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 6.물날. 맑다가 저녁 비

조회 수 281 추천 수 0 2023.12.20 23:57:17


저녁이었다.

천둥과 함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름날 소나기 같았다.

날도 푹했다.

 

번호를 붙여 일을 몰아 읍내 찍고 돌아오는 날.

1번 농협부터. 학교 통장을 정리할 일 있어서.

조합원들에게 생일 케잌과 소고기를 준다. 작년에는 조합장님이 손수 배달을 왔던.

오늘은 나갈 일 있으니 직접 찾겠노라 했다.

2번 차량점검. 여름계자 겨울계자를 앞두면 하는.

차를 끌어야 할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여름엔 민주지산 산오름으로 물한계곡까지 차를 가지고 가고,

겨울엔 혹 아이들이 다쳐 병원으로 갈 수도 있으니.

이곳 기사들은 20년을 넘게 본 이들.

커가는 아이들 안부를 묻게 된다.

오늘 우리 차를 맡은 이는 52년 초등생을 둔 아비.

이 맘 때는 케잌이 여러 개 생겨요.”

아이들 갖다 주라 오늘 받은 케잌을 건네다.

그래도 안은 들여다보고. 그래야 잘 먹었노라는 인사도 건넬 수 있으니.

생크림 위에 샤인머스켓이 잔뜩 올라앉았더라.

3번은 차수리센터 사무실에서 처리하면 되었네. 자동차보험 갱신.

4번 면사무소. 모래주머니를 받아오다.

저희도 많이 없어서...”

모래주머니와 염화칼슘 가운데 선택하라기

효율은 염화칼슘이 좋은 줄 알지만 역시 조금이라도 환경을 생각지 않을 수 없는.

모래 다섯 주머니 실어와 달골 대문 앞에 부렸다.


면사무소 앞에 어쩌다(장날?) 보이는 포장마차 하나 있었다.

거기 면 부녀회 사람들 몇 어묵과 풀빵과 호떡을 먹다가

날 반가이 맞으며 사주시다.

그런 곳에 서서 이 골짝 사람들과 뭘 먹어본 게 처음이었다.

이곳에 깃든 지 서른 해가 다 돼 가는데.

마음이 참 좋더라.

(사람을) ‘본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다.

 

아들이 태어나고 그 아이 자라 학교를 마치고 직장을 갔다. 첫해다.

오늘은 생신문안이라고 깜짝 놀랄 큰돈을 보내왔다.

그걸 어찌 쓰나. 모든 부모들 마음이 그러할 거라.

아이들은 자라고 어른들은 늙어간다.

마음 좋기를(우리가), 평화롭기를(세상이), 그저 바라노니.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556 2004학년도 학부모모임 길을 내다, 3월 13-14일 옥영경 2004-03-14 2164
6555 물꼬 미용실 옥영경 2003-12-20 2143
6554 '밥 끊기'를 앞둔 공동체 식구들 옥영경 2004-02-12 2142
6553 2007. 6.21.나무날. 잔뜩 찌푸리다 저녁 굵은 비 옥영경 2007-06-28 2139
6552 5월 29일, 거제도에서 온 꾸러미 옥영경 2004-05-31 2139
6551 2007.11.16.쇠날. 맑음 / 백두대간 제 9구간 옥영경 2007-11-21 2137
6550 100 계자 여는 날, 1월 3일 달날 싸락눈 내릴 듯 말 듯 옥영경 2005-01-04 2129
6549 계자 다섯쨋날 1월 9일 옥영경 2004-01-10 2129
6548 2005.10.10.달날. 성치 않게 맑은/ 닷 마지기 는 농사 옥영경 2005-10-12 2127
6547 6월 10일 나무날, 에어로빅과 검도 옥영경 2004-06-11 2127
6546 6월 11일, 그리고 성학이 옥영경 2004-06-11 2126
6545 2005.11.8.불날. 맑음 / 부담스럽다가 무슨 뜻이예요? 옥영경 2005-11-10 2124
6544 지금은 마사토가 오는 중 옥영경 2004-01-06 2120
6543 6월 9일 물날, 오리 이사하다 옥영경 2004-06-11 2118
6542 5월 31일, 권유선샘 들어오다 옥영경 2004-06-04 2118
6541 2007. 5.31.나무날. 소쩍새 우는 한여름밤! 옥영경 2007-06-15 2116
6540 계자 여섯쨋날 1월 10일 옥영경 2004-01-11 2113
6539 6월 11일 쇠날, 숲에서 논에서 강당에서 옥영경 2004-06-11 2111
6538 처음 식구들만 맞은 봄학기 첫 해날, 4월 25일 옥영경 2004-05-03 2103
6537 6월 15일, 당신의 밥상은 믿을만 한가요 옥영경 2004-06-20 2102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