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담긴 표정으로 구름이 다녀간다.


소식이 바위처럼 앉아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다.

벗이 오래 앓았다. 물꼬의 논두렁이기도 한 그니이다.

멀리서 같이 앓았다.

오늘 건강하단 소식을 들었다.

고맙다.

그제야 물을 길어 왔다.

밥을 짓겠다.

그리고 무씨를 놓았다.

올 겨울에도 김장을 할 것이다.


안식년에도 삶은 계속된다.

여전히 공식 일정은 멈춰도 새로운 일정과 만남들이 이어진다.

연애를 시작한 적지 않은 나이의 연인들이 왔다.

물꼬에는 그렇게 짝을 만나 인사를 오는 이들이 있다.

직접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건너편에 세운 사람 하나를 통해 말을 나누기도 한다.

물꼬가 하는 다양한 역할 가운데 하나일 것.

사람을 만나는 것도 새로 시작하는 한 지점일텐데

그런 시간에 물꼬가 동행할 수 있음도 고마운 일이라.


노벨문학상에 자주 거론되는 작가의 긴 소설 하나를 띄엄띄엄 읽어왔다.

소설적 발상과

두툼한 세 권의 책을 끝까지 궁금케 하면서 읽도록 하는 힘,

사람에 대한 오래 품은 이야기가 매력적이었다.

절대적 선악은 없다, 서로 맞물린다, 결국 구원은 균형이다,

뭐 그렇게 읽었던 듯하다.

그런데 꼭 주인공이랄 것 없는, 그렇다고 변방의 인물은 아닌 한 인물에 꽂혔다.

그리고 그 인물을 스무 살을 시작한 한 아이에게 들려주었다.

“어떤 형태이든 남의 시선을 끌지 마라.

 지식이나 능력은 어디까지나 도구이지

 그것 자체를 자랑하며 내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참을성 있게 호기를 기다리고, 그 순간이 오면 단호히 덮쳐라.

 기척을 죽이고 상대를 방심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앞에 서려는 욕망이 강했던 아이가 듣고는 있더라만.

하기야 우리가 좋은 이야기를 듣는 만큼 그리 할 수만 있다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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