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10도를 밑돈다.

겨울이 시작된다고 아침마다 바람이 소문을 낸다.


들녘도 겨울채비다.

수세미를 땄고 데쳐 껍질을 벗겼다.

물꼬도 한해 내내 쓰지만 두루 이웃들과 나눈다.

더러 신기해서 얻어들 가기도 한다.

“이게 뭐예요?”

“수세미.”

“수세미?”

“그대가 아는 그 수세미가 바로 이 수세미에서 출발한 거여.”

그렇다. 이 수세미를 본 따 공장에서 만들어진 수세미가 흔히 주방에 쓰이는 그 수세미.

옥수수 대들도 뽑았다.

한철 잘 먹었다.


가끔 어떤 범주까지 기록을 해야 할까 망설여지는 지점이 있는데,

예컨대 쇠날 늦은 하오 농협에서 달골 기숙사 감정평가를 나온 일 같은 것.

2013년에 허가를 내놓았던 달골 집짓는 일을

이번 학기 어떻게든 마무리 지으려하자 당장 재정상황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굳이 지어야하는, 일일이 설명할 수 없는 까닭이 또 있는!)

다행히 지금까지 물꼬 살림은 빚 하나 없이 살아냈으나

새로 짓기로 한 부속건물 하나는 결국 대출을 안기로 한다.

계획대로라면 집필하고 원고료를 받고, 그런 수순으로 감당하게 될 비용이었으나

앞부분에서 멈춘 글쓰기는 진척이 없고 있었다.

그런데, 그같이 지역 안에서 방문자가 있노라면

결국 물꼬를 설명하는 자리가 되는.

교육 관련이 아니라면 어디 물꼬를 들어올 일이 있겠는가.

자유학교 전도(傳道)라.

면소재지 농협에 그리 오래 근무하며 물꼬가 도대체 뭐하는 곳인지 궁금도 했는데,

아하, 그렇구나 하셨다는.


주말에는 암벽등반이 있었다.

“... 뜨거운 동지애, 오직 그 하나로 맞섰던 열사여!”

최루탄 쏘아대는 거리에서 그런 노래를 불렀던 기억 자락 있다.

함께 바위를 타는 일이 그 같았다.

선등자가 없었으면 결코, 결단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도무지 손잡을 곳도 발을 둘 곳도 찾지 못하고 그만 미끄러질 찰나

바로 앞선 이가 로프로 끌어올려주었고,

순간 오직 그를 믿는,

그리고 중간지점에서 합류해서 그의 얼굴을 보는데,

눈물이 차올랐다.

먼저 확보하고 있던 당신들이 있어 내가 무사했구나.

나 역시 그를 올려야 했을 때,

내려다보니 몇 차례 미끄러진다,

겨우 숨만 쉴 수 있을 것 같은, 이라는 구절처럼

바위가 딱 그만큼 삐져나온 곳에 발끝으로 버티고

온 힘으로 그를 끌어올렸다.

누가 해줘, 결국 자기가 해야 하는 거야,

하지만 또한 그렇게 안전을 확보해주는 동지가 있어

우리는 암벽 위에 설 수 있었다!

같은 공간의 구성원들이 함께하기 그보다 더할 나위 없을 훈련 프로그램일.


흙날 밤은 야간산행.

케이블카 타는 지점에서 대둔산을 올랐다.

두 패가 양쪽에서 시작해 서로 만나 자동차 열쇠를 교환해서 차를 찾아 숙소로 돌아오는.

산오름이 아이들과 그만한 공부가 없다 싶더니

바위를 타고 암흑의 산을 같이 걷는 일은 더 깊은 공부가 될.

같은 길을 빙글빙글 돌며 헤매기도 했다.

스마트폰으로 길을 미리 찍고 가는데도 그런 일이 벌어지더라.

이게 길일 것이라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 가져오는 어림짐작이 눈을 어둡게 만드는.

편견이란 이름도 그런 것일.


“담주 화요일쯤 시작하죠!”

밖에서 집짓는 일을 안내해주고 있는 시영샘의 전화가 들어왔다.

일이란 게 해봐야 하는 줄 알지만, 시작한다,

달골 집짓기는 9월 1일부터 대기상태이더니... 시작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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