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계자 이틀째, 8월 17일 불날 비 오락가락

조회 수 1986 추천 수 0 2004.08.18 17:28:00

< 밀도가 폭우같았던 하루 >

흔들리던 용석이 어금니가 빠졌고,
무당벌레가 제(자기) 바지에 앉았다고
학교가 떠나가라 유진이가 울었고,
성진이가 갑자기 마려웠던 똥으로 곤욕을 좀 치렀고,
발우공양이 어려워 아직 미적거리는 녀석도 있고...
춘향가를 이 대목 저 대목 들려주는데
추임새를 제법들 넣어요.
웃느라 몇 차례를 멈췄더랍니다.
맹랑한 녀석들입니다.

"그럼 깊어지는 교실은 어떻게 해요?"
여연이 귀땜에 병원 좀 나서려는데 용석이가 다가옵니다.
요앞 계자에서 깊어지는 교실을 해봤으니
안다 이거지요.
그런데 웬걸요, 우린 늘 다른 맛에 이 일 하는 걸.
그래서 아이들이 오고 또 오는 걸요.
"이번엔 여러 샘들이 나눠서
중심생각 하나씩을 맡아 사흘을 내리 하는 거야."
지난 번엔 샘들이 많지 않았던 까닭도 있고 해서
날마다 주제를 바꿔가며 제가 진행을 했더랬거든요.

종이로 뭐든지 만들어 보고 있는 교실은
아니나 다를까 '종이'를 알아보고 있나 봅니다.
세훈이가 개구리혀를 만드네요.
종이를 붕대처럼 쓴 얘기를 현우가 하자
우산처럼 쓴 이야기도 있다고 윤석이가 나섭니다.
건용 상현 정훈 운택 오인영이
종이를 다뤄보고 있습니다.
백합 전문가 젊은 할아버지도 끼셨더라지요.

저 모둠은 돌을 찾아나섰네요.
지난 번 계자에서 돌을 쌓고 예제 흩어져있던
돌부터 치우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제 맘에 드는 것을 고르기도 하네요.
그러다 큰 돌 하나를 둘로 나눈 땅(한얼)과 김제우,
하나씩 쥐고는 10년 뒤 만난다나 어쩐다나요.
상우 성훈 성진 성종 용석이들이
깊어지는 교실이 끝날 무렵 간 곳이 물꼬 포도밭이었다는 것,
포도도 따먹었다는 것,
저들은 비밀인 줄 알겠지만
우리는 다 안다지요.

여섯 여자들에 둘러싸여 민수가 있던 곳은
나무를 찾아나선 패들이었습니다.
다예 은비 다온 민아 문인영들이
나뭇잎을 쥐고 작업들을 했더이다.
나무가 되어 쓴 다예일기는 한데모임에서 읽히기까지 했지요.

삽과 호미를 들고 시냇가로 산으로 나가
(맹재우와 범준이는 삽질이 젤 재밌었대요)
공간마다 다른 흙들을 만져본 뒤
그 흙으로 그림 그림을 구경하던 우리들은
감탄에 감탄을 했더라지요.
용승이는 나무베는 사람을,
예림이와 재용이는 제 이름들을 쓰고,
유진이와 범준이는 해를,
윤규는 사막의 물을 그려놓았고,
도훈이는 이 곳 풍경을,
맹재우는 오늘 날씨를 옮겨놓았지요.
유상샘이 물꼬를 그리자
유효진샘은 물꼬의 개들 장순이와 까미
그리고 그 위로 날아다니는 잠자리를 그렸네요.
아, 유진이와 재용이가 네 곳의 다른 흙의 느낌을
굉장히 세세하게 적어주었더랍니다.

물이야 물가로 갔겠지요.
할말은 얼마나 많았을까요.
돌아와서 물 이야기로 그림을 그렸데요.
현휘도 재은 연구 나현 은정 준화 영신이도 거기 있었네요.
민재가 그림을 보여줍니다.
"사람이 많아요. 두 사람은 그냥 있고 이 사람은..."
그의 입만큼이나 그림도 수다스럽습니다.

