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많다...


예닐곱 살 때 생긴 자신의 안구의 볍씨 자국,

‘물을 실어 만든 촉촉한 못자리처럼’

‘눈물이 필 줄을 아는’, ‘슬픔을 싹 틔울 줄 아는 내가 좋다’(문태준)고 시인이 썼다.

시는 쉬웠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윤동주)보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던 시인처럼,

가다 다시 돌아와 들여다보는 시인의 우물처럼

그 시를 맴돌았다.

얼마 전 언어의 조탁에 노련한, 그래서 세련된 한 시인의 시를 읽었지만,

건조했던 그 시들과 달리 ‘나는 내가 좋다’는 여덟 행짜리 시가 더 촉촉했다.

언어를 잘 다듬는 게 시인이 아니라 마음을 다듬는 게 시인이겠구나 생각했다. 

 

이른 아침 차를 달여 나눈다. 좋다.

집 짓는 현장이 아침 8시부터 돌아가는데 밥상에 앉는 시간이 7시도 되기 전이니

아침을 물린 뒤 잠시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결을 좀 챙길 수 있는.

집은 남면 서면 동면에 세라믹을 붙여가고 있다.

북면의 징크는 이미 작업을 끝냈지만 지붕은 아직 남아있고.

낮 5시에 마무리 되는 현장, 빗방울 떨어져 오늘은 서둘러 접었다.

하오 견두리를 낸 뒤엔

달골 안내판 부러진 다리를 고쳤다.

굴삭기 들고날 때 밟힌.

나무를 따내서 결합하는 부분은 손톱으로 잘랐다.


사람들이 달골 햇발동에서 같이 묵으며 현장이 돌아가니

혼자 책상 앞에 앉는 시간이 쉽잖다.

오늘은 오전에 교무실에 앉았다.

손으로 간단하게 기록하는 몇 줄 아니고는 글 한 줄도 두들기지 못하고 지나는 시간들이다.

어제 보육원에서 온 연락에 답을 주어야 한다.

물꼬 아니고는 보낼 수 있는 곳이 없다,

이곳에서는 그 말에 가장 취약하다.

피 철철 흘리는 상황이라면, 물꼬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위탁교육 일정이 잡혔다; 11월 20일 달날부터 12월 3일 해날까지.

정서행동장애를 비롯한 특수아동 중심 보육원의 한 아이,

물꼬랑 30년 가까이 되는 인연인 보육원에 계시던 원장님이

현 보육원으로 자리를 옮기며 벌써 5년에 이르는 서산과의 인연이다.

그곳의 국장님은 물꼬의 논두렁이시기도.

몇 차례 물꼬에서 치유과정을 밟아왔던 아이는

또 오갈 데가 없어졌다.

집짓는 일이며 이미 잡혀있던 일들이 차 있기도 하여 날 쉽지 않으나

오늘 현재 물꼬에 머물고 있는 이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어여 오니라 했다.

물꼬가 왜 존재하느냐 말이다.

집을 짓는 일이란 것이 사람을 다 늙게 하는 일이라지만

물꼬의 많은 일들 가운데 겨우 한 가지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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