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꼭대기가 눈을 인 아침이었다.

교무실에도 난로를 들였다.

가마솥방에 먼저, 다음은 책방, 그리고 가장 늦게.

겨울에는 교무실에서 작업하는 날이 많지 않으니.

가마솥방은 연탄이 계속 들어가고 있고, 책방은 일정이 있으면 연탄을 때고 있다.

 

양면 벽시계가 하나 들어왔다. 지름 15cm.

작은 공간에 쓰임이 좋겠지. 시각을 보기보다 장식에 가까운.

사이집 툇마루에 걸었다.

풍경이 달렸는데, 종 아래 물고기가 떨어지고 없었다.

두어 개의 풍경이 가까이에 있는 공간이니 굳이 소리를 듣자고 할 것까진 아니다.

얇은 플라스틱 재질의 받침으로 물고기모양을 오려 달아 구색만 갖춰주리라 한다.

 

화장실 문제는 어쩌니?”

간밤 90분이나 이어졌던 부모상담에서 적바림해둔 것을 들여다본다.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11학년 아이는 두어 달 가까이 방을 나오지 않고 있다.

8학년 1학기 때 무려 다섯 달을 그리 한 적이 이미 있었다.

어쩌지 못하던 부모는 마침내 119를 부르고 정신병원에 도움을 요청했다.

한 달을 치료받고 나왔고, 학교는 자퇴처리 되었다.

이후 검정고시를 치고 고교를 갔던.

최근 아이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그의 마음은 어떤 걸까?

부모의 양육방식에서부터 학교, 친구, 그를 둘러싼 환경들을 살펴본다.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까?

식구들이 모두 집을 나가고 없을 때 거실을 나오기는 하지만,

사내아이라 패트병으로 화장실을 대체하고,

그마저도 최소화하기 위해 최대한 먹지 않는다고.

밥을 방 앞에 놓아주던 엄마도 지쳐 이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단다.

한 광역시는 은둔형외톨이 5개년 기본계획을 추진하고

내년부터 지원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한다.

전 사회적 문제라는 의미이다.

정신과에서 여태 진단하던 유형의 정신질환과는 다른 문제라고들 한다.

사회의 삶에 맞서 살아가는 것에 두려움과 불안, 혹은 직면한 문제에 대한 회피,

그런 것으로부터 가장 안전하다고 여기는 곳이 방이 된 듯.

기다리는 것도 필요하고 적절한 개입도 필요할 텐데,

마냥 기다리는 것이 해결은 아닌 걸로 보인다.

부모의 기대치가 버거워, 자기 자화상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좌절로, 

갖가지의 이유로 방문이 닫혔을 것이다.

그 방에서 자신이 바라는 존재로 세상에 나가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든 까닭을 찾으려 한다. 그래야 해결도 할 수 있다고.

나는 하면서 힘을 낸다라는 말을 자주 생각한다.

모든 것이 준비되면 방문을 열고 나가자, 그런 생각보다

현실적인 변화를 위한 작은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는 게 방법일 수도.

뭔가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 때까지 쉬고 또 쉬고 쉬어주기.

하지만 그러는 날들에도 단 한 가지최소한 그건 하겠다는 거 생각해보시기.

꾸준히 잊지 않고 하나를 하고 있으면 어느 날 일어설 힘이 되고 세상을 나갈 수 있음!”

아이에게 문자를 넣었다.

실천할 단 한 가지’, 그걸 같이 찾아보는 걸 첫 번째 단계로 두었다.

 

품앗이 한 샘의 메일이 들어와 있었다.

한 대학교에서 같이들 왔을 땐 한 단체에서 덩어리로 온 특유의 성향대로

개별로 감정이 닿는 부분이 약했다.

혼자 다시 온 두 번째에야 비로소 물꼬 식구가 된 듯했던.

4학년이 되니 쉽지 않을 걸음, 그래도 오려 애써본다는 소식과 함께

올해 교원대에 품앗이 자리를 몇 줄 수 있겠냐는 질문이었다.

지난 10년은 물꼬에서 자란 아이들과 함께 계자에 또 한 기둥을 맡아준 그네였다.

세 자리를 그 쪽에 주기로.

손전화로 짧게 답할 수도 있으나 몇 줄 더 쓰고픈 마음 있어 오늘은 넘기고 메일을 챙기기로.

몇 해 전부터 샘들 자리가 먼저 차고 뒤늦게 아이들 신청이 있다.

올해 계자는 어떻게 흐를 것인가.

계자가 2026학년도 겨울계자를 끝으로 막을 내릴 예정이다. 서른세 해를 하고 마칠.

다음은 또 다른 질과 형태의 일정이 이어질.

아주 먼 날일 줄 알았는데, 고작 6년이다!

연한을 두니 더 열심히 마음이 가는 계자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5816 2021.11.28.해날. 맑음 옥영경 2021-12-30 375
5815 2021.11.27.흙날. 맑음 옥영경 2021-12-30 365
5814 2021.11.26.쇠날. 맑음 옥영경 2021-12-30 308
5813 2021.11.25.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1-12-30 330
5812 2021.11.24.물날. 흐림 옥영경 2021-12-29 322
5811 2021.11.23.불날. 흐림 옥영경 2021-12-29 330
5810 2021.11.22.달날. 먹구름과 해와 비와 우박과 바람 옥영경 2021-12-24 415
5809 2021.11.21.해날. 흐림 옥영경 2021-12-24 352
5808 2021.11.20.흙날. 가끔 구름 옥영경 2021-12-24 357
5807 2021.11.19.쇠날. 맑음 옥영경 2021-12-23 482
5806 2021.11.18.나무날. 달빛 좋은 밤 / 수능 옥영경 2021-12-23 329
5805 2021.11.17.물날. 오후 흐림 옥영경 2021-12-23 315
5804 2021.11.16.불날. 맑음 / 폴 오스터를 떠올리는 밤 옥영경 2021-12-23 403
5803 2021.11.15.달날. 맑음 / 7mm 피스 하나 옥영경 2021-12-23 365
5802 2021.11.14.해날. 가끔 생각난 듯 지나는 구름 / 지금은 엉터리가 아닌가? 옥영경 2021-12-22 343
5801 2021.11.13.흙날. 해와 구름이 번갈아 드는 옥영경 2021-12-22 459
5800 2021.11.12.쇠날. 비 근 오후 옥영경 2021-12-22 340
5799 2021.11.11.나무날. 서울 맑음, 대해리 흐림 옥영경 2021-12-22 357
» 2021.11.10.물날. 이슬비 / 부모상담: 은둔형 외톨이 옥영경 2021-12-22 362
5797 2021.11. 9.불날. 비 갠 오후 / 집중상담 이튿날 옥영경 2021-12-20 358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