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야 햇발동 이불을 빨았다.

10월 한 달 쓴 것들이었다.

볕이 좋고 빨랫줄도 실한 사이집 마당에 널었다.

어제 들어온 자작나무 세 그루를 오늘도 심지 못한 채

뿌리에 물을 흠뻑 주고 다시 천막을 덮었다.

내일에나 할 수 있겠다.

학교에서는 은행알을 주워 씻고,

그리고 옥상의 낙엽들을 쓸어내렸다.

 

진영에서 단감이 왔다.

한국에서 나는 과일 가운데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내게는 단연 단감이겠다.

이맘때면 잊지 않고 벗이 보내준다.

4주 위탁교육을 마치고 숨고른단 핑계로 여러 날 좀 널부러져 있었다.

더 이러다간 겨울 일정 밀려 혼쭐나겠다 할 때 딱 단감이 왔다.

먹고 힘내라는군, 정신차리라는군.

 

이제 흙집 뒤란 헐어낸 벽을 채워야는데...

더 춥기 전에 해야는데...

학교에 남은 황토는 거의 바닥이다.

그렇다면 그건 마감재로만 쓰고

일반 흙으로 작업을 해야겠다.

마침 고래방과 숨꼬방 사이의 앞쪽으로 흙더미 하나 있다.

겨울에 눈이라도 덮이면 그 작은 더미도 둔덕처럼

아이들은 비닐포대를 깔고 눈썰매를 탔다.

선물보다 상자에 더 관심 있는 아이들,

그들은 내게 소박한 기쁨을 어디서고 가르친다.

그 흙더미에도 풀씨는 내려

가끔 무덤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때때마다 모종 상토로 쓰이기도 해서 아주 치우지 않고 해를 더하고 있었다.

오늘은 뚜껑처럼 겉껍질 같은 풀 부분을 걷어내고

괭이질을 해두었다.

짚은 논농사 짓는 한 어르신 댁에서 얻어다두었더랬다.

엮어서 김칫독도 덮고 청국장도 띄우고 두루 쓰일 겨울이라 챙겨놓은.

작두는 있고,

5% 정도 섞을 생각인 시멘트도 헐어놓은 자루가 있고.

이런 일마다 쓰이는 대야도 아직 멀쩡하니 작업엔 문제가 없겠다.

여럿이 붙어 한 번에 많이 해야 하면 아예 부엌뒤란 시멘트 포장된 자리에서 섞어 바로 쓰거나

합판을 깔고 그 위에서 비비거나.

 

그리고 마음이 힘든 그대에게 문자 몇 줄;

 

아들아, 딸아,

내 삶을 돌아보며

그땐 그게 최선이었다하지만

그 말은 어차피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고,

그땐 그 행동이 바로 나 자신의 한계였다는 인정.

 

돌아보며 가장 후회되는 게 무어냐 묻는다면

감정낭비라 하겠다.

타인에게 너무 끄달리거나 한.

나는 그때 학위를 따거나 책을 읽거나 한 분야의 일을 하는 방법을 택했을 수도.

 

굳이 오늘 이 말을 하는 건

그대도 그런 것으로 그대 생을 허비할까 봐.

예민하다기보다 섬세한 그대들이니.

아깝잖아, 우리 시간들을 그리 버리기엔. 허망하기도 하고.

책이거나 공부거나 악기거나 한 분야에 대한 관심이거나

자신을 채우는 데(실력이라고 하자) 부디 더 집중하길,

사람들에게 덜 끄달리길(이거야말로 생의 최대 낭비!)

어느 쪽을 선택할지 결국 자신이 결정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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