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계자 둘쨋날, 8월 10일 불날

조회 수 2062 추천 수 0 2004.08.12 18:44:00
2004년 97 계자 둘쨋날, 8월 10일 불날 저녁에 몰아친 소나기

< 그릇 하나에 바닷물을 담을 수 있을까 >

곳곳에서 아이들이 보글보글방을 하고 있었더이다.
잔치지요.
저만 먹자고 하는 게 아니라 이 곳에 모인 모두를 위해 마련합니다.
선호 지선 지은 영우 수빈 하연이는 화채와 약과를 만들고 있었지요.
"이게 뭐예요?"
고새 음식 이름을 잊은 하연이 묻습니다.
"약과예요. 모양이 좀 자유롭긴 하지만..."
"아아, 여기가 자유학교니까요?"
하연이가 볼 일이 있어 가끔 찾아올 때,
그를 보려면 한참 허리를 숙여야 합니다.
저 아래 있거든요.
그 순간 숲 속에서 요정을 만나고 있는 것만 같지요.
수박껍질로 만든 꽃에다 화채를 내고
감잎 위에다 약과를 차려내며
이 요정 아가씨는 우아하게 날아다녔더랍니다.

효진샘이랑 풀잎 책갈피를 만들던
은영 여연 영운 하연 해찬이가 지나는 저를 부릅니다.
"선생님, 어때요?"
아주 자랑스런 표정이야 말해 무엇하려구요.
94년 여름부터(첫계자) 이적지 그토록 많은 책갈피를 봤을 진데
저들은 알기나 할지,
그런데 그래도 말입니다, 다다른 그것들이 나름대로 다 이쁘단 말입니다,
애들처럼 미감이 떨어지는(헤헤) 것도 아닌데.
유정이랑 의륭 지수 창기 정민 지영이는 이근샘이랑
부채를 만드느라(하필 그들이 고른 재료가 하드보드입디다) 온 진을 빼고
다시쓰기에 몰려있던 지선 경민 지은 경은네들은
샘 없는 틈에 제게 하소연입니다.
"선생님, 상범샘이 이거 100개씩 세 놓으래요."
"찌그러진 것은 골라내래요."
그런 걸 다 시킨다는 투덜거림이고
구원해 주십사고
그냥 말붙여 보는 소리고 그런 게지요.
그때 지퍼가 고장난 지은이를 지선이가 끌어 제 앞에 놓습니다.
용을 써보지만 아무래도 돌아가서 고쳐얄 것 같네요.
한땀두땀엔 웬 열정이 그리 넘쳐나던지요.
성정 선호 희영 수빈 종원 다원 명주가
홈질도 아니고 박음질을 하고 있데요.
가마솥방은 옷감 물들이겠다고 풋감 찧느라 방앗간을 만들어놓은
명진샘과 윤수 채수 아영 찬희 서현이 부산합니다.
모래놀이터 곁에선
종진 동주 징장구(정혁이는 예서 그리 불립니다) 시온 진우 원일이가
열택샘이랑 조각할 나무의 껍질을 벗기느라 불러도 대답도 않습니다.
강당엔 영환 용석 종수 재우 주화 영빈이가 정규샘이랑 놀이연구 중이데요.
다싫다에 모인 식구들이였네요.
책방을 지키느라 영우는 소파에서 잠이 들고
광웅이는 '다싫다'도 다싫다고 방에서 뒹굴어 봅니다.
마음 상한 일이 있기도 했겠다 싶은데
그러다 나을 듯싶은 그인지라 지나쳐줍니다.
아이들 역시 어떤 일은 아주 심각할 수도 있겠지요.
허나 또, 긴 생애에 별일 아닐 수도 있을 겝니다.
아이 일들에 반응과 무반응의 적절한 선을 헤아리는 일,
어른의 지혜이겠습니다.
손말과 우리가락 끝의 열린교실 풍경이었지요.

