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16.불날. 맑음

조회 수 265 추천 수 0 2020.08.13 02:49:42


 

우리 모두 즐거웠네!

오늘 하루 제도학교를 나오며 생각한 문장이었다.

좋은 인연들이 서로를 살려주는,

아름다운 터전이라고 생각했다.

 

아침 6, 오늘 수업에서 쓸 수국을 찾아 마을길을 한참 걸었다.

아주 멀리까지 갈 줄 몰라 슬리퍼를 신은 채 나섰는데,

발가락이 불편해졌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소득없이 돌아오다

결국 학교 모종판에서 한 송이 뚝!

나중에 교장샘께 말씀드렸네.

 

아침, 오늘 있을 특강을 앞두고 책을 좀 들여다보자 했으나

젤 먼저 학교에 온 1학년 윤전이가 찾아왔다.

왜 혼자냐 하니 채밤이는 안 왔다고.

책을 같이 읽자 하니

날도 더운데 한바퀴 돌아요, 했다.

나가기로 한다.

내가 무에 그리 중요한 것을 한다고 못 나갈게 뭐람,

이 아이의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걸!

옥샘, 마스크!”

그렇다. 코로나19로 우리는 늘 마스크를 쓰고 있다.

말의 전달도 어렵고 덥기도 덥고.

그래서 띄엄띄엄 앉았을 때는 얼른 벗기도 하는.

놀이터로 갔다.

 

1교시 시작 직전

옆반 보조샘이 2교시의 내 수업을 당겨 1교시로 옮겨줄 수 있냐 물었다.

담임샘이 아직 오지 않은 모양.

안 될 땐 안 된다 해야.

1교시에 준비해서 2교시 수업을 할 참이었다.

죄송하다 답했다.

학교를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과학실에서 커다란 병을 하나 찾아냈다.

물을 채우고 안으로 수국을 한 잎 한 잎 띄웠다.

샘들 몇에게 부탁한 유리잔들이 도착했다.

(장애이해교육 특강을 하기로 했다.

원래는 외부강사를 들여서 해온.

본교 특수샘이 내게 일찌감치 부탁을 해왔던 일인데,

지난 쇠날에 다음 주 할 수 있겠냐 갑자기 날이 잡혔다.

날이 다가오자 슬슬 부담이.

여긴 물꼬가 아니니까.

물꼬에선 어떤 상황에서도 쓸 도구들이 손닿는 곳에 얼마든지 있으니까.

구상만 하고 있었던 터라 준비물을 물꼬에서 챙겨오지 못했다.

새벽부터 제도학교 교장샘이며 서넛에게 문자를 넣다,

혹 댁에 유리잔 있다면 5개 챙겨오라고.

물꼬는 손이 닿는 곳에, 또 필요한 것들이, 자기자리에 얼마나 익숙하게 있더냐.

남의집살이 하며 뭔가 하려면 이리 부산하다.)

 

2교시에는 1학년교실에서, 3교시에는 4학년 교실에서 특강이 있었다.

오늘 우리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할 것이다.

사랑하는 일, 사람을 생각하는 일이 어찌 아름답지 않으리.

그래서 거기 걸맞는 풍경을 가운데에 만들어 놓았다.

바다빛 같은 새파란 천을 놓고 그 위 유리잔에 양초를 켜고,

한가운데 유리병에는 물 위에 수국이 놀았다.

달콤한 먹거리도 하나 준비했다.

 

우리 모두 꽃이라며 풀꽃 노래로 1학년 수업을 열었다.

장애란 불편을 겪는 것.

우리 모두 장애에 노출돼 있다. 남의 얘기가 아닌 거지.

개인으로 해결이 안 되니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 몸만 해도 아픈 곳을 먼저 만져주지 않는가,

우리 교실만 해도 아픈 이를 먼저 살펴주어야지.

우리 반에만 해도 진새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 어떻게 그를 도울 수 있을까?

그가 겪는 어려움을 알려주었고, 예컨대 큰소리에 예민하다던가 하는,

따라쟁이인 그가 전체 흐름을 잘 따를 수 있도록

우리가 해야 할 행동을 먼저 보여주기로.

그가 잘하는 것도 있음을 같이 찾아보기도 하였네.

 

4학년들, 우리가 이번 특강에 동행할 소품들을 가운데 놓으니

무슨 의식이에요, 물었다.

