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계자 여는 날, 1월 3일 달날 싸락눈 내릴 듯 말 듯

조회 수 2106 추천 수 0 2005.01.04 08:23:00


< 겨울에도 등이 푸른 햇살 · 1>

1994년 첫 번째 여름 계자 뒤로
꼭 백 번째 계자입니다.
어른들이 한 세 차례의 계절학교를 빼고도.

차 소리가 납니다.
류옥하다랑 젊은 할아버지, 기락샘이랑 같이 대문 앞을 서성입니다.
“선생님!”
정하랑 정훈이가 맨 먼저 뛰어옵니다.
한껏 안습니다, 보고 싶었습니다.
그들 뒤로 그네의 부모님이 보내주신 쌀자루도 차에 실러 들어옵니다.
달려오는 종화에게 그의 어머니 안부도 빠르게 묻습니다.
석현이 어쩡거리며 인사를 하고
경민이 슬쩍 악수를 하며 스치고 갑니다.
“선생님, 안녕!”
늘 기분이 다 좋아지는 승호의 인사입니다.
무엇에도 개념치 않는다는 그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 동주가 오고,
홍주랑 명주는 동주랑 남남인 냥 들어옵니다.
“이유민 아냐?”
“네!”
훌쩍 크고 너무나 예뻐진,
물꼬의 시설변화(?)에 토끼눈을 떤,
한 해도 더 전에 다녀간 그입니다.
“저요, 저만 오면요, 우리 친척은 다 오는 거예요.”
“어디, 이름 좀 보자.”
주환이입니다.
예전 다녀간 민정이의 동생이고
미국에서 왔던, 손을 다쳐 마음이 오래 아팠던 모은샘의 사촌입니다.
“민호, 강호도 사촌이랬지?”
“예, 사촌 형들요...”
“어, 자네가 답십리의 송성진이구나?”
낯선 얼굴들은 그렇게 얼른 이름을 읽습니다.
사진으로 봐서 이미 익은 형준이 재홍이도 걸어오네요.
“은정아!”
엊그제 본 지선이도 반갑습니다.
문정이 지영이도 소란하게 인사하며 지나갑니다.
민재, 앞으로 뒤로 가방 하나씩을 매고
도대체 다 들을 수 없는 말들을 막 쏟으며 맴을 돕니다.
걸음이 몇 번 있었던 지용이는 저 먼저 인사를 하고
하늘이는, 휘잉 하고 눈만 마주치고 생쥐처럼 달려 가버립니다.
호준이도 경민이도 들어옵니다.
그 사이로 바지런히 낯선 이름과 얼굴들을 확인하였지요.
“자네도 이름표 좀 보자!”
정민입니다.
‘저 이가 승찬이, 쟤는 재화,’
“어디 가? 이름표!”
‘안에 노란 쉐터 입은 녀석은 현성이’
재혁이(이후 그는 제가 이름을 부르려고 하면
먼저 이름표를 바짝 들어주는 배려를 하였다지요),
응준이, 혁이, 천기, 소희,
미처 이름을 못 읽은 아이도 있지 싶어요,
그리고 공동체 아이 류옥하다,
(나중에 택시로 들어온 현진이 현정이 영준이 어, 하나 누구지?)
그렇게 마흔의 아이가 이번 계자를 함께 하는 아이들입니다.

낯도 좀 익히고,
이곳에 살기 위한 자잘한 안내를 사십 여분 받습니다.
여기선 그 첫 시간을 진행하고 나면
더는 설명이 필요치 않습니다.
물어볼 것도 없지요.
“이거 어떻게 해요?”
“자네 마음대로!”
자유학교답게요.
그 ‘자유’야 저어(자기)들도 이미 아는 걸요.
배려가 있는 자유, 예의가 있는 자유 말입니다.
그리고 다른 누구가 아니라 자신이 판단해야 하는 그 자유.
이 시간쯤이면
앞에선 한 둘(서넛은 넘지 않지요)을 빼고는 이름을 다 익힐 수 있게
끊임없이 이름이 불리지요.

