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무슨 대단한 것도 아닌데 하루를 여는 것조차 엄청난 각오를 요구하고는 한다.
나는 그렇다.

그것도 자주 그렇다.

오늘도 몸을 끌고 와 요가매트 위에 놓았다.

살 거라면 움직여야!

물꼬 기록들을 좀 챙기고,
학교아저씨 일로 우체국을 모셔가 볼일을 보고

농협마트에서 몇 가지 장을 보고 들어오다.

해가 짧은 멧골, 해는 벌써 지고 어둠이 바삐 오는데,

어여 제습이와 가습이 산책을 시킨다.

 

길게 늘어져 자유롭던 제습이를 묶은 줄이 짧게 기둥에 묶여있다.

땅 표면을 따라 길게 한 줄로 있는 철삿줄이 있고,

제습이가 묶인 사슬 끝에 달린 고리가 거기 달려

한껏 움직이도록 되어 있었는데,

바닥의 철사줄이 울퉁불퉁해져 자꾸 고리가 걸렸다.

제힘으로 어찌 안 된 제습이가 자주 우리를 부르고 했던.

오늘은 그 줄을 갈아주다.

 

제도학교의 고교 교사와 1시간이 넘어 되는 통화를 한다.

그 반 아이의 가족상담이 이곳에서 있었던 터다.

그에게 무엇을 어떻게 지원해나가면 좋을지 의견을 나누다.

그 가정에 관한 어떤 정보는 그와 내가 전혀 다르게 가지고 있기도 했다.

왜냐면 우리는 그 부모를 통해 정보를 얻는데,

그들이 대상자에 따라 다르게 말하거나 듣는 우리가 해석이 다르거나.

아이를 중심에 두고 사안을 더 정확하게 보기로.

또 다른 학생에 대해서도 연대할 건에 대해 의논하다.

그 학교에서는 위탁교육을 원하지만 일단 아이를 만나보고 결정하겠다고 전했다.

물꼬가 그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겠다고 판단될 때 우리도 위탁교육을 하니까.

1115일이 넘어가면 이곳에서는 겨울90일수행에 들고

그때는 이미 있는 기존 일정 아니라면 새로 날을 잡지 않는데...

그러하니 11월 초순에, 주말 상관없이, 23일 혹은 34일의 상담을 잡고

그런 뒤 다음 일정을 논의하기로.

 

영화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 The Last Word>(2017).

자신의 사망기사를 미리 준비하는 할머니 해리엇과 사망기사(obituary) 전문기자 앤,

그리고 지역아동센터에서 만난 흑인소녀 브렌다가 나누는

우정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라 하겠다.

해리엇이 사망기사들을 종합해서 내린 사망기사의 네 가지 조건은

가족의 사랑, 동료들의 칭찬, 누군가에게 우연히 끼친 영향, 그리고 와일드카드(그를 전체적으로 수식할 대표문구?).

그걸 만들기로 하는 과정에 브렌다도 만났던 것.

독선적이었고 평판이 형편없던 해리엇은 관계를 얻었고,

자신을 늘 누르고 있던 앤은 해방을 얻었으며,

브렌다는 자기의 뜻대로 더욱 나아갈 지지를 얻었다.

 

해리엇과 앤의 대화.

- 실수할까 봐 두려워요.

- 아니. 네가 실수를 만드는 게 아니라 실수가 널 만들지.

  실수는 널 더 똑똑하게 하고

  실수는 널 더 강하게 하고

  실수는 널 더 자립적으로 만들어.

  ... 앞으로 확 자빠져, 크게! 실패해야 배울 수 있어. 실패해야 사는 거야.

그리고 해리엇이 세상을 떠났을 때 앤은 말한다.

- (그는) 그저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 맞서길 바랐을 뿐이죠.

 

해리엇은 내가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멋진 죽음을 맞았지 않나 싶다.

브랜드와 앤과 거실에서 춤을 추던 앨리엇은

자신이 좋아하는 숄을 꺼내와 두르고 소파에 앉아

계속 춤을 추고 있는 앤과 브랜드를 바라보다가 숨을 거둔다.

어쩌면 그가 꿈꾸는 완벽한 죽음을 맞았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가 꿈꾸기도 하는.

- 좋은 날이 아니라 의미 있는 날을 보내세요.

 

해리엇이 영화에서 말했다, “I am who I am!(내가 누군데! 이게 나야! 그게 나지!)”

해리엇이 내게 말했다.

너 자신의 길을 가, 네가 되도록 해!”

그것은 일찍이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 베르길리우스가 지옥의 문 앞에 서서 외친 말이고,

마르크스가 <자본론> 서문에서 인용하기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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