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계자 여는 날, 2011. 1. 2.해날. 맑은, 참 맑은 / 아이들의 힘


마을에 들어오는 버스가 올라오지 못하고 있는 며칠,
으레 큰 길에서 갈라지는 헐목에서부터 걸어 들어올 걸 각오하고
안에서는 아이들을 태운 여행버스가 닿기를 기다렸습니다.
눈길을 헤치고 2km를 걸을 아이들 짐을 나누기 위해서
대기하고 있었더랬지요.
허나 예까지 버스가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이런 걸 우리는 물꼬의 기적이라 부릅니다.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며 사는 삶,
그곳이 물꼬랍니다.

‘일꾼들 모두 다 같이 분위기에 맞추어 천천히, 또는 빠르게 하지만 신중하게 자신의 일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 계자를 꾸리는 데 있어 정말 중요한 요소임을 깨달을 수 있었던 아침이었다.’(새끼일꾼 인영의 하루 갈무리글에서)
‘2010 겨울, 계절 자유학교
- 소복하게 저물었다 가는 겨울⦁1 -’이 문을 엽니다.

오랫동안 교류하던 한 시설에서 명단도 없이
아이들이 역에 셋이나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또 데리고 있어야지요.
다행인지 오기로 했던 아이 셋이 기차를 타지 못하였는데,
마침 그 자리로 들어오게 되었네요.
어른들까지 더해 마흔 하나가 이번 계자에 함께 합니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첫 일정부터 아이들이 차곡차곡 들어차기에
첫 일정에서 빈자리는 드문데
이번은 헐렁한 자리들로 한 명 한 명 더한 관심으로 보지 싶습니다.
언제나 먼저 참가인원이 찼던 첫 일정이
처음으로 뒤에 오는 일정보다 수명이 적은, 이런 계자도 있네요.
아이들 수가 많지 않으니 미리모임이 끝난 뒤 하는 준비들도
자정 좀 지나서는 마무리를 할 수가 있었지요.
한 시설에서 오기로 한 4명과 특수학급에서 오기로 한 4명이
데려다주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한편 운영위원회의 인가가 나지 않아
오지 못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데리러갈 형편도 아니고...
다음엔 꼭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훈정이가 집에서 놀던 연필들을 한 아름 몰고 와서 살림을 보탭니다.
현지는 너무 커버려서, 의젓해져서, 길에서 만났더라면 몰라봤을 겁니다.
효정 해온 세훈 류옥하다는 초등학교 마지막 겨울을
동생들을 도우며 이 산골의 혹한 추위 속에서
의미 있고 뜻있는 자리를 만들려지요.
정읍에서 오기로 한 가장 어린 지윤이가 눈 수술로 오지 못해
새해면 학교를 들어가는 한나가 막둥이네요.
지난 여름 내리 두 차례 계자를 이어했던 준우,
역시 나타났습니다.
잘 삐져 마음을 살펴주어야 했던 정인이가 성큼 자라
이제 함께 하는 이들을 두루 살피며 들어오고,
도균이가 이번엔 누나 유리를 그에 앞세우고 왔네요.
누구라도 만나면 기쁨을 얻을 자누,
새끼일꾼의 꿈을 너무나 당연히 꾸는 현우도 왔습니다.
그리고 준수 윤수 승 성일 성빈 유빈 민재들은 처음입니다.
아, 같이 온 선영, 빛고을, 예림이도 첫걸음이네요.
왔던 아이들과 처음 온 아이들이 그렇게 열둘씩 딱 반반입니다.

처음 오면 오는 대로, 왔던 아이들은 그들대로
어떤 계자일까 하는 기대로 흥분돼 있습니다.
샘들 역시 늘 하는 계자지만 설레이기 매한가지입니다.
‘아이들이 적은 계자는 처음이라 기대를 많이 했다... 얼마 없는 아이들 중에서 나를 기억해주는 게 너무 신기했고, 고마웠다.’’(새끼일꾼 윤지의 같은 글에서)
‘준우가 왔다길래 여름에 이런저런 사고가 있었는데 이번 겨울에 날 안좋아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나보다 더 반겨주길래 놀랬고...’(재훈샘의 같은 글에서)
그게 아이들이지요,
아이들은 그런 긍정의 존재들입니다.
그게 아이들의 힘이라지요.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얄지 헤맬 때
정작 그들이 길을 줍니다.
그게 또 아이들이 주는 힘이지요.

역으로 아이들을 맞으러 갔던 샘들이 들어옵니다.
경미샘은 어제의 미리모임부터 움직이고 역에 아이들맞이를 가고 하며
물꼬 계자의 시작을 알아서 좋더랍니다
아이들 모을 때부터 가르친다기보다
자유롭게 있다가 가자 하고 차에 오르는데,
스스로 할 수 있게끔 하는 이게 물꼬의 생각인가 싶더라지요.
현직교사로서 제도 밖의 한 교육현장에 대해
꼼꼼히 들여다보게 되나 봅니다.

