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산마을은 3도까지 내려가 있었다.

그래도 풍성한 가을 끝, 11월을 여는 청아한 하늘.


제주도에서 귤이 왔다.

때마다 곳곳에서 물꼬의 인연들이 그곳 철을 알리는 물산을 이 산마을까지 보낸다.

일곱 살 부산에서 처음 물꼬 계자를 왔던 아이는 제주도로 삶터를 옮겼고

물꼬의 빛나는 얼굴 새끼일꾼으로 계절마다 이 산마을로 온다.

때는 집 하나 짓는 일로 먹성도 좋을 녘,

멀리서 그리 손을 보태온!


누리집에서 며칠 시끄러운 시간이 있었다.

일전에 물꼬stay로 머문 11학년들이 있었고,

인솔교사 한 분이 우리들이 보낸 일정에 문제를 제기했고,

그 글에 아이들이 남긴 갈무리글을 댓글로 남겼고,

이어 그것을 내리라는 요구가 있었다.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거니와 바빴고,

한편으로는 이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슬기도 속도도 더디고 늦은 이라 그저 보는 수밖에 없었다.

마구잡이로 올라오는 글에 퍽 성마르다 생각하기도 하면서

그저 집을 짓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뭐 불가피하게 이곳 삶이 책상과 멀기도 하고.

그리고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은 또한 좋은 수행이기도 하다.

물꼬의 시간들이 아니라면 역시 참 성마르게 굴었을 것이다.

그래서 좀 고단키는 해도 물꼬가 좋다. 좋은 수행터!

내 반응도 내 그릇의 크기이고 그의 반응도 마찬가지일 것.

나는 이런 사람이고 그는 그런 사람.

제 모양대로 사는 것일 터.

누가 누구의 삶을 무어라 하겠는가.


같은 건으로 여러 샘들과 통화가 길었다.

문자나 메일도 오간.

각자의 처지에서 이 상황을 바라보며 뭔가 도움이 되려들 애썼다.

고맙다. 그 힘으로 이런 시간을 지날 수 있는 것일 터.

물꼬 뒤에 늘 있는 당신들이라.

사실 어떤 사안에 대해 우리가 이야기를 듣는들 다 알고,

설명을 한들 또 다 말할 수 있던가.

많은 경우 그 사안에 대한 해석은

그간 그가 살아온 삶을 통하거나 아니면 그간 살아온 내 삶을 통해 바라보는 눈.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데 기준이란 게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화가 일고,

나름 생각하는 바를 글로 썼다가... 지웠다.

제도학교는 제도학교의 방식이 있을 것이고,

물꼬는 물꼬대로 또한 그 방식이 있을 것이다, 제도학교가 아닌 까닭!

일종의 전의를 느꼈고, 전장으로 나가듯 글을 썼다가... 지웠다.

이 일에서 가운데 선 한 분이 겪을 어려움 때문이었다.

당신을 가장 중심에 두기로 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벗쯤인.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키로 했는가 정해졌으면

이제 그리 움직이면 될 것이다.

뒤돌아보지 말기로,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노래 한 줄 읊조리며.

답글로 올려둔 아이들 갈무리글을 내려달라기 내렸다.

그냥... 그렇게 했다, 태산 같은 말들은 그냥... 버렸다.

사람은, 우리는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결코 잘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은 자주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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