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심은 잔디를 밟아주었다.

몸의 무게를 한 발씩에 실으며

바닥도 보다 먼 산도 보다

앞으로도 밟고 뒤로도 밟고

가로로도 꾹꾹, 세로로도 꾹꾹.

신발의 굽과 바닥에 간극이 있기

앞쪽으로만 힘을 실어 다시 꾹꾹.

 

가마솥방 부엌의 벽걸이 선풍기가 들어가고

부엌뒤란 출입문의 커튼이 겨울 걸로 바뀌었다.

그래도 아직 가마솥방 난로를 피지 않았더랬다.

예년이라면 피우고도 여러 주가 지났을 법도 하지.

그래도 언제든 피울 수 있도록 난로를 들이고 연통을 설치한 지 여러 날이었다.

날이 다사로왔고,

어쩌면 난로를 피우면 정말 날이 확 추워져버릴까 봐 못 피웠는지도 모르겠다.

밤이면 아주 쌀쌀한 날도 제법 며칠이었는데,

그래도 낮이면 햇살이 도타워 또 넘어가고 넘어가고 했다가

드디어 오늘 피웠다!

저녁에 대나무를 실어 들어오는 이 있어

밥이라도 내자면 따숩게 앉아야지,

예 사는 우리야 아직 불 없는 난로여도 괜찮다만.

 

대나무가 왔다!

쓰임이 많은 대나무이다.

필요할 때면 학교 뒤 마을의 한 댁에 말을 넣고 산기슭에서 베 왔더랬다.

인근 도시에서 마침 길을 내야 하는 현장이 대나무밭을 지나

대나무를 베야 했던 모양이다.

물꼬도 한 차요!”

대나무 값을 따로 치러야는 건 아니었지만

오고가는 비용은 부담키로 하고.

실어온 동한샘 준한샘이 저녁밥상에 앉았다.

동태찌개를 냈다, 황태구이와 손만두와 고추두부전과.

동태찌개가 맛있을 계절이네.”

산골서 귀한 거여.”

준한샘네는 곧 먼 남쪽에서 조경현장이 돌아갈 거라지.

물꼬의 일이란 게 어디 물꼬 안에만 있는가.

얼마 전 준한샘네 일에 손 보태는 몇이

돌격대라며 팀이 되었다고들 농을 했더랬다.

돌격대 다시 합체 한 번 할까요?”

그럼 오늘 작전회의네.”

곧 또 손 한 번 보태기로들 하였더라.

11월 앞두고 우르르 일이 이어지려네.

내일 대처 나가있는 식구들을 돌보러 가고,

글피부터 이틀을 돌격대 지원 떠나고,

저녁에 돌아오며 이웃 도시의 다례모임을 하고 들어오고.

일이 늦어지면 그걸 접어야지.

 

또 한 마리의 강아지가 왔다.

제습이와 한 배에서 나온 진돗개다.

88일생, 제습이는 1010일에, 그리고 스무 날을 사이에 두고 다시 한 마리.

식구들이 이런저런 이름을 붙이다가,

제습이와 형제이니 제자를 돌림으로 하여 제제(<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는 어떤가 하다가,

가섭은 어떨까 싶더라.

석가모니가 영취산의 영산회상에서 설법할 때

말 대신 연꽃 한 송이를 들어 올리자

그걸 알아듣고 미소 지었다는 가섭이었다.

염화미소 염화시중이 거기서 나온 말.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일.

무슨 개 이름에다가...”

하여 결론은, 제습이가 제습기에서 왔다니 가습이는 어떠냐,

가습기에서 온 말로 가습이라 부르기로 한다.

실려 왔던 상자에 붙은 나는 제습기입니다에서 제습이 이름이 남았던 것처럼.

한자로 쓰자면 배움을 더한다는 의미로다가 :)

 

출판사에서 메일이 들어왔다.

늦어도 12월을 넘기지 말자 해놓고 자꾸 더뎌지고 있는 올해 새로 내는 다른 책이었다.

11월이 가기 전 소식을 주었어야 했을 게다.

자체 2교 교정 중이라고 했다.

11월이 넘어가면 이쪽에서라도 줄 소식이었다.

일이 되려는가.

박차를 가해보기로 서로 다짐하며 10월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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