안내모임을 하고, 밥을 먹고, 큰모임이 이어졌지요.
큰 틀만 주고 나머지는 아이들이 하고픈 것으로 채우기로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압니다,
이곳에선 프로그램 안보다 일정과 일정 사이에서
더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더 많은 배움이 일어날 수 있단 걸.
그림을 그리며 새해 덕담을 하고 소개들을 한 뒤
마을로 나가 한 바퀴 돌고, 동네도 굽어보고
이 마을에 얽힌 이야기들도 듣고 돌아오지요.
‘물꼬가 있는 동네 이야기도 듣고 산책도 해보고 큰 나무도 봐서 좋았었다.’(새끼일꾼 창우의 같은 글에서)
그리고 눈 두텁게 덮힌 큰 마당에서
한바탕 눈싸움 벌어집니다.
저녁을 먹고도 어둡도록 뛰어다니지요.
‘아이들과 눈싸움을 하고, 이글루도 만들고 평소에는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이루어지고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경미샘의 같은 글에서)
그 곁에서 눈 위의 축구경기가 펼쳐지고...
오랫동안 여기 있었던 아이들처럼
그렇게 모두 한 덩어리 되었더랍니다.
친해진 아이들은 새끼일꾼들 무등을 타고,
한나랑 유빈이는 세아샘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확인한다며
놀려먹고도 있었더랬지요.

‘이렇게 하루도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빨리 친해진다는 것에 내 자신에 그리고 물꼬라는 공간에 놀랐다.’(새끼일꾼 가람의 같은 글에서)
친해지니 아주 북적일 테지요.
그러다 그만 복도 현관 유리창이 깨진 일이 있었습니다.
뛰었던 해온이도 정인이도
그리고 곁에 있었던 누구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물론 치우면서도.
이것 또한 기적입니다.
날마다, 순간마다의 기적을 이렇게 체험하며
아이들과 보내는 날들이 갈 것입니다.
‘애들 뛰어다니는 소리 나서 말리려고 일어난 순간 쨍그랑~ 해온이가 책방 옆 창문을 깨고 말았습니다. 너무 놀래서 제일 먼저 다치지 않았냐고 물어봤어야 했을 것을 화부터 낸 게 지금 너무 미안합니다. “뛰지 말라 그랬지!” ’(유정샘)
너무 걱정되어 그런 것이겠지요.
저들도 알았을 겝니다.
‘아직 많은 얘긴 못해봤지만 함께 눈 맞추고 웃으며 이런 게 행복이구나 했다.’(현아샘)

저녁, 한데모임을 합니다.
노래가 넘치고,
모두가 한 마디씩 하는 이곳에 모인 소회를 나눕니다.
저녁마다 이 시간을 통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고
생각을 모으고 위로하고 위안 받고 할 것입니다.
손말도 배우고,
여느 때와는 달리 우리가락을 밤에 했습니다.
겨울에 어울리는 노래 하나 아카펠라로 불러더랬지요.
‘우리가락 엄청 좋았다. 우리가락은 진짜 꼭! 해야 하는 것 같다. ’(새끼일꾼 윤지)
늘 하는 말입니다만, 아이들은 참 금새 배웁니다.
금방 뚝딱 익혀 신명나게 패를 나누어 부를 수 있었지요.
함께 부르는 그 조화로움이 참 좋고 또 좋습디다.

춤명상이 이어집니다.
‘노래를 들으면서 명상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생소했고 새로운 경험이었다.‘(새끼일꾼 창우)
‘하루를 끝마치면서 한 춤명상... 정말 내용 있고, 의미 있는 ‘여름의 나무’라는 춤이 좋았다. 춤에 내 소망과 염원을 담은 멋진 밤이었다.’(새끼일꾼 인영)
이 정도 규모가 수행방 규모에는 딱 좋습디다.
깊이 침묵할 수 있었습니다.

‘...새해 첫날부터 귀중한 시간들을 내어주셔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다른 곳에선 느낄 수 없을 경험들과 좋은 추억들을 아이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계자를 왔을 때부터 왜 계속 물꼬에 오나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이들과 만날 때마다 웃음이 끊이지 않고 순수하게 노는 모습과 순수한 대화들 그런 것들만 보고 들어도 너무 행복합니다. 사회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행복함들 물꼬에서 느낄 수 있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의 희생으로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다면 기꺼이 희생할 마음으로 임하여 남은 계자 아이들이 더 재미있고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물꼬에 오는 아이들 너무 사랑합니다.’(희중샘)
우리를, 아니 세상을 환하게 만드는 그게 또 아이들의 힘이지요.
‘아이들이 적어서 빨리 빨리 친해지고 항상 다 못 외웠던 아이들 이름을 외울 수 있을 거 같아 진짜 그냥 좋다. 오늘 좋다는 말을 엄청 많이 썼는데 진짜 좋다는 말로 밖에 표현을 할 수 없는 거 같다.’(새끼일꾼 인영)

어떤 날들이 이어지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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