름대로 끝맞춰서 뿌듯하였다사실 기억나지 않는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냥 겁나 힘들었다.

3. 07:00 아침뜨락 걷기수행아침에 진짜 너무 졸렸다솔직히 귀찮았다밖에서 걷다보니 어제 못 보던 것들이 눈에 보여 

나름대로 만족하였고 씻고 비가 안 와서 진짜 물꼬 날씨 신기하였다.

4. 아침 해건지기(수행방): 수행시간에 밥을 먹지 않으니 힘이 나질 않았다몸을 움직이지 않았어서 너무 뻣뻣해진 거 같아 

놀랐다발을 당기고 싶었지만 잘 당겨지지 않았다가부좌하면서 옛날 생각이 났는데 솔직히 가부좌는 하기가 싫다...

5. 실타래(이야기 나눔): 이야기는 하기 싫었다하지만 싫은 티를 내면 기분이 안 좋아하실 걸 알기에 이야기를 했다

딥하게 얘기하고 싶진 않았다막상 얘기하고 잘 받아주시니 말이 술술 나온 거 같다어제 일하고 무릎이 아작났는데 

앉지마시라고 하셔서 솔직히 서운하였다.

선생님이 이미지와 다르고 맘에 든다고 하셔 기분이 좋았다일을 하면서 선생님 아들 분이 중3까지 일을 하셨다 했는데 

진짜 힘들고 존경스러웠다내가 만약 일만 했으면 모든 것을 잘할 수 있을까궁금했으며 여기 오는 다른 사람의 얘기도 듣고 

끝나고도 찾아오니 선생님이 얼마나 잘해주셔서 그렇지궁금함이 들었다○○쌤이 추천해주신 이유를 알 거 같았다

마음쓸 일이 별로 없고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밥이 기가맥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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