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좋아서, 계절이 좋아서, 사람들이 좋아서 좋은 날!

 

날이 밝기 무섭게 아비와 아들은 계곡으로 갔다.

낚시를 좋아하는 아버지의 차에는 늘 도구들이 실려 있었다.

주말이면 정오가 다 돼 일어난다는 아들인데,

아버지를 따라 마을을 건너는 계곡에 들었다.

한 시간쯤 흐른 뒤 돌아온 두 사람 손에는

손바닥만 한 버들치와 어린 물고기 두 마리가 있었다.

잡은 물고기의 크기는 현장에 있는 이들만 알지, 하하.

사실 손바닥만 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손바닥을 세로로 이등분한 크기였다.

패트병에 쑤셔 들어갈 수 있었으나 나올 수는 없었던.

이 골짝에서 이렇게 큰 거 처음 봐요!”

정말이었다.

그간 봤던, 가장 큰 것보다 세 배는 족히 컸다.

추운 곳이라 물고기가 작아요. 추우면 잘 못 커요.

지렁이라도 있으면 더 잡았을 텐데...”

아쉬워하는 아버지였다.

 

이른 아침 사람들이 떠나게 되었다.

그래도 밥은 먹고 나서라고 했다.

예정대로는 빵을 준비한 아침이었다.

찬 아침 더운 국물이 있으면 좋겠지.

08시 가마솥방에서 만나기로 했다.

낚시를 끝낸 부자와 천천히 마을로 내려서며 민들레를 캐온 엄마가 들어섰다.

예수 믿으세요. 그래야 천국 가요!”

떠나는 엄마의 마지막 말은 그랬다.

암치료를 받는 동안 우울증으로 고생했고 신에 기대며 어려운 시간을 건너오셨더란다.

인간은 나약해요.”

그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나 그것의 결과로 무엇을 믿는지는 각자의 몫이겠다.

콩나물국밥을 내며 갖은 색깔의 고명을 냈다. 정성을 기울였다는 말이다.

 

바삐 떠나 미처 못한 말들이 뒹굴었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살기 쉽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남들처럼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대해서 우리 좀 생각해보자 그런 말.

매우 적극적인 아버지의 태도에 감명받았고,

당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가족들이 어쩌나 불안을 갖고 계셨지만

그건 동시에 이 시대 범부들 모두의 공통된 걱정이라며

이 순간도 충분히 누리기도 하자는 말씀도 드리고 싶었는데.

 

사람들을 보내고 설거지를 끝낸 뒤 부엌을 돌아보고

수행방에 들어 뒷정리를 한 다음 달골에 올랐다.

그제야 보일러를 껐고, 아래위 사람들이 쓴 공간들을 훑었다.

이불이 매우 가지런히 개켜져 있었고,

바닥에 흘린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았다.

잡은 물고기가 든 패트병을 가위와 함께 밥못으로 가져갔다.

연못에 넣으세요.”

밥못에 계곡으로부터 열두 마리의 버들치를 모셨다는 얘기를 기억한

학생의 아버지가 한 말이었더랬다.

힘차게 못의 바위틈으로 달리는 물고기들이었다.

 

좀 졸았다. 쇠날 일정을 준비하는 걸음이 좀 급했다. 그러면 힘이 들었다.

해가 기울 때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틀 동안 써서 보내야 할 글이 하나 기다리고 있다.

관련한 메일을 그제야 열었다.

긴 글은 아니나 마음을 많이 쏟아야 할 일이었다.

모레 정오께 보내기로 한다.

 

마을에 새로 한 가정이 들어온 지 한해가 넘었다.

언제부터 들여다본다 했는데,

좀 있으면 추워서 어렵고, 봄이 오면 또 들일이 바빠져 또 한 해가 흐를 판.

들리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저녁밥 대신 이러저러 주워 먹은 걸로 속이 더부룩하던 참,

걸으려고 했으니까.

인사를 나누었다.

교류를 할 만한가 서로 간을 보았겠지.

물꼬가 아니고는 새로 사람 만나는 일에 피로를 느끼고는 한다.

누군가를 새로 만나고 알아가고 그런 일에 생기를 느끼기엔 좀 오래 산 듯.

서양화를 전공했고 사진을 찍으며 현재 목공일을 하고 있었다.

관심사를 나누기에는 좋겠다.

먼저 이 마을에 들었다고(그게 벌써 20년도 더 됐는 걸) 별반 잘 아는 것도 아니지만

물꼬가 나눌 게 있다면 또한 기꺼이 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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