“시작하기 전에 먼저 급한 일부터 좀 하구요.
아까 한 샘이 이 방을 청소하다가 바늘을 잃어버렸어요.”
바늘, 행여 찔려서 그게 핏줄을 타고 돌면 마지막엔?
놀란 아이들이 예 제 찾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소희는 다가와 저가 왼쪽 눈 안쪽에 연필심이 찔린 기억도 전합니다.
“잠깐! 어머 그 샘이 바늘 잃었단 소리만 기억하고
다시 그 바늘 찾았단 소리를 전한 건 까먹었네요.”
그렇게 연극놀이가 이미 시작되어있었지요.
종이도 접고,
몸도 두들기고 안닿았던 부분도 닿아봅니다.
현진이는 자기 종이 못받았다고 앞으로 걸어나왔다 들어가기도 했지요.
걷기도 오래 합니다.
이 방향으로 저 방향으로, 산을 넘고 살얼음판도 건너고
늪에도 빠졌다가 깨진 유리도 지나 못이 솟아오른 철판도 건너고...
축구도 하고 배구도 하고 줄다리기도 하였지요.
물론 응원도 치열했다마다요.
서로의 모습에 웃고 넘어지느라
그만 긴장이란 긴장은 다 녹아버려
자, 이제 “하자!” 분위기입니다.
그럼 이미 한 흐름이 성공이지요.
뭐, 이젠
서먹해하던 현정이도 현진이도 나오고
늘 한 구석에서 조용한 지선이도 나오고
커버려 나서기 멋쩍어 하던 소연 수진이도
그냥 자연스레 무대를 채워나갑니다.
정하와 응준이가 짝을 이뤄 한 거울놀이는
한참 재미도 있고 아주 표현도 풍부했더라지요.
동주와 석현이는 나오라 해 놓으니
거울이 아니라 유리창을 사이에 둔 두 사람 역을 해서
우릴 요절복통케 했지요.
동물농장이 이어집니다.
너나없이 동물입니다.
가장 닮게 표현한 이들이 다시 아이들 성화에 나왔네요.
천기와 정훈이 동주 문정이가 그들입니다.
“쥐 하라 그래요, 쥐!”
그래서 쥐가 된 그들은 식당을 기웃거리다 쫓겨나기도 하고
남의 집 곳간 나락을 파먹기도 하고
서로 먹겠다 싸우기도, 사이좋게 놀기도 합니다.
“이제, 고양이 두 마리만 나오세요.”
문정쥐는 그만 쓰러졌고, 정훈쥐는 고양이 발톱에 상처를 입었으며
천기쥐 동주쥐는 기진맥진이 흐느적거리고 말았지요.
우르르 스무 남짓 고양이가 앞으로 뛰어나왔거든요.
“연극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서로 믿어야 해요.”
그래서 믿음 쌓는 놀이가 이어지고,
한 독재자가 나타나 시킨 대로
모두 일어나 몸을 더해보는 독재자놀이가 더해지다,
서울역의 군상을 선보였던 아이들,
이제 우리는 이 참에 수퍼마켓으로 갑니다.
하지 않겠다 할 것 같은 지용이도 물건을 사러 나오고
승호도 나와 과자 먹는 아이가 되고...
“잘 해 볼께요.”
재화, 끊임없이 나와 보지만 자꾸 뭔가 모자란 듯합니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 말입니다.
그래서 또 나오지요.
아아아,
우리의 천기 선수를 말하지 않을 수 없지요.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십시오.”
엘리베이트 안내원 혹은 마트 문지기역쯤을 한 걸 텐데,
우린 너무나 재미나서 서너 번은 더 해보라 하였더랍니다.
아이들이 안에 사는 저 끼!
아,
그대들도 봤어야 했을 걸요.
참말 재밌었다고도 하고 유익했다고도 한,
세 시간 가까운 시간이었더라지요.