열린교실은 유달리 풍성합니다.
세훈이와 민수 채리 류옥하다 민재가
요구르트병으로 성을 쌓기 시작했고
다온 연규 나현 다혜 하연이
치수를 재고 본을 그리고 재단을 해서
치마를 만들려합니다.
마음에 드는 강좌가 없었던 다싫다네들,
맹재우 준화 용석 도흔 용승이는
우리도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며
돌을 주워는 왔는데...
옷감에 물들이러 간 은비 민아 현휘 재은 오인영 문인영은
홀치기를 열심히 하고 있네요.
뚝딱뚝딱은 베어놓은 튜울립나무 가지와 대나무가 재료입니다.
도끼를 깎고 깎던 윤석이는
아직 이름붙이지 못한 작디작은 조각을 한데모임에 가져왔고
다른 걸 하다가 싫증난 성종이는 장승을
현우가 단소를 만든다 심혈을 기울이자
새를 깎던 김제우도 피리를 만든다 하고
칼은 어찌하고 달랑 얇은 막대 하나 가져나온 윤규는
칼이 막대가 된 나름대로 아픈 사연을 들려줍니다.
"하다가 안돼서 그냥 갖고 놀았어요."
칼로 갖고 놀았으면 칼인 게지요.
인형에 도전하고 있던 재용이,
"욕심을 내서 아직 완성을 못했어요." 합니다.
은정이가 아주 열심히 잘 하더라지요.
추상작품 하나와 장승을 둘 만들었더이다.
한데모임에서 선보인 부채들도 참 여러 가지였지요.
"설명이 안돼요."
아주 거대한 부채를 들고 나온 설성훈,
얇은 종이로(나뭇잎이었나) 리본을 붙인 예림이의 별모양 부채,
꽃모양은 유진이 것, 하트모양은 호정이 것,
"어디서 본 건데..."
건용이는 제 부채를 들며 그러네요.
풀잎으로 논 이들이 나올 때
우리는 책갈피나 엽서나 아님 풀잎 동화책을 상상했더랬지요.
아, 그런데,
이건 물꼬 계자 사상 최고의 걸작이다싶을 만치
훌륭한 책 한권을 들고 나왔데요.
풀을 뜯다가 개미며 무당벌레며 나비들을 만났다지요.
그들 이야기로 책을 엮자 하였답니다.
풀로 만든 곤충책쯤 되겠습니다.
풀잎들로 곤충을 만들고 설명까지 달아놓았습니다.
영신의 귀뚜라미, 정훈이의 나비, 한얼이의 무당벌레,
상현이의 잠자리, 범준이의 거미, 상우가 지네가
책 사이 사이를 기거나 날아다니고 있더이다.

음식 잔치가 있었던 점심 때건지기엔
저들이 만든 인절미가 나오고 칼국수도 나오고
찐빵 부침개 김치볶음밥 떡볶기도 나왔습니다.
간을 맞춰느라고는 얼마나 소란했을지요.
이 집 저 집에서 보내진 걸 나눠먹느라고는
또 얼마나 의견이 분분했을지요.
인절미를 찧는데 더디자
범준이와 상우는 잠자리 잡으러 어데 가고 안보이고
다예와 다온이가 진득허니 앉았기에 떡이 되었더라지요.
화채와 조청도 있었네요.
아주 먼먼 날이었습니다, 조청을 만들어 먹어본 게.
오늘은 맑은 것만 하려니 가라앉은 아랫것이 못내 아까워
죄 넣고 달였는데
걸쭉한 무슨 소스가 되었습니다.
감잎으로 차려낸 상에 화채와 조청을 차려내니
꿀처럼 달겨들지는 않지만
가래떡을 대신한 떡볶기떡을 열심히 찍어먹는 손들이 빠르기도 하네요.

풍성한 날이었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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