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30.흙날. 맑음

조회 수 281 추천 수 0 2020.08.12 11:44:34


 

여기는 물꼬. 주말이니까.

언제나 시작은 눈물로, 라던 노래가 있었다.

언제나 시작은 청소로! 그렇다, 마치 그 노래처럼.

이른 아침 잠을 깨 청소를 한다.

사람이 비운 공간은 늘 다른 존재들이 채우기 마련.

해가 닿지 않는 욕실에는 변기 한 쪽 물기가 까만 곰팡이를 불렀네.

 

낮 밥상을 차리기 전 기락샘도 들어왔고,

제습이와 가습이들을 풀어 마당을 걸었다.

할 말 많은 가습이는 잘 놀아주는 기락샘을 향해

보이기만 하면 제 옆에 오라고 짖어대고.

개들이 순해서 좋네.”

마을 할머니 한 분이 상추를 나눠주러 와서 그랬댔지.

짖어야 할 사람, 아닌 사람 잘도 구분하는 습이들.

 

요새 이중생활 중.

주중에는 제도학교인 한 초등학교에서, 주말에는 비제도학교인 물꼬에서.

물꼬는 주말마다 공식적인 일정이든 아니든 사람들을 맞고 있다.

책 사인 받으러 갑니다!”

원규샘과 솔샘과 엄마 뱃속에 있는 8개월 까꿍이가 같이 오고 있었다.

늘 그냥 오는 법이 없는 원규샘이 내가 일러준 목록대로 장을 보고 오는 길이었는데,

에구, 다시 전화할 일이 생기다.

어디쯤?”

상촌 막 지났어요.”

차 돌려야겠네.”

세상에! 물꼬에 국수가 떨어지는 날이 다 있다.

200그램이 채 남아있지 않은.

국수 한 다발을 부탁하다.

세 식구가 학교 마당 가장자리 감나무 아래를

감꽃 밟고 걸어오고 있었네.

 

낮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햇발동과 창고동을 둘러보고 아침뜨락을 걸었다.

심겨진지 얼마 되지 않은 접시꽃과 부용화와 오죽이 맞고

한창 꽃을 피운 금낭화와 장미와 백리향과 수국이 인사했다.

달못 가 배롱나무와 자작나무들은 뿌리를 좀 내렸나 보았다.

달못에는 연잎들이 잎을 키우고 있었고,

밥못에는 가래와 네가래와 어리연꽃잎과 부들잎이 자리를 만들어가고.

!”

아침뜨락 가장자리 언덕에는 산딸기가 익었다. 통통하게 익었다.

한 움큼 따서 까꿍이 맛도 봬줬네.

햇발동 앞 데크 테이블에 앉아

코로나19 앞에서의 학교 풍경을 나누다, 모두 학교에 있는 이들이라.

고마운 날씨였다, 해가 쨍쨍했더라면 땀깨나 흘렸을 날,

해가 가려져 있어 걷기 좋았댔다.

우리 까꿍이 좋아라고 그랬던가 보다.

원규샘은 장인과 아침마다 운동을 하고 들어와

아내의 밥상을 차려준다고 했다. !

내 생에서 만난 가장 아름다운 풍경 서열 상위에 두겠다.

이주욱 교수님이 전해주신 안부와 수박도 같이 잘 받았음요!”

그들의 연은 주욱샘으로부터 시작되었던(원규샘이 주욱샘의 대학 제자라).

물꼬 들린다고 주욱샘께 연락을 넣었던 모양.

 

사람들을 보내고 아침뜨락 대문 구실을 하는 감나무와 대장 바위,

대장 바위 둘레에 지난 주 꽃잔디를 한 판 심었고,

다시 두 상자가 와서 오늘 마저 심다.

물을 흠뻑 주고.

이른 저녁을 먹고 달골에 올랐네.

 

쌓여있는 물꼬의 메일들.

미처 답하지 못한 메일에는 기다리다 지쳐 하다샘 편으로 문자가 다 들어왔더라는.

이번에 낸 책의 출판사에서 홍보용으로 해야 할 일들도 쏟아져 있다.

, 오늘은 일단 좀 노닥거리기로.

주말과 주중 내리 일정을 돌리는 이번 학기,

딱 오늘쯤의 저녁은 쉼이 필요했던.

 

책 담당 기자 하나가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를 지면에 올리지 못하는 변을 썼더라.

수필 또는 산문이라 할 에세이는 지면에 주요하게 채택되는 경우가 드뭅니다.

문학의 영토에선 적자(嫡子)로 대접받는 소설에 밀리고, 지식 제공이란 측면에선

역사·인문서에 떨어지고, 시대에 대한 이해나 실용 방면에선 경제경영서나

자기계발서만 못한 것처럼 보이니까요.

(...) 삶에서 저마다 느낀 지혜를 말하는 책이지만 이번 주에도 지면을 제대로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글에서 제목이라도 읊어주어 고마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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