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건듯 부는 아침이라.


광주 시인 김준태 선생 영동에 다녀가시다.

그의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버’리고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저녁으로 살아남’아 다시 일어서던 광주를,

그 예수를 젊은 날 그의 시로 만났다.

지지거리는 흑백 비디오로 보던 광주의 참상에 분노하던 대학 초년이던 우리들에게

그나마 위로를 던졌던 시였다.

당신의 <참깨를 털면서>도 젊은 영혼을 밝혀주던 시집 하나였다.


참깨를 털면서


산그늘 내린 밭 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시가 무엇이냐, 시로 그에 답하다.


방금 낳아서... 비틀거리는...

아기 송아지의 온 살덩이를

핥아주는 어미소의 둥근 혀!


시는 추상명사가 아니라는 말이 마음에 고였다!

그의 시는 쉽고, 그래서 명백하다.

약을 팔아도 갑부 되셨겠더라 할 만치

칠십을 넘은 노구에도 여전히 기운 넘치셨다.


농부


그의 신발엔 흙이 묻어있다

그는 날마다 하늘을 밟고 산다!


하다샘과 늦은 밤 읍내에서 돌아와 교무실에서 계자 글집을 마무리한다.

번번이 희중샘이 계자 전날 날밤을 새며 복사기로 만들던 글집은

인쇄 관련 일을 하시던 금룡샘의 후원으로 두어 해 밖에서 만들어졌고,

이번 여름은 또 어쩌려나 싶더니 기표샘이 만들기로 했다.

“영동에 맡기면 내가 만들어 주께.”, 그리되었다.

여의도 금융맨이 되어서도 기표샘은

쇠날 반차를 내고 계자 직전의 주말 사흘을 이 골짝에서 보내기로 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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