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는 아니지만 이곳에도 택배기사며 우체부가 들어온다.

대문께 통나무 의자 위에 음료병들을 가져다놓고 드십사 써 붙었다.

물꼬를 방문하며 사람들이 들고 온 것들이라.

코로나19에 택배 물량은 어마어마하게 늘었다 했고,

그걸 그들이 다 감당하고 있었다.

과로로 사망한 사건들이 가끔 보도되었다.

배달음식이 남긴 쓰레기는 곳곳에서 한계치라는데...

 

해건지기를 끝내고 아침을 먹은 뒤

오늘도 밭으로 들어갔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 어떤 일의 성실이 모든 일에 대한 성실의 지표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더 자주 호미질을 했다.

땀이 삐질거리는 한낮이었다.

부지런한 노동 속에 뜨겁게 이는, 사람 같이 산다는 느낌이라.

그것이 주는 희열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11학년 아이의 호미질은 밥숟가락 깨적거리듯

차츰 힘을 잃는다.

이런! 그게 또 걸리는 어른이라.

아차! 그건 그의 일, 여기서 무얼 배울까는 그의 일.

나는 그의 안내자일 뿐.

나는 내 일을 할 것.

풀을 열심히 맸다.

어느 순간 아이도 다시 마음을 내고 있었다.

 

참새 두 마리가 햇발동 앞에 쓰러져 있었다.

가끔 이 계절에 있는 일이다.

먹을 것 좇아 가까이 내려왔다가 유리창에 부딪혔지 짐작되는.

끌어다 묻어주었다.

한 생을 사느라 그들도 욕봤네.

 

대처 식구들 도시락을 싸는 오후.

잔치 혹은 명절음식처럼 기름을 많이 쓴 날이었다.

마침 들어온 햄도 있어 애들 도시락처럼 햄전에 애호박전 고구마전,

부대찌개와 김치찜, 두부부침조림, 고기 절이고, 고구마샐러드샌드위치도.

참 남는 것 없는, 표 안나는 밥노동이어도 또 하는 즐거움과 가치가 있는 거라.

 

천천히 다가오는 올 가을 기온이라.

그래도 서서히 월동준비를 해야지.

물배추라고도 하는 물상추와 부레옥잠,

올해는 월동에 성공했으면.

집안도 너무 추운 이곳이다.

달골의 사이집과 햇발동, 학교의 가마솥방에 다 둬보려지.

한 공간쯤은 봄을 만나기를.

오래 전 햇발동 거실과 가마솥방에서 겨울을 나지 못하긴 했지만

다시! 

 

2층에 불이 꺼지고도 자정 넘어까지 거실에서 이어지는 하루라.

오늘은 책도 랩탑도 열지 않았다.

쉰다는 느낌이 필요했다.

영화 한 편 챙겨보았다; 조민재감독의 <작은 빛>

기억을 잃어버릴 지도 모를 뇌수술을 앞둔 주인공 진무가

가족들을 차례로 방문해 캠코더에 담으며

종국에는 세상 떠난 아버지랑 만나는 이야기.

기억 속의 아버지를 마지막엔 무덤에 가서 들어가 있는 아버지)

삶을 중심으로 생과 사의 무게를

직유와 생략과 은유를 잘 써서 말하는 감독이었다.

촘촘하게 그려냈고, 상징인데 그것이 일상의 자연스러운 영상이라 놀라웠다.

당연 연출이 돋보이는.

예컨대 전등 스위치를 껐다 켤 때마다 가족들 일상 공간이 그들 각 공간으로 이동하는 그런 거.

빛과 출렁이는 감정과 인물들이 잘 연결되는.

단단한 영화였다.

죽음의 여정을 삶의 길로 걸어가는 인간사를 잘 담았다고 할 만.

궁금해졌다. 감독이 누구인가?

나 같은 삶은 영화에서 재현될 수 없는 걸까?’라고 생각하며

만약 내가 영화를 찍는다면 나와 가장 밀접한 곳에 있는 것들로 영화를 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야기가 작거나 비루할지라도 내 곁에 있는 것들을 최대한 단단하게 담아내는 노력을 하고 싶었다.’

내가 글을 쓴다면, 으로 치환해서 그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그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며,

내 다음 글을 또한 기대한다.


아침: 시루떡과 우유와 사과

낮밥: 후렌치토스트, 토스트, 고구마샐러드샌드위치와 우유와 주스

저녁: 밤밥과 부대찌개, 애호박전, 고구마전, 김치찜과 코다리찜, 연무김치, 고구마줄기나물, 그리고 물꼬 요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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