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4.달날. 흐림

조회 수 511 추천 수 0 2019.11.27 10:49:08


정오로 가며 서서히 흐려갔다.

비닐목공실 전기 정리 중.

아침 9시부터 이웃마을 전기기사가 건너와서 점심까지 작업하다.


제습이(달골에 들어와 닷새를 산 진돗개 강아지) 밥을 주고

묶인 쇠줄을 노끈으로 바꾸어 산책을 시키다.

대문을 넘지는 않으려 하더라, 아침뜨락 계단도 오르지 않으려 하더라.

한 존재가 새 공간에 적응하는 과정을 지켜본다.

아이들을 생각한다...


달골 아침뜨樂 지느러미 아래 장승 둘,

그 앞 낮은 언덕에 어제 해거름에 심은 느티나무,

오늘은 물을 준다.

물도리에 물을 채우고 물이 잘 스미도록 삽질을 한다.

온몸을 다 써야 한다. 삽을 쥔 채 그만 아래로 푹 들어갈 것만도 같았다.


밭에 들어가지 못한 얼마쯤의 시간,

가지가 저리 커버렸다.

굵기도 굵은 것들이 따다 쌓으니 한아름이다.

무치고 볶고 굽고 튀겨도 못다 먹을.

가을인 게다.

꼭지를 남기고 길게 칼집을 넣어 잘랐다.

척척 빨랫줄에 걸쳐 여러 날 말려

가위로 먹기 좋게 자르거나 보관했다 잘라

물에 불려 볶으면 겨울에 얼마나 좋은 반찬이 또 될 것이냐.


다식을 만들어둔다.

자색고구마, 단호박, 녹차 가루가 있더라.

땅콩을 껍질째 끓여 색을 입히기도 하고,

벗겨서도 입히기도 하고.

잠시 틈을 내 만들어두면 또 한참을 꼭 다식 아니어도 좋은 주전부리거리가 된다.


달골 인문학모임에서 비폭력대화 연습이 있었다.

관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관찰하고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를 보고

내 욕구가 무엇인지 살피고

그리고 상대에게 부탁하기.

가만 보면 우린 상대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내 뜻대로 할까에만 집중하고는 한다.

나는 변치 않고 그만 어찌 해보겠다는.

그러려고 대화기술도 배우는.

너도 좋고 나도 좋기 위한 소통기술임을 새삼 확인하다.


한 댁에서 배가 몇 개 왔다.

달랑 세 식구 살림에 배가 넘쳐 가져왔다 했다.

“우린 모든 것을 상자로 사요.”

아, 그렇구나.

밥 먹고 산다고 그 살림이 그 살림이 아닌 거다.

몰랐다, 집에서도 배를 상자로도 사서 먹는 걸.

이 큰 살림에서도 배를 먹기 위해서 상자로 사 본 적이 없다.

평소에 상주하는 이가 몇 없어 그렇거니 하겠지만

행사를 치러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렇다고 배가 든 상자가 이곳에 없었던 건 아니다.

당연히 선물이거나 들어오는 이들이 사서 들어오거나.

문득 삶의 꼴이 얼마나 다양할까 싶더라.

하물며 개인의 취향에서야 말해 무엇 할까.

이상한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그냥 ‘다른’.

살림을 사는 일도 저마다 규모 혹은 형태들이 있을 거라는 거다.

예전에 가난해서도 그랬겠지만 쌀을 되로 사 들고도 왔다지,

연탄을 몇 개씩 새끼줄에 꿰어 사오기도 했단다.

물자가 얼마나 풍족한 시대를 우리 살아가고 있는지.

사는 걸 찬찬히 돌아보며 혹 그래서 쉬 버리는 건 없는지 살핀다.


조국 법무부장관은 결국 사퇴를 했다...

김천구미의 사회적 신분과 교양을 갖춘 부인네들이 모여 앉아 이 사태를 말하고 있었다.

“그러게, 진작에 내려오지...”

“장관 그거 하겠다고...”

나는... 그들이 집단이어서이든, 그들의 정치적성향의 벽이 너무 높아서이든

난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일어설 때까지 결국 아무말도 못했다.

검찰은 잔인했고(“감히 누가 검찰 우리를 건드려!”, 장관 후보 딸의 일기장까지 탈탈 털었다)

언론은 비열했으며(검찰에 덩달아 춤을)

대중은 본질을 따져보기 전 무책임한 언론이 주는 정보에 너나없이 휘둘리고 있었다.

화났고 슬펐고 답답했고 무기력했다.

그래도 벌어지는 일들에 고개 돌리지 않아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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