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16.나무날. 비

조회 수 350 추천 수 0 2023.11.25 23:50:56


땅콩 수확을 도왔다.

가을 내내 얻어먹기만 하다 마지막 거둘 땐 손을 보태마 했다.

보슬비로 변했기 비옷을 입고 나갔다.

어라! 줄줄줄 달고 나올 줄 알았던 땅콩인데,

맥없이 툭 뽑히고 만다.

까치들이 더 빨랐던 거다.

, 그렇게 나눠먹는 거겠거니.

뿌리에 달린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가렸다.

두둑에서 파낸 것이 더 많았다.

땅콩의 한 생이었고, 내 생 주기의 어느 한 때를 쪼개 그 생을 같이 했더라.

 

겨울90일수행을 어제 열었고,

아침부터 온전히 하루를 수행하기로는 첫날.

수능이 있었다.

아침부터 더 간절한 대배 백배였다.

시험장으로 들어간 아이들이 나오기 전 몇에게 문자를 보냈다.

잊히지 않았다는 말이고, 격려하노라는 뜻이었으며, 애썼다는 치하였다.

시험을 끝내고 그간 한 응원에 고마움을 전하는 문자를 보내오기도 했고,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해오기도 했다.

다들 욕보셨다.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조차도 애쓴 날들이 어디 안 가고 우리 삶에 힘일 것을 안다.

 

가장 넓은 길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양광모의 가장 넓은 길가운데서),

올 수능 필적문구였다.

수험생 본인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필적문구는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2006년부터 있었다.

문장 길이는 12~19자 사이여야 하고,

필체 차이가 두드러지는 ’ ‘’ ‘가운데 2개 이상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며,

겹받침도 반드시 한 개 이상 있어야 한단다.

무엇보다 수험생들에게 감동과 격려 같은 긍정적 메시지를 줄 수 있는 문구로 선정.

아름다운 문장들이었다.

작년에는 한용운의 나의 꿈에서 나의 꿈은 맑은 바람이 되어서’,

재작년엔 이해인의 작은 노래 2’에서 넓은 하늘로의 비상을 꿈꾸며였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 그대 한 사람’ (2021학년도 수능, 나태주 들길을 걸으며’)

너무 맑고 초롱한 그 중 하나 별이여’ (2020학년도 수능, 박두진 별밭에 누워’)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2019학년도 수능, 김남조 편지’)

큰 바다 넓은 하늘을 우리는 가졌노라’ (2018학년도 수능, 김영랑 바다로 가자’)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 (2017학년도 수능, 정지용 향수’)

넓음과 깊음을 가슴에 채우며’ (2016학년도 수능, 주요한 청년이여 노래하라’)

햇살도 둥글둥글하게 뭉치는 맑은 날’ (2015학년도 수능, 문태주 돌의 배’)

꽃초롱 불 밝히듯 눈을 밝힐까’ (2014학년도 수능, 박정만 작은 연가’)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이며’ (2013학년도 수능, 정한모 가을에’)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2012학년도 수능, 황동규 즐거운 편지’)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고 넓어진다’ (2011학년도 수능, 정채봉 첫 마음’)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2010학년도 수능, 유안진 지란지교를 꿈꾸며’)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2009학년도 수능, 윤동주 별 헤는 밤’)

손금에 맑은 강물이 흐르고’ (2008학년도 수능, 윤동주 소년’)

넓은 벌 동쪽 끝으로’ (2007학년도 수능, 정지용 향수’)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란 하늘빛’ (2006학년도 수능, 정지용 향수’)

 

그것을 쓰며 시험을 치러냈을 모든 젊음을 응원함.

아름다운 시어를 읽으며 나도 영차!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556 2007. 6.21.나무날. 잔뜩 찌푸리다 저녁 굵은 비 옥영경 2007-06-28 2128
6555 입학원서 받는 풍경 - 둘 옥영경 2003-12-20 2127
6554 5월 29일, 거제도에서 온 꾸러미 옥영경 2004-05-31 2126
6553 계자 열쨋날 1월 14일 물날 옥영경 2004-01-16 2126
6552 2007.11.16.쇠날. 맑음 / 백두대간 제 9구간 옥영경 2007-11-21 2119
6551 2005.11.8.불날. 맑음 / 부담스럽다가 무슨 뜻이예요? 옥영경 2005-11-10 2114
6550 100 계자 여는 날, 1월 3일 달날 싸락눈 내릴 듯 말 듯 옥영경 2005-01-04 2113
6549 2005.10.10.달날. 성치 않게 맑은/ 닷 마지기 는 농사 옥영경 2005-10-12 2112
6548 6월 10일 나무날, 에어로빅과 검도 옥영경 2004-06-11 2111
6547 6월 11일, 그리고 성학이 옥영경 2004-06-11 2110
6546 5월 31일, 권유선샘 들어오다 옥영경 2004-06-04 2105
6545 물꼬 미용실 옥영경 2003-12-20 2104
6544 6월 9일 물날, 오리 이사하다 옥영경 2004-06-11 2102
6543 2007. 5.31.나무날. 소쩍새 우는 한여름밤! 옥영경 2007-06-15 2100
6542 6월 11일 쇠날, 숲에서 논에서 강당에서 옥영경 2004-06-11 2093
6541 계자 다섯쨋날 1월 9일 옥영경 2004-01-10 2090
6540 6월 15일, 당신의 밥상은 믿을만 한가요 옥영경 2004-06-20 2087
6539 처음 식구들만 맞은 봄학기 첫 해날, 4월 25일 옥영경 2004-05-03 2085
6538 5월 6일, 류옥하다 외할머니 다녀가시다 옥영경 2004-05-07 2083
6537 지금은 마사토가 오는 중 옥영경 2004-01-06 2083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