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1.흙날. 흐려지는 오후

조회 수 1215 추천 수 0 2020.03.04 08:43:50


 

운동장 가 여기저기 부러진 가지들을 정리했고,

몇 장이 들어와 있던, 켜놓은 은행나무를 목공실 앞에서 사포질했다.

침대 머리맡에 길게 둘 간단한 선반을 만들려한다.

 

가끔 사람들이 찾아놓은 말에 탄복한다.

귀를 의심했다,는 말도 그렇다.

엊저녁 부음을 들었고, 오늘 저녁 빈소에 다녀왔다.

불과 얼마 전 마을 모임에서 몇의 형님들과 둘러앉은 속에 있었던 그니다.

마을 방송을 듣자마자 이웃 형님께 전화로 먼저 확인했다,

믿기지도 않고, 정말 잘못 들었을 수도 있으니까.

멀쩡한 양반이, 건강한 양반이, 그토록 짱짱했던 이가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한 열흘 됐나... 우리 마을회관에서 봤던 그날인가 보네.”

이 마을로 재가해서 들어온 게 십년도 훌쩍 넘은 그의 생은

농약으로 마감되었다.

다 키운 딸이 있었고, 들어온 댁에도 두 딸이 있었다.

재작년에 먼저 가정의 딸을 치웠고, 손주도 생겼지.

큰 애 결혼 문제로 다투다가...”

이 댁 큰 애도 혼례를 앞두고 있었다.

내 딸은 신경을 더 써주지 않냐는 말이 화근이었더라나.

여러 날을 다투었고, 그날은 딸이 와 있는데도 또 다투고 만.

방에 맥주 한 병 들고 들어간 이가 기척이 없어 열어보니 농약이 함께 있었더라지.

119에 실려간 그는 그렇게 열흘 끝에 생을 마감했다.

얼굴이 참 예쁘기도 했던,

술도 좋아하고 노래도 좋아하고 음식도 잘하고 노는 것도 일도 잘하던 그였다.

 

남은 아저씨가 짠했네.

그 댁 과수 농사는 많기로 유명하다.

그 많은 일들을 아내가 같이 했는데.

해마다 그네 밭에서 나온 과일을 계자 무렵 잘 먹어

여러 날은 못해도 늦은 봄이면 하루이틀 손을 보태고는 했더랬다.

지난 초여름도 그랬고, 덕분에 또 지난여름 계자 아이들은 복숭아를 물리도록 먹고,

그러고도 남아 통조림도 만들고 잼도 만들고...

고마움을 잊지 않으면 나쁠 게 없는 사람 관계라지 않던가.

부부가 서로에게 얼마나 고마웠을 관계인데.

자주 그리 고맙다고도 말하는 그네였는데.

빈소에서 곡주 한 잔 들고 아저씨의 가치관을 처음으로 듣다.

결국 두 사람은 그런 차이로 오래 의견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열심히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겠지 하고 그저 몸만 움직이는 이와,

당장 눈에 거두는 게 있어야 했다는 다른 쪽.

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

사는 일이 참 그렇다.

누군가의 처연한 죽음 앞에서도 우리는 밥을 먹고 웃고.

잔인하고 먹먹한 일이다.

사는 일이 별 거 없다는 생각을 또 한다.

그저 세상 끝 날까지 지극하게 살기’, 내 소망은 그러하다.

한 세상 애쓰셨네. 잘 가시라, 그대!

 

측백나무 분양이 뭐예요? 홈페이지에 없던데...”

더러 문의를 한다.

누리집에 첫 화면에 나오지 않기 때문인가 보다.

“2차 측백 완판? 아니지요?”

이런 문자도 왔다.

아직 아니다. 마흔여덟 그루가 남았다.

측백나무를 분양한 값은 아침뜨락에만 쓰일 예정이다.

미궁 한 쪽의 편편한 땅, 건너 위엄 있게 선 소나무를 보는 자리에

둥근 명상토굴쯤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6월 연어의 날에 계획한 일의 결과를 볼 수 있다면 고마울 일이지만

형편 봐가며 하련다.

천천히 소식 올리겠다고 전했고,

관심과 지지 고맙다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봄날이시라 기원하며 재공지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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