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같은 비였다.

잠시 긋더니 해가 나오려다 말았다.

다시 가랑가랑 내렸다.

천천히 아침 수행.

 

아침뜨의 달못 수로에서부터 아고라와 아가미길, 이어 미궁까지

깔아놓은 벽돌 양옆으로 패놓은 흙과 돌과 풀이 뒤섞여 덜렁거렸다.

마침 일하기 좋게 흙이 물을 적당히 머금었다.

괭이를 들고 들어가 흙들을 팼다.

낮밥을 먹고 오른 달골이었다.

 

학교에서는 겨울 털신이며 장화며 신발들을 꺼냈다.

아크릴 물감을 꺼내 그림들을 그렸다.

이걸 신고 서울도 가고 비행기도 탄다.

아이들 욕실에 수건걸이도 달았다.

전체적으로 계자를 준비하는 날들이니까.

 

, 며칠 전 사이집에서 타일을 붙이고 줄눈이시멘트 바른 게

갈라진 부분 몇.

너무 되직했던 게다.

바를 땐 바르는 대로 퍽퍽해서 밀어 넣느라 팔 좀 아팠는데.

역시 물 부족.

마침 곰보자국처럼 보이는, 기존에 있던 타일벽도 보이기

백색시멘트를 개서 덧붙였다.

비법 하나, 바로 바르면 열이면 열 다 깨진다.

그런데, 물을 미리 충분히 뿌리고 20여 분 뒤 덧바르면 깜쪽 같아진다는!

사이집 싱크대 상판, 조리대 상판, 세면대 상판,

이제 이것들로 연습 해봤으니 곧 식탁에도 해야지!

상판가장자리용으로 나무도 잘라 어제 페인트를 칠해두었다.

지난주 미스트랄타일 묶음용이 싸게 나온 게 있길래 사설랑은.

 

어른의 학교에서 요새 소묘를 한다.

우선 수다로 시작하고,

곧 연필을 쥐면 각자 엉덩이를 붙이고 하는.

점점 재미들이 붙었다.

수행에 다름 아닌.

90일 수행 일정 아니어도 다채로운 형태의 수행들을 하는 이곳인데

동안거 같은 여정에서 이런 것들이 더 빛나고 있다.

 

계자 신청 아이가 스물셋. 지난여름 숫자와 같은.

아직 시간 있고, 자리도 있고.

청계가 신청에 못 미치는 대신 또 초등계자에 아이들 붙은.

겨울이 여름을 넘는 일은 드문데, 좋은 소식이다.

 

밥바라지를 해보겠다고 나선 엄마가 있었다.

아이를 혼자 보낼 수 없는 게 큰 이유였는데,

그런 경우 대체로 아이가 홀로 보낼 수 있을 때 보내십사 한다.

처음 오는 경우라면 더욱 아이가 먼저 오고 다음에 엄마랑 같이 오십사.

그런데 마침 밥바라지가 빈 계자라 오신다면 도움이 되기도 하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뭐 메일을 보내놓고 이게 오라는 말이 맞는지,

너무 겁먹게 한 건 아닌가 싶기도...

 

                                -----------------------------------------------

 

우리 모두 만남에 처음이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 서로 아는 사람이 되는 거군요, 하하.

 

지난 메일에 이어,

 

밥바라지를 돈을 주고 써본 적이 없습니다,

물꼬의 교사 자리가 그러하듯이.

꼭 돈이 없는 가난의 문제라기보다,

하기야 이 깊은 멧골까지 돈을 벌러 식당 일을 하러 올 이도 흔치 않겠군요,

기꺼이 낸 손발로 아이들을 멕이고 싶어 했고,

지금까지 그러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러할.

 

밥바라지가 참 어려운 자리라

물꼬의 기존 식구들이 한다하면 반가워라 하고

새로운 누군가 하겠다 나서면 답을 좀 미적거립니다.

힘들 거든요, 거친 환경이라 더욱.

사람이 미워질 만큼 일이 힘들 수도 있는.

힘이 든 걸 보기가 때로는 더 힘들거든요.

웬만하면 내가 하고 말지 싶은 마음이 드는.

밥 일이라는 게 표도 안 나고 힘은 들고 빛도 별 안 나는.

밥을 먹지 않는 이가 없는데 그 일의 값은 싸거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그렇지만, 그래서 어떤 자리보다 자원봉사로서는 최고봉이라 할 수 있을.

 

이번겨울은 제가 밥바라지를 할 생각이었습니다,

샘들 가운데 한 사람쯤 뒷배로 붙어 달라 하고.

밥바라지 신청에 한편 반갑고, 한편 걱정이 일기도 했습니다.

사랑 아니어도 갈수록 누군가를 새로 만나는 일이 어렵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웬만하면 내가 힘들고 말지’, 그런 마음이 일어나지요.

하지만 힘든 그게 다가 아니랍니다.

우리를 고양시켜주는 뭔가가 있지요.

허허벌판에 달랑 천막 친 곳에 가까운 환경(아주 그 정도까지야 아니지만서도),

거기다 해우소(화장실)도 재래식,

그렇더라도

기꺼이 나를 써서 아이들을 섬기는 귀한 일에 함께해보겠다 싶으시면

동행할 것을 권합니다.

깊이 배우고, 진한 인연들을 또한 만나게 되지요.

함께하는 이들이 참 훌륭합니다.

이 넘치는 풍요의 시대에

젊은이들이 또 아이들이, 어른들이 왜 이 불편한 곳으로 오는가 이해할 수 있으실 겝니다.

기쁘고 즐겁고 유쾌하고,

때로 눈물이 나올 만큼 고단하지만

그건 또한 감동의 눈물이 되기도 한답니다.

 

우리 둘이서 밥바라지 한 번 해볼까요?

여전히 밥바라지 생각이 유효하시다면

간단한 소개서(두서없는. 아이들 이야기 포함. 그저 자신을 설명하는) 주셨으면.

 

, 함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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