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를 가르고 아침이 더디게 더디게 걸어온다.

달맞이꽃이 등불처럼 빛나고 있었다.

내가 달맞이꽃이라 부르는 이가 있다.

그는 멀리 있으나 늘 그리 그를 만나는.

그를 위한 기도를 절로 하게 된다.


아침저녁으로 자라는 풀이다.

오늘은 달골을 둘러보는데,

아, 이 너른 모든 곳이 정원이다 싶더라.

돌보지 않아도 거기 꽃피고 새운다.

거기 사람의 영역이라고 겨우 얼마쯤이면 되리.


사이집 둘레도 어느새 풀들 무성하다.

칡넝쿨의 기세를 어이 당하리.

39번 40번 편백 두 그루가 어느새 잡아먹히려 한다.

단단히도 감아올린 칡넝쿨이라.

오전 두어 시간은 풀을 좀 매리라 하며

넝쿨부터 자르려 한다.


앗!

전지가위로 막 넝쿨을 자르자마자 따끔.

벌이다.

잠이 덜 깬 그가 얼떨결에 내 팔을 쏘았다.

검은색 토시 위로 깨구룩깨구룩 그가 비비며 침을 보이고 있다.

얼른 털어내지만 토시를 벗은 왼쪽 팔은 벌써 조그맣게 부었다.

한해 서너 차례는 있는 일이다.

좀 따끔거리지만 마저 넝쿨을 치우고 풀을 맨다.


저 많은 새들은 어디서 밤을 새고 나오는가,

새들의 노래를 들으며 산골 마당을 맨다.

우수수 쏟아지듯 꽃을 낸 숙근코스모스,

둘레를 매서 그들을 드러내놓는다.

아직 키 낮아 풀들 사이에서 꽃만 한껏 고개를 치켜든 원추리들도

풀을 좀 걷어준다.

사이집 남쪽 가장자리 무성한 풀들도 조금 매 내고,

가운데 채송화 뿌려놓은 자리도 그들 다칠세라 살피며 한쪽을 맨다.

삶터를 침해당한 벌레들이 몸 구석구석을 물었다.

마땅히 당할 일이다...


청계에 참가하는 한 학부모가, 마침 인근이 댁이다,

간식을 좀 만들어 보내시겠다 연락이 왔다.

지난 15일로 마감한 청계다; 청소년 열둘과 어른 셋.

청소년 계자가 두 해를 쉬는 동안

최근 몇 해 청소년 계자의 주요 구성원이던 이들이

대개 대학에 입학을 하거나 고3 수험생이 되었고,

아래에서 자라온 8학년들이 주축이 되는 청계가 되었다.

물론 물꼬에 첫걸음 하는 이들도 있고.

새로 또 쌓아가는 일정이겠다.


팔이 무섭도록 부었다.

열도 나고 머리도 지끈거린다.

사혈을 좀 하고, 물을 부지런히 마셔주었더랬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는 오후를 보내고

이른 저녁을 먹고 달골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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