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이 긴 밤이었다.

서른 중반 딸과 이십대 후반 아들을 둔 중년 부부.

부잣집 외아들이나 아버지와 오래 갈등해왔고,

거의 평생을 직업이란 가져본 적도 없고 그 자신 다른 이들과 별 소통이 없는,

있는 재산 쓰면서 가솔들 운전병 역만 겨우 해온 남편,

집안을 실질적으로 건사해온 건 착하고 재주 많은 아내 쪽.

딸은 서울서 제 직업을 잘 찾아 집도 사고 견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에 반해

아들은 서른이 다 되도록 엄마가 밥상을 차려주어야 하는 이.

당신들의 양육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은 하지만

안다면서도 부부에겐 별반 아들이 문제로 다가오지는 않는.

갈등은 딸과 시작되었다. 벌써 여러 계절이 흐른 문제였다.

가장에 가깝게 집안 살림을 보태왔던 딸인데

딸과 아들이 다툴 때 부모가 아들만 감싼다고 화가 난 딸(물론 그것만이 문제였겠는가),

딸이 가진 분노를 어쩔 줄 몰라 하는 부부의 전화였다.

나를 변화시키는 게 가장 쉽다,

딸을 어쩌려고 말고 부부의 삶에 대해 돌아보고 길을 찾자고 제안 혹은 조언했다.

아이들의 문제는 대개 부모의 문제이니.

특히 남편에게는 내가끊지 않으면 결코 끊을 수 없는 문제에 대해 말하다.

아들에 대해서는, 설득의 문제가 있고 가르쳐야 할 문제가 있다,

가르칠 건 가르치자고.

딸에 대해선, 그를 좀 받아주고 안아주자고.

그런데, 아비(남편)는 결코 자신은 어떤 변화도 행할 수 없다는 입장.

그렇다면 상담자 역시 해줄 수 있는 게 없지 않겠는지!

엄마(아내)만 애가 타는 밤이었네.

 

자정이 다 되어 서울에서 돌아온 스물네 살 청년 아들과 이야기가 길었다.

오랜만에 만났고,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는 늘 할 말이 많다.

딱 한 세대를 건너뛴 세대 엿보기 그런 걸로다가 더욱.

우리는 이 시대의 변화에 관심이 많았고,

한 나라의 수도를 넘어 세계적 도시인 서울의 변화에 대해

그는 그 한복판에서 중계자로, 나는 변방에서의 궁금함으로 얘기가 흥겨웠다.

시월의 마지막 밤, 서울은 애고 어른이고 할로윈 의상으로 수선스럽더란다.

아들에 의하면,

처음에는 할로윈이라고 입은 복장이 한국 사회에 만연한 개성에 대한 억압에 기인한다고 생각했단다.

그러나 이틀 내내 서울을 돌아보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고.

할로윈 복장마저도 남자는 오징어게임 진행요원복, 경찰복이거나

여자는 간호사복, 비니복이더라고.

다른 의상이 드물고 오징어게임-경찰-간호사-비니의 반복이라는.

오겜 의상이야 워낙 전 세계를 강타한 영화의 영향이라쳐도

할로윈 복장에서조차 한국 사회의 획일성이 보이더라는 것.

일본인은 30% 보편적 복장에 70% 자율적 복장이라면

한국인은 그 반대라는데,

자유로운 복장의 30%가 결국 일률적인 복장이더라는 말이었다.

그러니 자유로운이 자유로운이 아니더라는.

(그건 직접 만들어서 입기보다 대체로 파는 것을 사서 입다 보니

한정된 상품이 원인일 수도.

다시 말하면 시장 질서가 우리 의식을 지배한지 오래이기도.

결국 다 청바지를 입으면서 무슨 청바지냐가 마치 대단한 선택인 듯,

또 다들 우유 앞에 섰으면서 무엇이 첨가된 우유를 고르느냐가 마치 선택인 착각하듯.

청바지를 입느냐 마느냐, 우유를 마시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가을이라 선남선녀들의 혼례식이 줄을 이었다.

다음은 한국의 결혼식 문화로 이야기가 옮아갔다.

서울 강남에는 예식장이 많고,

거기서 결혼식을 하려면 최소 3천만 원이 든다는데.

왜 우리는 그렇게까지 하는 걸까?

결혼식조차 서울로 서울로 모이는,

강남의 한 매장에서 시작된 작은 상품 하나가 어느새 우리 면소재지 편의점을 휩쓴다.

좋게 말하면 서울의 문화가 전 세계화 된 반가움인데

문제는 그것의 건강성이 문제다.

많은 상품이 2.30대의 사치에 기반하고,

한국인의 허영 허식이 하늘을 찌른다는데,

향후 꽤 오랜 시간이 이렇게 흘러갈 것 같아 보이는데,

더하여 소수자이든 의견이 다른 상대이건 혐오가 혐오를 부르고...

한국의 제반 풍경이다.

제법 지지를 받아온 진보적이라는 현 정권은 그것에 대해 애를 쓰기는 했던 걸까?

왜 우리는 지금 이리(성형문화도 포함하여 지나치게 보이는 것에 집중한) 사는 걸까? 시대가 그렇다.

그런데 이런 것에 대해 우리 성찰하고 지식인들이 담론을 형성해보지만

실용성은 힘이 세서 이제 더 이상 지식담론도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고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다소의 자조와 그러면서도 의식을 세워보며 새벽이 가까워오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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