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 6.달날. 맑음

조회 수 615 추천 수 0 2018.01.06 18:37:16


나무 한 그루에 가을이 앉을 때 그 빛나는 절정의 지점이 있다.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 그런 것처럼.

지난해에는 부엌에서 내다보는 창을 한가득 채우는 운동장 건너 튜울립 나무가

그 순간을 보이지도 못하고 찬바람을 맞아 상실감을 주었더랬는데...

은행잎들이 마구 떨어졌다.

운동장을 같이 둘러치고 있는데도 간장집 곁은 아직 초록을 벗지 못했고,

서쪽들은 샛노랗게 물들었다.

뭇 생명들이 다 저마다 제 흐름으로 살고 있다...


달골 집 짓는 현장은 다락으로 가는 계단을 만들고 있다.

외벽 방수시트 타이벡 붙이는 일 마무리,

다락 바닥에 단열재 아이스핑크도 깔고,

세탁실이며 콘센트 같은 전기설비도.

작은집이라도 설비가 없는 건 아닌.

따로 전기설비팀 없이 우두머리샘이 직접.


타이벡이 조금 모자랐다. 그렇다고 롤을 다 살 수도 없고.

공방도 하고 목조건축도 하는 시영샘네서 얻기로 했다.

읍내 들렀다.

공방의 민수샘을 족히 7,8년 만에 보나 보다.

사람은... 앉은 자리가 제 자리고 다 자기 자리에서 산다, 살고 있다, 살면 된다.

도서관 들러 올해 마지막 읽은(읽다 만) 책들을 반납하고,

이제 후내년에야 들리게 될 것이다,

물꼬에 젓갈이며를 나눠주시는 댁에 사과잼을 들여주고

과일을 나눠주시는 면소재지 한 댁에는 그 댁에 없는 사과 전하고.


주말에 손을 보태고 간 웅재샘이 이제 다음 일이 뭐냐 물어왔다.

‘여긴 목욜부터 담주 월욜까지 작업 중단. 팀장이 일 있어서.

날은 추워지고 마음은 바쁜디, 김장도 해야 되고, 바르셀로나 땜시 일년 비울 준비도 해야는디.

나는 그저 세 끼 밥과 두 차례의 곁두리 밖에 챙기는 게 없는데, 오늘은 마음까지 좀 고단.’

‘서두른다고 안 되는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공사란 천천히 하는 게 낮습니다.

천천히 하다보면 각 재료들이 제자리를 잡고

그 위에 다른 재료들이 더해질 때 더 튼튼해지는 법입니다.

공사도 누님 삶처럼 하세요, 좋은 결과 있을 겁니다.’

멀리서 말품으로도, 보내오는 먹을거리로도, 그리고 오는 걸음으로도 집을 짓고 있다.

밥바라지 1호기 엄마 귀옥샘도 지지방문 오겠다는, 잠시라도 부엌일을 거들까 하시고.


밤, 달골 찻상 앞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무산샘과 같은 영화에 대한 기억 나누기.

“일본 영화 중에 그런 게 있었는데, 사탕수수밭에...”

“오키나와 사탕수수밭, <심호흡이 필요해>!”

“거기 마지막에, 대사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사는 데 뭐 있냐, 잘 자고, 숨 잘 쉬고...”

“저는 수영장에 들어가기 전 아버지가 한 말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뛰어들기 전 깊은 심호흡을 하라고, 더 빨라져서 이길 순 없지만 기분은 좋아질 거라고...”

영화의 마지막은 그랬다,

일은 진척이 없고 사람들의 갈등까지 불거지는 동안

정작 밭주인은 오키나와 방언으로 말한다.

“난쿠루 나이사!”

(올바르게 걸어간다면)어떻게든 이뤄질 거야!

어떻게든 될 거다,

집 짓는 일도 사는 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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