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31.흙날. 맑음

조회 수 332 추천 수 0 2020.11.30 23:53:26


 

4주 위탁교육 가운데 마지막 해건지기.

11학년 아이는 숫자에서 더러 이가 빠지기도 했던 대배를

오늘은 꼭 채워 백배를 하겠노라 부지런히 엎드렸다.

간절함이 제 삶을 밀어가는 힘이 되기를.

내가 하는 절도 오늘은 오직 그를 향하기.

 

먼지풀풀.

지난 한 주 정리이고, 지난 한 달의 정리이기도.

햇발동 안을 3층 더그매부터 치우고 내려와

욕실이며 모든 공간을 청소하다.

1시간은 밭으로 갔지.

도라지밭 귀퉁이에 남아있던 곳 마저 패기.

어제로 끝인 일수행이었는데,

오늘은 1시간 마음을 내서 일을 도와 달라 하였네.

삐죽 눈에 걸리던 마른 풀 무데기 하나 있어 마저 하자고 한.

그가 내내 패 내던 밭이어 마무리를 한 밭을 보여주고 싶었던 욕심도 있었던.

그 사이 기락샘도 사이집 남쪽 마당 기세 좋은 푸른 풀들을 뽑았더란다.

오후에는 교과학습을 놓고 

충분히 쉬면서 이곳에서 하고팠던 것들을 챙기기로 한 아이.

 

가마솥방 난로에 연탄을 넣다.

예년에 견주면 좀 늦은.

더디게 오는 올 겨울 발걸음이라.

내일 마침 비 다녀간다고도 하기,

아이도 떠나고 그를 데려오기 위해 어머님도 오시기도 하고,

딱 불 피우기 맞춤한 날이겠네 한.

오후엔 잠시 베트남 아낙에게 건너갔네.

지난 7월 학부모 강의를 마치고 참가자들이 갈무리글을 썼을 적

한국으로 시집온 지 7년이 된, 말은 그리 어렵지 않으나 쓰기에 어려움을 겪던 이가

베트남어로라도 꼭 자신의 마음을 쓰고 싶다 하였다.

번역기도 돌리고 영어로도 돌려보았지만 해석이 어려웠던.

그러다 이이가 생각났던 거라.

내용인즉 그날의 강의가 그에게 대단한 감동을 준 시간이었다고,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딸 아이에 대해 걱정이 많았는데

마음이 든든해졌다는 말이었더라.

 

- 이것까지 해보고 가겠나 싶더니 (위탁교육 끝나기 전) 하게 되네.

늦은 오후 감을 좀 깎고 달았다.

11학년 아이가 학교 아래 밭의 감나무에 올라 장대를 들기도 하고,

본관 옆 컨테이너 창고 위에도 올라가서 땄다.

어제 두어 줄 걸어놓은 곳에 이어 깎고 걸었다.

겨울 아이들이 오가며 하나씩 곶감을 따먹을 것이다.

 

저녁에는 지난 4주간의 전체일정 갈무리.

홀로 챙겨나간 교과학습은 어느 정도 했을까?

꽉 차게 시간을 보낸 이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의 발걸음과 어깨 모양 부터가 다르지.

냉정하게 뒤를 돌아보았더라.

열심히 했다는 것과 잘 했다는 건 다른 문제이니까.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남은 시간을 꾸려갈지 그리다.

그야말로 이제 수능 준비기 돌입이니까.

쉽지 않은 여정이었을 것을 훌륭하게 해낸 그에게 박수를.

- 너 같은 사람이야말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에 있어야지!

사람의 마음을 아는 아이였다.

이제 그대는 공부만 하면 된다,고 자주 말해주었더랬지.

할 수 있다와 했다는 전혀 다른 문제.

해야지!

건승과 승리를 빌었네.

 

아침: 떡과 우유

낮밥: 잔치국수

저녁: 고구마밥과 미역국, 고구기구이, 깻잎, 소세지볶음, 참치부침, 감자조림, 알타리김치, 그리고 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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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탁교육 4주차 갈무리글.

늘처럼 맞춤법이 틀리더라도 고치지 않았으며,

띄어쓰기도 가능한 한 원문대로 옮김(그게 아니라면 한글 프로그램이 잡아주었거나).

다만 의미 전달이 어려운 경우엔 고치고띄워줌.