책상을 밀어내고 둥글게 매트를 깔고 앉았다.

누구도 함부로 대해선 안 된다는 노래 하나로 시작.

동행하는 사물에 담긴 뜻을 전했고,

좋은 세상을 만드는 건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므로 같이 하려 한다 말했다.

왜 우리는 장애우를 배려해야 하나,

사람이 공부를 왜 하냐 따져보기도.

갈무리 시간 아이들이 말했다,

기분이 좋아져요,

왠지 좋은 마음이 돼요,

장애 친구를 도와야겠어요.

아이들 수도 제일 많고 드세고 억세다는 학년.

웬걸, 모두 한가운데 퐁당 빠지는 줄 알았다, 어찌나 진지한지.

 

요새 제도학교에서는 연일 모종을 심고 물을 주는.

4교시에는 손 보탰네.

오후에는 배구를 하는 교사친목모임이 있었고

모두가 마실 수 있는 차를 특수학급에 마련해 놓았다.

교장 선생님을 비롯 교감 선생님,

그리고 모든 선생님들,

오늘 하루도 모다 애 많이 쓰셨습니다.

이 더운 날 아이들 좋아라고 심으신 꽃들,

벙그는 꽃 마냥 우리들 모두 꽃인 하루 아니었을지요,

어느 때라고 아니 그럴까만.

특수학급에서 프랑스 음료 '떼오 오랑주'를 준비하였습니다.

시럽과 오렌지주스와 홍차, 그리고 애플민트를 따서 넣었다지요.

잠깐 들러 집어가신다면

기쁨이 자르르 떨어질~’

동료 하나가 건강식품을 선물하다,

같이 이번 학기를 보내주어서 고맙다고.

내가 와서 학교 분위기가 좋아졌다 하니 고마웠다.

 

이번에 낸 책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의 서평 하나 닿았다.

여정 소개도 좋았지만 단순한 소개나 나열이 아니라 삶이 녹아있는 이야기라서

더욱 와 닿고 매력적이었다고, 그곳과 그 삶들 모두가.

히말라야 골짝, 봉우리가 높은 만큼이나 깊은 골짜기를 다니셔서인지

그 골짜기만큼이나 생각에 깊이가 있으신 것 같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 여행지에 가면 보거나, 놀거나, 먹거나, 쉬는 것에 관심이었다

그런데 어떤 마음과 태도로 여행을 마주해야 할지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고마운 일이다.

 

어제의 대전 확진자 3명 관련 동선이 중대본에서 왔다.

코로나19가 한 발 한 발 가까워지고 있는 것인가...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6556 2024. 1. 4.나무날. 새벽 싸락눈 옥영경 2024-01-08 299
6555 2024. 1. 3.물날. 눈 / 계자 사전 통화 옥영경 2024-01-08 188
6554 2024. 1. 2.불날. 흐림 옥영경 2024-01-08 131
6553 2024. 1. 1.달날. 흐림 옥영경 2024-01-08 143
6552 2023.12.31.해날. 흐림 옥영경 2024-01-07 140
6551 2023.12.30.흙날. 비 옥영경 2024-01-07 146
6550 2023.12.29.쇠날. 미세먼지로 뿌연 옥영경 2024-01-07 138
6549 2023.12.28.나무날.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 옥영경 2024-01-07 151
6548 2023.12.27.물날. 맑음 옥영경 2024-01-07 206
6547 2023.12.26.불날. 맑음 옥영경 2024-01-07 151
6546 2023.12.25.달날. 눈 멎은 아침 옥영경 2024-01-07 134
6545 2023 겨울 청계(12.23~24) 갈무리글 옥영경 2023-12-31 236
6544 청계 닫는 날, 2023.12.24.해날. 가만히 내리는 눈 옥영경 2023-12-31 264
6543 청계 여는 날, 2023.12.23.흙날. 맑음 옥영경 2023-12-31 191
6542 2023.12.22.쇠날. 맑음 옥영경 2023-12-31 162
6541 2023.12.21.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3-12-31 142
6540 2023.12.20.물날. 눈 옥영경 2023-12-31 133
6539 2023.12.19.불날. 흐림 옥영경 2023-12-31 128
6538 2023.12.18.달날. 갬 옥영경 2023-12-24 175
6537 2023.12.15.~17. 쇠날~흙날. 비, 우박, 눈보라 / 화목샘의 혼례잔치 옥영경 2023-12-24 284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