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뭐예요?”

“오늘 이거 먹는 거야.”

“네?”

배식대 위엔 부엌서랍에서 나온 것들이 늘려있었습니다.

아침을 먹으러 내려온 아이들이 눈 동그래져서 물었던 것이지요.

아이들이 와 있으니 덕분에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정리 한번 해야지 하고도 그게 어렵더니,

서랍정리도 그러하였네요.

이른 아침부터 죄 끄집어내고 씻고 닦고 말렸답니다.

 

아침은 콩나물국밥을 냅니다.

그간 주로 아침으로 김치국밥과 김치콩나물국밥을 먹었네요.

맑은 콩나물국밥도 퍽 맛나지요.

저들이 만든 국물이 졸아버린 국밥을 먹다

물 있는 국밥이라 반가워했고,

왜 자꾸 자기들이 만든 국밥은

물이 사라지고 밥만 퉁퉁 부는지 또 물어왔더랍니다.

 

아침을 먹는 아이들은 다시 달골로 올라갑니다.

해날이라고 집에서 뒹굴겠단 말이지요.

스스로공부(개인 프로젝트)도 하고 빨래도 하고

책도 읽고 저마다 하고픈 뭔가를 할 것입니다.

여해는 어제의 카스테라 실패의 원인을 분석 중이었습니다.

“쑥을 으깨서 말고 즙으로 하면 어떨까?”

“그래 봐야겠어요.”

그런데 해수는 책방에서 책을 보겠다 하고

다형이랑 준이는 가마솥방에 얼쩡거리고 있었습니다.

“잘 됐다.”

“왜요?”

가래떡을 좀 썰어라 했지요.

꾸덕꾸덕 썰기 좋게 말랐습디다.

“이거 한 줄 남겨서 먹으면 안돼요?”

“오야.”

그런데 남기려고 보니 슬금슬금 욕심이 인단 말이지요.

두 줄씩을 남겨두었데요.

조청을 내주었습니다.

행복해하는 녀석들입니다.

저들 행복하게 하기가 이리 쉽습니다요, 하하.

 

‘해날큰밥상’이니 종일 저들 밥바라지를 할 것입니다.

설거지는 각자가 하지요.

점심으로는 토스트와 사과잼과 크림수프를 냈습니다.

그리고 후라이팬으로 구운 초코쿠기를 후식으로 만들었지요.

‘옥샘 뒤에 날개가 달려있었고, 머리엔 링이...’

먹는 것 하나로 저는 가당찮은 천사가 되었습니다.

이런 쉬운 일이 어디 있더란 말인가요.

김유며 선재며 다들 그러구러 놀았더랍니다.

저녁은 부추진달래겉절이에 두부조림, 오징어채, 호박오가리볶음,

그리고 김치참찌찌개를 했습니다.

아침도 점심도 얼굴이 뵈지 않던 희진샘,

저녁밥상 앞에는 왔더랬지요.

좀 쉬어졌길.

 

저녁에 호떡을 후식처럼 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불러도 아니 왔던 해수를

다들 호들갑스럽게 먹는 와중에 어느 순간 잊었지요.

뒤늦게 나타났지만,

다들 먹은 줄 알고 남아있던 걸

저녁 설거지를 도와주던 류옥하다에게 주며

다른 이들과 나누어 먹으라 했고 이미 호떡은 남아있지 않았답니다.

속상한 해수가 울며 화난다고 곁에 있던 친구를 툭 쳤고,

호떡집엔 왜 맨날 불이 나는 겐지,

오늘도 호떡이 화근이 되어 한참의 소요가 있었댔지요.

화가 풀리지 않은 해수,

아이들이 달골로 다들 출발하고도 한참을 더 뻗대며 화를 쏟았습니다.

다가가 네가 참 속상했겠다 안아줍니다.

속상했으면 그 맘을 풀어주는 게 먼저일 것입니다, 앞뒤 따지기 전에.

그제야 해수는 다음번에 먹겠다 하고

가뿐히 달골을 향해 달려갔더랍니다.

 

한데모임.

하루를 지낸 이야기들을 풉니다

여러분들도 중요하지만 샘들도 행복하도록 돕자,

오늘은 그 얘기 하고팠습니다.

“준환샘도 희진샘도 여러분들의 배려가 필요하시지 않을지요.”

‘무식한 울어머니’ 얘기도 덧붙입니다.

“죽으면 썩을 몸 아껴 무엇하냐, 늘 그러셨습니까.

몸을 더 움직여보지요.”

 

날이 잘도 갑니다.

덩달아 바쁩니다.

해날에 큰밥상을 준비하니 주중과 주말의 경계가 없습니다.

조금의 고단함이 배어나옵니다.

몽당계자 이후로는 좀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밤 대학교수로 있는 미국친구 하나가 자정이 넘어 전화를 했습니다.

놀랐지요, 일찍 자는 그이니.

아버지 부음을 받은 데다

같은 아파트에 있는 학생들이 너무 시끄러워 애를 먹다

그예 이 밤에 충돌하고 말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관리인을 부르고 경찰까지 부른 일이 있었나 봅니다.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지요.

관리자랑 직접 통화하며 상황정리를 좀 도왔습니다.

저는 벗에게 그동안 자주 미안했고, 부끄러웠습니다.

어떻게 한밤중 아파트에서 그토록 쿵쾅거리고 다니는가,

어째 그리 새벽이 오도록 소리소리 지르는가

문은 또 왜 그리 쾅쾅 여닫는가,

그는 오랫동안 자주 잠을 설쳐왔는데

하소연을 해도 바로 이어 같은 일이 벌어지더니,

최근 그 강도가 심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를 돌아다닐 적

어디서도 이렇게 타인에게 무례한 걸 본 적 없다 싶습니다.

생태가 별것이겠는지요, 같이 어불러 사는 일일 겝니다.

생태란 자연 속으로 간다는 의미도 없잖겠지만

우리 삶의 터전(그것이 도시이건 시골이건)에서

두루 조화롭게 사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겠느냐,

요새 하는 생각은 그러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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