 

11학년 남학생:

물꼬는 기존 제도학교들과 완전히 다른 곳이다. 우선 내가 2년전까지 다닌 학교의 기억부터 살펴보면 행복했던 기억이나 설레고 좋았던 기억들은 학교 자체에서 나오는 게 아닌 그저 친구들과 함께하고 그랬을 때 느껴졌다.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들었던 기억은 학교에서 뿜어져 나오는 게 많았고 친구들과의 관계로 인해 힘들때도 내 원망이 학교에게 향할만큼 생각을 좁게 만드는 이상한 공간이었다. 청소년기에 가장 중요한 건 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내 자신이 성장하는게 청소년기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학교를 보면 그 둘 다 아닌 공부에 관한 학습능력을 1순위로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학교내 소외받는 학생이나 왕따 이런 것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학생들내에 결국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평균에 비해 덜 상장된 애들이 보통 그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청소년기의 가장 중요한 성장을 돕는 프로그램이 구체적으로 갖춰져있지 않다. 오히려 그런 학교폭력이나 무슨 상황이 발생한 뒤 그걸 수습하려하는 제도가 더 발달되어있다. 하지만 현실은 한번 그런 왕따나 이상한 애라고 인식을 받기 시작하면 전확외엔 그 위치를 탈출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소외받거나 친구들과 잘 못지내는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내라, 극복해라 등 헛소리를 하지만 어떻게 그 비참한 상황 속에 자신감을 내고 자신감을 낸다해도 그걸 받아줄 사람은 없고 어떻게 극복하라는건지도 모르는데 사실상 이런 상황을 예방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이곳 물꼬는 육체적 정신적 수양을 통해 총체적 성장이나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도와준다. 애초에 제도학교와 이곳은 비교하는게 힘들 정도로 차이점이 많은 것 같다.

 

짧지도, 길지도 않았던 것 같은 4주가 끝났다. 지금 당장은 그간에 느꼈던 모든 감정이나 생각이 나진 않지만, 느낌적으로는 내가 뭔게 되게 얻은 게 많다는 느낌이 난다. 얻은 것 중 정신적으로 내 내면에 대해 부정적인 것도 긍정적인 것도 몇 개를 깨달았다. 난 항상 쌤이랑 얘기를 할 때면 내가 뭔가를 하고 느꼈던 것들을 최대한 풀어서 말했다. 그런데 막상 그 뭔갈 하고 있는 때는 잘 생각이 안나고 의지도 없을 때도 많았다. 물론 내가 그때 느꼈던 것들은 다 사실이지만 막상 내가 실천했던 것들은 딱히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제일 중요한 것 이런 사실은 아는 것부터 시작하니 더 노력하면 될 것 같다. 그리고 이번 10월 달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임의 세계대회가 열리는 달이라 솔직히 중간중간 휴대폰을 많이 쳐다보고 동생이랑 그거에 대해서 연락도 많이 했다. 하필 이번 위탁교육하는 달이 이번 달이여서 겹쳐버리는 바람에 조금 신경쓰이긴 했지만 최대한 밤에 몰아서 그러면서 이곳에서 최대한 얻어가려고 했다. 게다가 중간에 여자친구와 헤어지기도 했고 여러모로 일이 있었지만 최대한 그런 것들에 휘둘리지않게 살았기 때문에 다행인 것 같다. 1주차엔 ○○이랑 같이 있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확실히 혼자 있는 게 여기 사는덴 도움이 된 것 같다. 나혼자 깊게 생각하고 수행하는 게 훨씬 좋은 작용을 한 것 같다. 2주차에는 이곳 생활에 거의 적응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침에도 눈이 잘 떠졌고 설거지도 능숙하게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혼자 사는 것도 첫주라 이곳에 삶에 적응했던 주였고 3주차에는 조금 쉬어가는 시간이 많았는데 이틀동안 쌤이 외지에서 일을 하셨고, 아프셔서 해건지기 안한 날도 있고 그래서 쉬어가는 주였던 것 같다. 물론 민주지산은 힘들었다. 이번 주, 마지막 주는 딱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주였다. 적당히 쉬고 일도 하고 수행도 했던 주였고 책도 많이 읽고 마지막 실타래겸 갈무리까지 잘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이곳에서 들인 습관과 생각들이 앞으로 큰 영향을 미칠 것 같고 특히 생각의 깊이와 더 넓게 바라보는 시선도 얻었기에 정말 도움이 많이 됐고 다음에는 동생도 데리고 오고 싶다. 지금 당장은 정말 지금껏 생각하고 느꼈던 것들을 다 쓸 순 없지만 정말 많은 걸 깨닫고 얻었고 생각하고 나눴기에 만족스럽고 뿌듯한 게 있는 것 같다.(2020.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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