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2.19.달날.맑음 / 우아한 곰 세 마리?

조회 수 1908 추천 수 0 2005.12.20 09:54:00

2005.12.19.달날.맑음 / 우아한 곰 세 마리?

"샘은 하네 마네 해도 영락없는 샘입니다!"
까르르 까르르 넘어가는 우리들의 배움방을 지나며 식구 하나가 그럽니다.
그러게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세계는 여간해서 포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Angelo Branduardi라든가 Bach의 곡들, 그리고 국악동요를 늘여놓고
아이들의 작은 연극이 만들어내는 움직임에 맞춰보았지요.
틈틈이 음악이 아까워 발레동작으로 춤들도 같이 춥니다.
겨울이 훑고 있는 이 들판에서도 우리는 봄이더이다.

아이들의 기본 일과는 5시면 끝이 납니다, 물론 7시 작은 모임이 있긴 하나.
일을 마친 뒤 동아리활동이나 연구활동, 혹은 특별과외와 나머지공부(?)를 하려던 건
지난 학기부터 꿈꾸고 있던 일이지요.
헌데 9월 들어서는 피아노도 아예 잡지 못했지요, 아이들 말입니다.
허니 밥상머리공연도 없었던 가을학기였더랍니다.
산골살이가 좀 바빠야지요.
'잔치 잔치 열렸네'의 섣달 동안 못다한 것들 하리라 했건만
웬걸요, 아이들이라고 사는 게 또 뭐 그리 다를까요, 정신 없는 연말이라지요.
"그냥 가기 섭섭하여 망설이는 나에게..."
오늘 5시부터 드디어 벼락치기 피아노교습이 있었답니다.
재밌지요, 정작 저는 거의 피아노맹인데,
정말, 안다는 것과 가르친다는 건 다른 영역이구말구요.
뭐 제 식으로 가르치고, 지들 식으로 배우는 겁니다.
애래야 여섯 밖에 아니 되니 두 시간도 못돼 마칠 수 있지요.
대해리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게 된 사연(구른 차가 병원에서 돌아올 수나 있으려나...)으로
아이들과 더 신이 난 하루랍지요.
"아라베스크처럼!"
나현이가 알아듣고 피아노 앞을 떠나고
"스타카토를 이음줄처럼 치는 것만 주의하고..."
의심스럽게 쳐다보며 도형이를 단에서 내려보내고
채은이는 반주편 악보를 조금 고쳐주니 왼손을 한결 수월해합니다.
류옥하다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피아노 음으로 말도 안되게 옮겨놓던 그 실력으로
뭐 되는 대로 치다 나가고
령이가 '학교종'을 벗어나 제법 야물게 좀 더 우아한(?) '곰 세 마리'에 도전했고
채규는 령이 형아보다 수준이 조금 낮지만
마땅한 곡이 눈에 띄질 않는다고 같은 곡을 쳤습니다.
히히, 입으로야 뭘 못한답니까(가르치는 거요).
그런데 아이들, 저엉말 경이롭습니다, 어쩜 저리 쉬 익힐 지요...

푸하하, 아침부터 교장선생님 훈화(?)가 있었더이다.
그냥 이곳에서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한켠
스미는 것들을 통해 물꼬의 사상이라면 사상을 익히겠지만
아주 드물게 말로 나누고플 때가 있지요,
우울할 적 좋아하는 친구로부터 수다 떨며 위로를 받을 때처럼.
오늘은 물꼬가 왜 무상교육을 하려는 지를 힘주어 말하며
해월이 쫓겨다니다 남겼던 일화도 들먹이고
러시아 문학 한 구절도 나오고
어릴 때부터 꾸었던 꿈도 나오고...
이 아이들, 생을 같이 살아나가는 좋은 길동무라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요.

우리는 영락없는 선생이지 싶습니다.
아이들이 처음이고 아이들이 끝이면 될 테지요.
또 하루를 생에 더했습니다.
고마운 밤입니다.



* 덧붙임:

뭔 말을 못합니다요. 뽀르르 몇 어른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그리 어렵냐고.
'물꼬에선 요새' 꼭지가 마음을 어지럽혔던 모양입니다.
아이 참, 집 짓는 일은 다 해결했다니까요, 빚을 좀 얻긴 하였지만.
달골 공사 문제가 아니랍니다.
'물꼬 생태공동체'가 '자유학교 물꼬'를 지원하는 일이 밑도 끝도 없다는 엄살을
좀 부린 거지요.
집 잘 지었잖아요(조금 덜 끝남), 몇 달 어려운 학교 살림에도 커다랗게 보탰고.
산골에서 무에 그리 필요한 게 많을 라구요.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힘이 아니라
직접적인 끈을 가진 우리 스스로의 힘을 정비할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무엇보다 '무상교육' 대한 바른 이해는 물꼬가 안고 있는 큰 숙제였지요.
헌신을 한쪽에서만 오래 가지고 간다면 그건 분명 희생입니다.
자발적으로 기꺼이 행복하게 시작했던 일이
타자로부터 끌려가는 희생이 된단 말입니다.
그러면 어느 날 문득 일이 재미가 없는 게지요.
그러면 오래 가지 못한다는 거구요.
길게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지요, 이 아름다운 골짝에서.
관심 고맙습니다, 걱정 접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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