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을 맨다. 아침마다 맨다. 저녁에도 맨다.

때로 낮에도 맨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도 맨다.

안에서 하는 수행도 수행이고, 아침뜨樂을 걷는 것도 그러하지만

풀을 매는 것 또한 매한가지라.

생각을 없앤다? 아니. 수많은 생각이 풀뿌리처럼 딸려오고 사라진다.

그러도록 내버려둔다.

오늘은 자녀교육에세이 출간을 앞두고 아들을 생각한다.

그의 엄마여서 고마운.

잘난 아들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나랑 인연 맺어주어!

아침뜨樂 들머리 풀을 맸다, 넘들은 모르고 나만 알지라도,

이 너른 들의 표도 안 나는 한 뙈기라도.


보은취회에 다녀오다.

동학농민혁명이라면 전라도 고부의 동학접주 전봉준 등을 지도자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민중혁명.

동학은 1860년에 창도된 후 1864년 수운 최제우 선생이 교수형이 처해지는 등

조정으로부터 극심한 탄압을 받는다.

이에 제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은 경상, 강원, 충청 지역 포교활동을 거쳐

1881년 단양에서 『용담유사』(가사로 된 동학경전)를,

1883년 목천과 공주에서 『동경대전』(한문으로 된 동학경전)을 발간하고

1885년 충북 보은으로 피신한다.

이후 1887년 보은 장내리에 자리 잡고,

1890년대에는 교세가 급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이 무렵 동학은 민중들에게 신분적 차별을 두지 않고

빈부 간 유무상자(가진 자와 없는 자가 서로 돕는다)하며

상하귀천, 노소를 구별하지 않는 집단으로 알려져 평등주의가 실천되고 있었다.

그렇게 보은은

지배층의 수탈 속에서 사회적 평등주의와 경제적 균등을 지향하며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던 민중들이 동학을 매개로 결합한 이들의 중심 무대가 되었다.


“전국의 교도들에게 보은군 장내리로 모이도록 통문을 보내라고 지시한 최시형은 이튿날인 3월 11일 보은으로 갔다. 최시형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교도 수만 명이 모여 있었다. 또 보은 관아의 삼문 밖에는 이미 동학교도들의 주장이 담긴 <보은관아통고>가 나붙어 있었다.” (천도교회사초고 가운데서)

우리 수만 명은 힘을 합쳐 죽기를 맹세하고 왜적과 양적을 물리쳐 대보지의大報之義를 본받고자 한다. 엎드려 원하건대 합하여 뜻을 같이하고 협력하여 충의로운 선비들을 선발하여 함께 보국하기를 간절히 바란다.(<보은관아통고> 가운데서)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893년 3월,

보은 장내리에 동학교도들 2만여 명이 모인 민중집회가 있었다; 보은취회

(떡 값을 1푼씩 걷어 2만3천 냥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있는데,

당시 형편이 어려워 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으니 가진 자가 더 많이 내어 가능했을)

우리나라 최초의 민중집회로 일컬어지는,

1893년 3월 11일부터 4월 2일까지 열렸던 보은취회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열망으로

교조신원운동을 출발로

밖으로 척왜양창의, 안으로 보국안민의 기치를 내걸고

정치변혁운동, 사회운동, 대중운동, 민족운동으로 발전하는,

사회변혁운동으로 가는 전환점이었다.


보은취회 해산을 목적으로 보은에 와서 협상을 시도한 선무사 어윤중에 의하면

보은에 모인 이들은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 절박한 현실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지 않고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모여든 평화집회였고,

이들의 모습이 매우 질서정연하였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청결을 유지하였고

조금도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았다고 어윤중은 기록한다;

‘우리가 문(文)으로 문제제기하면 저쪽에서 글로 답을 하고’,

‘이것은 서양에서 일찍이 말하는 민회와 같은 모습이었다’

이 보고서로 어윤중은 귀양을 간다.

진압은 고사하고 그들을 높이 평가했다는 이유로.


그들이 내세운 해산 조건은

일본과 서양을 배척하고, 민씨정권을 몰아내고, 부당한 세금징수제도,

화폐남발법 폐지, 외국산 사치품 수입금지 등이었다.

그렇게 학정과 폭정에 시달리던 민중들이

새로운 세상, 백성이 편안한 나라, 사람이 하늘인 세상을 꿈꿨지만...

죽음이 보여도 나아간 길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아비였고 어미였고, 아들이었고 딸이었으니까,

연대하는 이들이 있었고,

새로운 세상을 이미 맛봤으니까.

보은취회의 비폭력 저항은 3.1운동으로,

그리고 이 시대의 촛불집회로 이어졌다.


보은취회를 실패했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가 바로 1893년 보은으로 향했던 그들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상, 사람이 하늘인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이다.

120여 년이 흐르고 그 뜻을 이어가는 이들이 그렇게 모였네.

우리 모두 하늘이었다!


사이집 욕실에 오르기 시작하는 냄새 원인을 찾아보았다.

건진샘까지 와서 살펴보지만 아직은 모르겠다.

작아도 집은 집이라, 집이라고 지어놓으니 참...

건진샘은 온 걸음에 달골 건물들 우수통도 살펴주고,

달골 대문 들머리 휘어 도는 길에 경계막도 두 개 세워주었다.

학교로 내려와 본관 보일러도 손본다.

온기가 가지 않는 곳들이 있었다.

물이 들어가는 관이 찌그러져 있더라지.

관만 바꾸면 되는 일이라지만

모터 쪽도, 관들이 들어가는 들머리 쪽도

헤집어 놓으니 마감이며에도 한 이틀,

그것만이 원인인가 불을 때고 확인하는 데만도 또 시간이 걸릴 테지.

낡고 오랜 살림을 건사하는 일은 참...

몸도 그럴 테지.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살펴야 오래 잘 쓸.


본관 복도 뒤란 창문의 비닐을 이제야 걷다.

5월 넷째주말 일정까지는 필요한 것.

일정 끝나고도 손이 못 갔던 일이었네.

봄이 끝나고야 봄이 오는 이곳이라... 그것도 여름 초입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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