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의 빈들모임을 이번 달에는 12일로 했다.

서로 약속이나 한 듯 흙날 낮밥 밥상에 앉는 것이 시작이었다.

가마솥방에 난로를 피웠다.

 

퍽 기다렸던 일정이었다.

오래 보지 못했던 얼굴들이 보기로 한.

일주일 전부터 주문을 해서 찾아온 마카롱이며 튤립꽃다발 모양의 초컬릿까지

마음을 전하는 선물들이 여럿이었다.

호두파이를 구웠고,

땅콩을 삶았고,

끝물 머루포도가 냈고,

무슨 명절음식처럼 밥상을 준비했다,

대처 자식들이 돌아와 먹을 저녁처럼.

 

은주암골에 갔다.

민주지산에 이르는 길 가운데 사람들 발길이 적은 길이다.

특히 가을에 걷기 좋은 길이고,

오랫동안 숨겨둔 것 같은 곳이었다.

물꼬사람들은 그곳을 티벳길이라 불렀다.

오를 땐 깎아지른 경사지가 계곡으로 이어진 길을 끼고 걷는 길이었다.

언제는 아래 계곡에서 비박을 하기도 했더랬다.

아이들과 오른 계자도 있었네.

그리웠고, 만났다. 기뻤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동행하는 일은 언제나 고맙고 벅차다.

 

석기봉 아래 은주암굴 앞에서 차를 달였다.

삼도봉 쪽에서 비박을 하려는 댓 명 무리가 오르고,

석기봉 쪽에서 홀로 비박하겠다는 이가 지나갔다.

어느새 아주 발길이 끊겼다.

낙엽들이 저들끼리 내는 소리가 귀에 닿았고,

지는 햇줄기가 거미줄처럼 걸렸다.

소리 공연도 하고,

지나간 시간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이즈음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일과 사람에 대해 말했다.

아름다운 가을빛이 우리를 감쌌다.

살아 같이 이 시간을 지나고 있음에 감사했다.

 


이태원 1주기.

참사의 대응은 너무 느리고,

참사에 대한 책임은 없다.

세월호가 그랬듯 이태원 참사도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학병원에서 전공의 1년차를 지나는 한 젊은이는

재난의학에 관심이 커졌고, 응급의학과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973187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는,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또 묻는 밤이다.

 

그리고 먼저 일어나 떠났던 이가 보내온 갈무리글을 덧붙임;

 

(...) 너무나도 짧은 머무름이었지만 물꼬는 역시 아이의 학교이면서도 '어른의 학교'라는 말이 다시 실감이 나는 곳이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몇 가지 생각할 것들이 있었거든요.

 

우선 산오름을 하며 옥쌤이 해주신 여러 이야기들(특히 제사 이야기 너무 인상 깊었어요!)을 들으며 우리가 선하게 살아가야 할 

필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착한 사람이 바보 된다는 지금의 세상에서 저 역시 많은 회의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래도 옥쌤 말씀 들으면서 결국엔 다 돌아온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네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렀던 2~3년 전의 모습과 비교하여 많은 것이 바뀐 달골의 모습을 보면서도 꾸준함이 중요하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경험상 물꼬의 일은 아무리 해도 티가 잘 나지 않는데 거의 매일 학교와 달골을 오가며 일을 하셨을 옥쌤을 떠올려봤습니다

힘들기만 하고 뭔가 더디고 진행이 잘 안되는 것 같아 답답하셨을 것도 같은데 결국엔 하나둘씩 구상하셨던 모습을 착착 갖추어 나가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대단하다고 느껴지고 저의 나태함을 깨닫고 반성하기도 하고 그랬네요.

 

(...) 항상 다녀갈 때마다 진한 여운이 남는 신기한 물꼬입니다. 지금도 너무 생각이 많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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