어느새 저물 녁입니다.
하늘이랑 민재는 흙산에서 노닥거리고
이지와 영준이는 하늘땅놀이, 땅따먹기가 한창입니다.
워낙에 진지하고 재미난 그들 사이로
선진샘이며 소연이 수진이 큰 녀석들도 줄을 섰데요.
소연이랑 수진이는 그 전에 부엌에서 만났을 때
오며 가며 부엌일을 좀 도우라는 소명도 주었는데,
나와서는 작은 아이들을 잘도 건사합디다.
운동장을 거의 장악한 축구패엔
정훈이 재화 형준이 재홍이 동주 영우 천기가 있습니다.
저기, 정민이도 장갑을 껴달라네요, 축구하러 간다고.
승현샘이랑 노는 한 패거리가 방에 몰려있고,
그리고 구석구석에서 뭔가로 끼리끼리 바쁜 아이들입니다.

저녁 때건지기입니다.
먹은 접시를 마지막으로 물과 김치조각으로 깨끗이 씻어먹는 일이
특히 처음 온 아이들에겐 여간 곤혹스런 게 아닙니다.
"방금까지 내가 먹은 그 밥 그 반찬이야."
더럽다, 그 생각부터 다르게 바라보자며
이리도 말해보고 저리도 해보고
이리도 도와주고 저리 궁리를 모아주기도 합니다.
“그게 젤 영양가 있대!”
성진이를 도와 한 모금 먼저 마셔주고 있는데,
민재가 지나가며 던진 말입니다.
“야, 민재, 어째 그거 안내하는 말은 잘 들었더뇨?”
왜냐하면 정말 가만 못있는 민재거든요.
입이든 몸이든.
봐요, 그래도 애들, 들을 건 다 듣는다니까요.
점심 땐 발우공양에 얽힌
재화와 승찬이의 일화가 있었더랍니다.
재화가 마지막 물을 너무나 거북해합니다.
바로 옆자리에 승찬이가 앉아있었지요.
“야, 너 김치랑 밥이랑 같이 먹은 적 없어?”
“없어.”
“그러면 따로 먹어도 같이 섞여 들어간 적은 없어?”
“음...”
“우리 국국물이랑 밥이랑 같이 먹잖아.”
“응.”
“그거라고 생각해.”
재화, 가뿐히 마시데요.

저녁 한데모임에선 아카펠라로 군밤타령을 불렀더라지요.
지선이랑 수진이 유민이가 큰 종이에 가사를 써주었습니다.
수진이는 정말 무슨 일에건 참 긍정적으로 뎀빕니다.
노래가 꼴새를 갖춰갈 적
마침 들어선 부엌샘을 위해 감사공연도 하였지요.
잘들도 하데요.
저 역시도 오늘 한 사흘치 목은 다 쓰며 놀아댔더랍니다.

대동놀이 하러 갔겠지요.
강당으로 가서 달리기 한 판 하려고
양말을 벗는 순간 알아버렸답니다.
(양말 그거 신으면 안되거든요.
정녕 이길라 카거든 맨발입니다요.)
화목보일러의 위력!
몸이 훈훈했으니 맨발에 닿는 마루바닥의 찬기가 좀 상큼했어야 말이지요.
이어달리기와 전래놀이를 지나
대동놀이는 연극놀이에서 확장된 줄다리기가 이어갔습니다.
아, 이제 진짜 동앗줄을 가지고 하다마다요.
뭐 그런 난리법석이 없었지요.
(백 번째를 함께 한 아이들만이 갖는 암호,
“젓가락”이 이곳에서 생겨났다지요...)

예, 그렇게 하루가 성큼 지났습니다.
바깥에선 기락샘, 밥알식구 김경훈님, 논두렁 신동인님이
열심히 산에서 나무를 해내렸구요,
젊은 할아버진 아이들이 덥다할 만치
장작을 밀어넣고 밀어넣고 또 밀어 넣으셨답니다.
공동체 식구들이 이렇게 있는 속에
여러 샘들이 오고 가며 계자가 이어지겠지요,
어머니가 되어 아버지가 되어
아이들 곁을 잘 지켜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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