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31.해날. 한밤 도둑비

조회 수 277 추천 수 0 2020.08.13 02:31:27

 

주말에 서울에서 밑돌모임이 계획되어 있었더랬다.

그런데 제도학교 아이들의 등교개학이 불과 며칠 전.

다시 확진자가 불어나고 열흘,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확진자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서울을 다녀오기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다.

나 하나의 움직임으로 혹 이어질 수도 있을 감염을 피할 방법을 알지 못하는.

그렇게 여러 날 고민하는 사이 덜컥 주말이 가까워졌고,

연어의 날을 준비하는 밑돌모임(5.29)... 못했다.

기차표를 취소했다.

하지만 준비모임을 못했다는 것이 연어의 날을 열지 못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627~28, 예정대로 연어의 날은 한다.

 

달골 여기 저기 나무에 물을 흠뻑주었다.

마치 비라도 내리는 양 호스를 위로 한껏 들고 뿌렸다.

대처 식구들 반찬해서 보내고,

습이들과 오래 놀았다.

주인이 비운 집에서(학교아저씨가 있지만) 날마다 목을 길게 빼고 있다는 녀석들.

고민하는 젊은이들은 가끔 이 멧골로 글을 띄웠고,

오늘은 답글 하나도 보내다.

허망해서 절집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고,

허망하므로 더 정성스럽게 살겠다는 나 같은 사람도 있고.’

저마다 제 살 량으로 어떤 식으로든 살아간다,

부디 살아가시라 했다.

 

그리고 물꼬 누리집에 올릴 글 하나 쓰다.

 

                           --------------------------------------------------------

 

[긴 글]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저마다의 안나푸르나가 있다>(옥영경/도서출판 공명, 2010)

 

* 책의 수익금은 모두 자유학교 물꼬에 쓰입니다.

 

처음 이 책을 맡게 되었을 때, 저자가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건 마치 운명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책 디자이너가 된 것은 아마 이 책을 맡은 이유가 아닐까 하고요.’

연서 같은 이 글월은 무엇일까요?

 

마지막으로 책을 내보기로는 20년 전에 낸 시집이었습니다.

더러 글을 잘 쓴다는 어린 날을 보냈고

당연히 문학적인 글을 쓰며 살리라 했지만

재능이란 건 닦지 않으면 흙묻은 그릇이지요.

더구나 글이란 꼭 재능의 문제만은 아닌,

철학에 더 가까운 작업이 아닌지.

20년 동안 사는 일이 시이려니 소설이려니 하고 살았습니다.

멧골에 사는 삶이 만만치도 않았고.

그러다 할 말이 생겼고, 짬이 좀 났고, 더는 미루지 않기로 했습니다.

2018년 꼬박 한 해를 바르셀로나에서 보내던 중이었지요.

대학 잘 보냈다고 낚시를 하는 자녀교육에세이의 탈을 쓰고

나름 교육철학서 하나인 <내 삶은 내가 살게 네 삶은 네가 살아>

그렇게 나왔습니다.

 

이어 이듬해인 올 20205월 다음 책이 나왔습니다.

여덟 군데 출판사가 내자고 했던 <내 삶은...>,

그 가운데 한 출판사가 이미 다른 출판사와 계약한 교육서 대신

2017년에 한 일간지에 연재했던 트레킹기를 책으로 엮자고 제안했습니다.

작년 1월 말 계약을 했고, 내려던 시점에 코로나19를 맞았고,

사태가 좀 가라앉길 기다렸지만 장기전이겠다 하고 결국 내기로 했지요.

엄홍길 대장님이 표지에 추천사를,

다정 김규현 선생님이 책 안에 추천글을 주셨습니다.

 

여성 편집자 둘과 하는 작업이 즐거웠습니다.

게다 책꾸밈이도 여자.

아실까, 책을 쓴 나도 여자임.

그런데 이 책 꾸밈이로 말할 것 같으면...

어느 날 출판사로부터 유쾌한 비명 같은 메일이 왔더랬습니다.

그날 제 날적이의 기록 일부는 이러합니다.

 

책을 사랑하고, 마음이 맑고, 디자인도 좋은 분이에요.

저자 선생님 이야기를 죽 들으며, 그분이 저자 선생님 성함이 혹시?? 하고 묻더라고요.

그리고 선생님 존함을 들으며 정말 깜짝 놀라고 반가와했습니다.”

세상에! 그를 기억한다, 태정이와 보원이와 윤선이가 있던 탱자모둠!

1994년 여름의 물꼬 계절자유학교 원년 멤버들이이기도.

설악산으로 첫 계자를 떠나던 버스에서의 그가 생생하다.

내 나이 스무 대여섯 살 때이니 천지를 모르는 젊은이였다.

내가 만난 숱한 아이들 가운데 단연 몇 손가락에 꼽히는 고운,

그리고 퍽 사랑한 아이, 그때 초등 6년이었으니

그와 내 나이차이래야 열두어 살?

마흔 줄에 이르렀을 그이다...

좋은 곳을 통해 만나게 되니 반갑기 더하다마다!

참으로 그리운 그니.

저희도 이런 인연이 다 있나!!! 너무 깜짝 놀랐습니다.

(...) 선생님을 깊이 존경하고 있다고, 선생님과의 글쓰기 수업,

선생님의 가르침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해주었다고 합니다.

저희는 손을 꼭 잡고, 이것은 운명이 아닌가..하며 감격해했어요.

이 책은 이렇게 많은 의미와 인연으로 탄생 되려나 봅니다.

선생님의 교육철학을 담은 더 많은 책도 꼭 이곳에서 출간하시면 좋겠다고,

그만한 가치가 충분한 옥 선생님이시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저희도 같은 소망이고요^^”

메일은 이렇게 끝났다.

세상은 참 재미있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 품은 인연, 소망은 희한하게도 결국 내 곁에 찾아옵니다.

그런, 삶의 이치가 참 대견합니다.”

삶의 이치가 참 대견하다는 그 문장이야말로 대견하였나니!

 

스승의 날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저마다의 안나푸르나가 있다>가 인쇄본으로 나왔고,

며칠 전 책꾸밈이가 그린 그림이 액자에 담겨 물꼬에 닿았습니다,

거기 제가 직접 선생님을 생각하며 그린 그림이라는 손글씨의 편지가 함께 담겨.

임진강에 가서 북에서 내려온 풀들을 만져봤던 일,

꽁꽁 얼었던 산정호수에서 함께 썰매를 탔던 일,

함께 읽었던 전태일과 김정호 평전, 함께 봤던 영화들을 들먹이며.

 

내리 다섯 권을 계획하는 가운데 두 번째 나온 책입니다.

다음 책은 물꼬의 교육을 구체적으로 펼친 이야기를 내는 것이었는데,

그보다 먼저, 여름 방학에 집중적으로 쓸, 아들과 공저한 책이 되지 싶습니다.

청소년의 자립에 대해 쓴 일본 책의 한국판인 셈이라지요.

그러자 한 기획자가 아들과 독서에 관한 책을 내자고 또 다른 기획서를 보내오기도 했군요.

물꼬가 30주년을 지나며 이제 정말 그 세월들이 책이 다 될 모양입니다.

 

이 긴 글은 결국 책 사주셔요의 다른 말입니다.

수익금은 모다 자유학교 물꼬의 살림에 쓰입니다.

앞서도 사셨는데 또 사주십사 하는 말이고

다음 책도 역시 사주십사 하는 말.

좀 나아진 글을 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건강을 특별히 물어야 하는 시절,

부디 강건하시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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