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 하나가 쇼펜하우어의 문장을 보내왔다.

자신의 삶이 불행해지지 않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려고 애쓰지 않는 거란다.

 

제도학교에서 날마다 설레는 아침.

오늘은 아이들과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7시면 출근해서 책상 앞에 앉는다.

세상 소식 몇 들여다보고, 수업 준비도 하고, 일도 하고.

그런데 오늘 아침은 읍내 한 의원에 있었다.

주말에 들일을 어마어마하게 하고 와서 발에 탈이 남.

소염진통제나 처방받고 갈랬더니 당장 물리치료 안 받으면 큰일난다는.

교감샘한테 문자부터. 20분은 늦을 것 같다고.

관리자들은 교직원들이 현재 어디 있는지 알아야 하니.

지금 복무 달기도 어렵겠고 부지런히 오라는,

조용히 교장샘께 전화나 드려놓으라 하셨다.

아침마다 같이 노는 1학년 채밤이와 윤전이가 내내 날 찾아 돌아다니더라는

다른 샘들의 전언을 들었더라.

 

4학년 아이들의 국어수업, 이제부터는 교과서를 펼친다.

시로 시작하지.

특수학급은 개별학습이라 다르게 진도를 짤 수 있어서도 좋다.

시를 읽는 시간,

잔잔했고, 따뜻했다.

 

아이들이 하교한 뒤 특수학급에 마련하는 찻자리에

오늘은 교감샘과 아이 넷을 거느린 남자샘을 초대하다.

주로 여교사들 중심으로 차를 냈더랬네.

모든 샘들을 두루 불러도 좋으리.

누구나 그런 시간이 필요하니까.

어느새 동네사랑방이 된 찻자리니까.

서로 좀 알아가는 자리도 되는.

거의 같은 시대에 대학생이었던 우리들의 시간을 돌아보기도 하였더라.

같이 스쳐간 30년이 각자에게 어떻게 뻗어갔던가도 보았던.

자기 몫의 삶이 있었고, 그건 또한 모두 각자 제 선택이었네.

 

식구 하나가 송두율 선생 칼럼 하나도 보내왔다; ‘비관과 낙관 사이에서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발생한 백인 경찰관들에 의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살해사건이

미국 전역의 격렬한 시위로 이어지고

코로나19 위기와 인종주의가 섞여 내는 파열음은 유럽 여러 곳에서도 들리는 속에

절제되고 균형 잡힌 낙관주의가 필요하다는;

 

하지만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도 자란다는 횔덜린의 <파트모스 찬가>의 구절이 특별히 가슴에 와 닿는 이 시대에 순도(純度) 100%의 낙관주의만으로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없다. 그래서 구체적 유토피아를 주창한 에른스트 블로흐는 강박적 낙관주의를 실험되지 않은낙관주의라고 비판하면서 대신에 상장(喪章)이 걸린 낙관주의를 설파했다. 그저 삶을 즐기는 낙관주의가 아니라 싸워야 하기 때문에 입은 상처 때문에 낙관주의에도 검은 상장이 함께 걸려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당연시되었던 일상생활이 정지되면서 다행히 지금까지의 우리 삶의 양식을 뒤돌아보는 계기도 함께 왔다. 단순히 불편해진 일상생활이 문제가 되는 정도가 아니라 자칫하면 생명도 잃을 수 있다는 집단적인 불안과 공포는 우리가 망각했던 비관과 낙관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1755년 지진으로 폐허가 된 리스본을 위한 시에서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는 언젠가는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노래하면서도 모든 것이 당장에 잘될 거라는 환상을 경고했다. 절제되고 균형 잡힌 낙관주의는 코로나19로 인한 이 위기의 시대에도 필요한 덕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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