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31.불날. 맑음

조회 수 680 추천 수 0 2018.01.05 08:09:50


달골 햇발동 항아리 연지는 온아침에도 얼어있었다. 이틀째.

누구 말마따나 싫다고 가을이 아니 오더냐,

겨울도 그렇게 걸어오고 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청아하였다.

신념에 찬 의기로운 청년을 보는 것만 같은!

주먹이 불끈 쥐어지는 듯,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전장에 나가는 아비처럼.


종일 여러 샘들의 전화 혹은 문자가 닿았다.

기표샘 휘령샘 연규샘 점주샘,

아리샘은 바빴을 출근길에 글을 넣기도.

인화샘도 물꼬stay에 대한 한 학부모의 질문을 대신 전하러 소식 넣기도.

존재로 위안이 되는 사람들!


willing house 짓는 일이 멈춰 있는 사흘 동안 학교 일을 좀 살펴야 한다. 이틀째.

때마다 밥과 틈틈이 목공 일을 거드는 흐름이 만만찮았더랬다.

오전에는 책상 앞.

지역권 안에서 움직이는 일이 잦은 올해,

마침 두 곳의 특강 신청에 관련 서류 보내고,

구조기술자와 설비전문가인 산오름 선배님들께 살펴주시라 도면도 보내고...

하오에는 이불방에 들어갔다.

날이 더 차지면 시린 발을 동동거리며 손을 호호 불어가며 하게 될.

겨울계자라도 할라치면 먼저 들어온 샘들이 거들 것이나

안식년인 올해는 겨울 역시 없는 일정이다.

이불은 각 맞춰, 베개는 혀를 내민 것들 집어넣고 반듯하게 켜켜이 쌓기,

바닥엔 널린 것들이 없도록,

커튼 뒤 보이지 않는 맨 안쪽도 가지런히 해두기.

베갯잇 얼마쯤은 빨기 위해서 나왔다.

해 지기 전 깎은 감도 부지런히 중앙 현관에 매달았다.

학교아저씨가 깎고 계셨다.

해질 무렵엔 달골 올랐다.

햇발동 뒤란,

쌓여있던 벽돌이 집 짓는 일에 쓰이기 위해 나오면서 건드린 이곳저곳 흔적들을 치우다.


무산샘도 집 짓는 일이 쉬는 시간 동안 새로 만들어지는 한 곳의 둘레길에 세울

이정표를 만들어야 한다.

지리산 둘레길만 해도 400여 개에 그의 손길이 닿았다던가.

마침 면소재지 길가에 벗겨놓은 소나무 쌓여있어

엊저녁 장순샘의 소개로 나무를 샀네.

오늘 저녁답에 장순샘과 옮기겠다던 나무를

요새 감 따러 다니느라 고단한 장순샘을 배려한다고 무산샘이 미리 실어왔는데,

나무 주인 편에서는 주인도 없는데 실어온 게 된 거라.

화가 잔뜩 난 주인이 나무 도로 실어간다고 달골 왔다가 그냥 돌아가셨네,

가보니 집을 짓고 있더라, 큰일 하는데 시끄러워 되겠나 싶으셨다나.

어른의 마음결을 생각했네.

워낙에 깐깐하단 당신이라 들었는데,

그리 마음 놓아주시데.

이웃 유기농 농가, 물꼬의 큰 어르신인 조정환샘의 문자도 닿았다.

얼른 전화 넣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도록 걸음은 고사하고 전화 한 통 넣지 못했다.

마음이 부쩍 쓰이셨던 거다.

속 시끄러운 줄 아셨던 게다.

누리집을 보셨을 수도 있었을.

어른의 자리란...

그런 그늘들로 이곳 삶을 잇는다.


오늘도 산마을의 고단한 삶 속에 스승들과 이웃과 동지와 동료와 벗들이 함께하였나니.

생이여, 고마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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