깊어지는 교실에서는 물이랑 놀았습니다.
저녁 늦게 소나기를 준비하느라
더위는 산꼭대기만큼 찼는데
물방울이 이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그 썩 재미있을 것도 없는 이야기를
바람 한 점 넘어오지 않는 교실에서
줄줄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어찌나 열심히 듣고 앉았는지...
나가서는 동그라미 가위표놀이도 했지요.
물에 관한 질문들입니다.
"그릇 하나로 바닷물을 담을 수 있을까요?"
"아무 그릇이나 들고 가서 퍼담으면 되지요."
"바다만한 그릇에 담으면 되지요."
이래도 저래도 동그라미가 됩니다.
그 끝에는 이어달리기를 하며 물벼락 놀이도 했더라지요.
한숨 돌리고
모둠마다 물연구(?)에 나섰습니다.
한데모임에서 연구발표 비스무레한 걸 하는데,
하하, 재밌데요.
더러 물꼬에 머물다 가는 이들이
참 힘들겠다고 안쓰러이 보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이런 순간들의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를 끌고 간다싶어요.
1모둠은 그들이 만난 물의 느낌을 전했는데
용석이는 파도로
광웅이는 물방울로
여연이는 얼음이 얼었다 풀렸다 하는 걸로.
정규샘도 덩달아 나와 광웅이 윤수를 냅다 끌고 파도를 타고...
2모둠으로 넘어갑니다.
물이 만들어내는 소리들을 엮습니다.
정민이는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를 내고
물은 물인데 특별한 곳에 있는 물이라나요,
알고보니 우진 종원 주화 재우가 낸 건 콧물 소리였습니다.
경민 은영 선호 성정 희영이 위로 시냇물이 흐르고
남자애들은 우르르 샤워기 아래 몸을 닦더니
수영장 안으로 다이빙도 하네요.
여자들이 다시 몰려나오더니 저녁답에 닥친 소나기를 불러들이고
남자애들 질세라 번개를 쳐줍니다.
3모둠은 뭘 했을라나요?
"다른 모둠이 저녁 먹고 연습할 때
저희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설거지 풍경에서 만들어내는 물이야기입니다.
채수가 물로 행주를 빨아 짜더니 식탁을 닦고
해찬 동주 정혁이 만들어낸 세제 거품에 수빈이 그릇을 부시고
명진샘과 효진샘은 헹구고...
물에서 노느라 시간이 다 가버렸다는 4모둠,
"그거라도 보여줘!"
애들이 외쳤겠지요.
"여기서 바로 하면 돼."
즉흥으로 하면 된다고 류옥하다도 덩달아 큰소립니다.
그래서 물놀이가 무대에서 펼쳐진 게지요.
실감납디다.
하는 저들도 보는 우리도 흠뻑 빠졌지요.
"왜 나한테만 그래?"
물세례를 당하는 영운이는 정말 물꼬수영장에 있는 듯합니다.
"야, 비다!"
소나기 내린 탓에 우르르 학교로 왔듯
모둠 식구들이 객석으로 그리 내려오데요.

모이자 하면 꼭 더딥니다.
뭐, 더우니까요.
"자네들이 지키는 시간이 있긴 해?"
"그럼요!"
이 정도면 너도 알고 나도 압니다.
네, 대동놀이요.
지키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일찌감치 모여들있습니다.
광웅이는 어찌나 열렬히 응원을 해대던지요, 마지막까지 지치지 않고.
영운이, 이야, 질기데요, 기를 쓰고 막판까지 남데요.
남은 날 아직 많다고 떼쓰는 아이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우리 종수 선수 저 얼굴 좀 보셔요.
"아, 열심히 응원했는데..."

아이들도 다 쓰러지고
비로소 찾아든 고요입니다.
샘들은 밤 깊은 줄 모르고 아이들 얘기로 하루재기 가운데 있습니다.
방문자로 온 성혜샘이 그러데요.
우리 아이들이 여기 있는 샘들 모습처럼만 대해주면 정말로 좋아하겠구나,
동화책 읽어주는 것만 해도 바빠서 또는 귀찮아서 안해 준다,
그런데 여기선 분위기상
같은 동화를 몇 번이나 읽어달래도 안해줄 수가 없다,
많이 배워가겠구나,
하십니다.
"밤에 동화책 읽어주는 캠프는 거의 없을 걸요."
물꼬 아이들 일상에 대한 감탄을 꺼내놓으셨네요.
소나기 지나고 더위 화악 가라앉아,
덥다 덥다 해도 해 떨어지면 벌써 가을냄새 시작되는 산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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