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꼬 부엌살림 가운데 압력솥이라면 셋이다.

50인분, 30인분, 그리고 8인분.

8인분이라고 하지만 10인용으로도 충분하다.

많은 날을 8인분 솥만으로 밥을 한다.

솥단지가 작으니 화력 좋은 부엌의 가스렌지에서 자주 불이 솥을 넘는다.

나 아니어도 같이 쓰는 이들한테 자주 일러주지만

어느샌가 넘친 불이 손잡이를 태우는 냄새를 맡고야 마는.

웬만하면 중고라도 하나 새로 사요!”

손잡이 하나가 불에 타서 덜그럭거리고 있자

드나들며 자주 밥을 먹는 가까이 사는 논두렁이 말했다.

하지만 압력솥이란 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손잡이만 따로, 꼭지만 따로, 고무패킹만 따로

그렇게 구성해서 합체해도 되니까.

마침 도시 나가는 편에 그릇 가게에 보냈더니

손잡이가 잘 달려 돌아왔네.

 

낮밥을 먹고 식구들과 책 한 권을 안고 같이 얘기 나누다.

그리고 군산을 다녀오다. 아들이 사진사를 자처하며 따라나섰네.

4시부터 한 시간여 눈발 날렸다.

간 걸음에 동국사며 경암동 철길이며 신흥동 적산가옥도 들여다보고

바다가 곁이니 해물 많은 짬뽕을 먹고 오다.

동쪽으로 익산, 서쪽으로 황해, 남쪽에 만경강을 경계로 김제,

북쪽으로 금강을 사이에 두고 서천과 만난다.

금강 하구와 만경강 하구로 둘러싸인 육지와 황해의 섬들로 이루어진 이 도시는

일제감정기 일본인의 도시였다.

관개용수를 끌어들이는 수로가 있고 기름지게 펼쳐진 호남평야 끝의 포구는

호남과 충청도에서 수확한 쌀을 실어 나르는 항구였기에

일본인이 많이 모여 살았고, 당시 조선인과 일본인의 인구 비율이 55였다고.

근대기에 건립된 일본 불교사찰인 동국사가 거기 있다.

 

나는 일본식 담을 두르고 있는 동국사의 정문까지 갔다. 마당은 정결했다. 본당이 웅장했다. 서쪽으로 종각이 있고

거기에 큰 범종이 달려 있었다.”

; 고은의 자전소설 <, 고은> 가운데서.

 

한국의 전통 사찰과 달리 처마에 장식이나 단청이 없고,

바깥벽으로 창문이 많으며, 지붕 경사가 가파르다.

대웅전 옆으로 있는 종각을 둘러싸고 나지막한 석불들이 에워싸고 있는데

맨 앞에 아이를 안은 자안 관세음 수본존불상,

32면 관세음보살상과 12지 수본존 석불상이 그것들이다.

종 역시 일본식.

일본 조동종(종파)이 강제 지배의 역사를 반성하며 참회와 사죄의 글을 새긴 참사비가 있고

그 앞으로 평화의 소녀상도 있었다.

절 뒤란으로 언덕에 대나무 숲이, 그 아래 숲과 나란히 길다랗고 작은 정원이 있다.

절집 내부 갈등을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사람이 모이는 곳이 어디든 매한가지라.

사는 일이 품을 넓히는 일, 나도 안 되는 일을 타인을 어찌 탓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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