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떨어진 기온이 내일까지 이어진다지.

바람도 제법 불고.

해건지기를 하고 아침을 먹은 다음

학교로 바로 내려가다.

도시락을 싸다. 산에 갈 것이다.

오른 자만이 볼 수 있는 풍경이 거기 있을 것이고,

산을 다녀온 나는 그 전의 나와 어떤 차이이든 있을 거란 걸 우리 알지.

버너와 코펠과 잎차도 챙겼다.

산에서 달이는 차를 더없이 좋아한다.

 

천천히 대해리를 나서 2시간 반 들여 민주지산을 올랐다.

여름계자에서 어김없이 오르는 쪽새골 지름길로.

아이들과 계곡을 놓고 쉬는 1지점, 2지점에서 우리 역시 다리를 쉬었다.

어라! 능선이자 3지점을 향해 가는 길이

정상을 향해 1km쯤에서부터 계단을 놓았더라.

길은 더 쉬운 듯했으나 피로감은 더 드는.

굽이굽이 걷는 길이 주는 재미가 사라진.

뭔가 주머니에 만지작거리던 소중한 걸 그만 잃어버린 듯한.

어디로 갔을까, 내 아름다운 시간은, 그런.

능선에서 철퍼덕 나무를 기대고 앉아 더러 오가는 이들을 보았네.

도시락에 수저가 빠진 걸 알았으니

젓가락도 마련해야지.

곧은 나뭇가지를 꺾었더랬다.

 

이제 남은 150m.

정상 아래 데크를 걸어, 여느 때라면 이 편에서 오르는 꼭대기를

반대편 쪽으로 오르다.

각각 홀로 오른 아저씨 둘과 한 바퀴 돌며 에워싼 산들이 무슨 산인가 따져도 보고.

저기 연꽃 같은 거요, 그게 가야산이어요.”

아이에게 빨치산의 행적에 대해서도 잠시 얘기 전하네.

지리산에서 그들이 이곳까지 어떻게 이동해 왔던가를

멀리 덕유산 쪽을 가리키며 알려주다.

다른 때 주말에 견주면 아주 한산했다.

그래도 인근 도시에서 온 이들이 몇 있었네,

다른 땐 아주 멀리서 온 이들을 많이도 만나더니.

이것도 코로나19의 영향일까.

 

정상 아래, 데크 너머에서 이미 여러 사람들이 여러 차례 썼을

작은 공터를 보았네.

무주 쪽이 보이는 곳이었다.

마침 밥을 먹고 일어서는 사람들이 있었더라.

옳다구나 하고 얼른 가서 우리가 자리를 잡았다.

쏙 들어간 듯해서 바람도 잘 닿지 않는.

도시락도 비우고, 물을 끓여 다즐링 잎차를 마시다.

볕을 쬐며 오래 놀았다.

소리도 한판하고.

내려서는 길이 쉽지 않음도 아이는 알았으리.

산은 오르는 게 다가 아니란 걸.

산오름의 맨 마지막은 안전하게 집을 만나는 거란 것도.

 

5시간의 산오름이었다.

학교로 돌아와 짐을 풀고

식구들도 실어 인근 면소재지로 나가다.

여러 해 전 가끔 물꼬 식구들이 바깥음식을 먹을 때면 들렀고,

맛났던 집.

요 몇 해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는다고들 했는 걸,

오늘은 누구의 입맛도 만족시키지 못했더라지.

식자재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왔다.

 

가방을 풀고 정리하는 것까지 산오름의 연장이라.

산오름을 위해 가방을 꾸리는 것도 함께,

다녀와 그 가방의 것들을 꺼내고 털고 씻는 것도 같이했다.

오늘은 산오름을 다녀온 나눔만 하고

모든 걸 접고 오래 씻고 충분히 쉬기로.
학생과 교사를 넘어 동지이고 동료이고 벗인 길이었다.

같이 걸어 고마웠다.

멋진 친구였나니!

 

아침: 토스트와 우유

낮밥: 도시락(김치야채볶음밥, 달걀지단,김치)

저녁: 짜장과 짬뽕과 탕수육, 그리고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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