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하고 해가,

쨍하고 좋은 소식들이.

서울의 벗이, 김천의 벗이, 수원의 벗이, 대전의 벗이, 거제의 벗이,

물꼬의 논두렁 혹은 지지자이거나 벗들이 측백나무를 분양해주고 있었다.

아침뜨락에서 계획하고 있는 다음 작업이

아무래도 시간이 매우 많이 걸리겠거니 싶다가

울타리 측백나무에 이름걸기를 제안했고,

사람들이 그렇게 후원을 하고 있는 중.

고맙다. 물꼬에서 사는 날들이 늘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다.

 

아침 6, 얇은 면장갑 위로 고무장갑을 꼈다.

간밤에 이은 작업이다.

뭔가 만들다 잠이 들었다가 다시 일어나 달려가는 아이처럼

재미나는 그런 거다.

타일식탁을 만드는 중이었고,

간밤에 시작했고,

오늘 다듬는다. 두어 시간이 금세 흘렀다.

학교에서는 계자 땔감을 준비 중.

 

아침뜨락에 들어 여전히 일을 한다.

12월 이 정도의 날수면 땅에서 하는 일은 거의 없는데

올해 날씨가 이리 푹하다.

옴자의 풀을 벴다. 자리를 다듬어야 글자가 모양을 잃지 않을 것이다.

벌써 몇 번을 쓰고 또 썼던가.

이제는 그 수고는 다시 안 하려고.

 

농협에 서류 하나 내는 일이,

휴일 지나 하지 했다가

혹시 하고 전화 넣으니 오늘까지이다.

때로 바로 그날 해야만 되는 일을 그날 알게 되었을 때

괜스레 대단한 무엇이라도 얻었는 양 하는 마음이 되는.

정말 생은 어쩜 이토록 자잘한 것들의 합체이던가.

 


- 그의 쌍수에 대하여

 

후원을 한 단체에 다음 해에 찾아가니

담당자 어린 여자애가 쌍수(쌍거풀 수술)를 했더라고.

돈이 허튼 데 쓰였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는.

...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일단 쌍수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지니고 있음을(물론 전혀 근거없을 수도 있다) 짐작했다.

나 역시 그런 마음이 적잖은, 옛날 사람이다.

말하자면 그런 가치관을 지닌 이가 내 도움을 담당하고 있구나 마뜩찮은.

그래서 신뢰도가 떨어지는.

그런데, 만약 쌍수를 한 그니가

쌍수가 생의 가장 중대한 소망이었다면?

, 그가 늘 주눅 들고 살다 쌍수로 자신감이 회복되었다면?

물론 이런 것으로 회복되는 자신감이라면 진정한 자존감이라 보기 어렵다.

하지만 모두에게 같은 가치관의 잣대를 댈 수는 없다.

쌍수 같은 게 내 삶의 자존을 세운다고 생각하지 않는 건 내 삶이고,

그러니까 무엇이 있고 없고가 내 자존을 세우지 않는다는,

쌍수로 자신의 자존을 세울 수 있다는 건 또 그의 삶이다.

제 쓸 것 제대로 안 쓰고 한 푼 두 푼 모아 어렵게 그렇게 했다면?

(그랬을 거라 생각한다)

 

다음은 '내가 기부를 했다'는 생각이 그에게서 다소 읽혔다.(이 역시 사실은 모른다.)

그런데 그건 그것의 쓰임을 위탁한 거지

담당자의 삶 전반에 대한 제어를 위해 준 게 아니다.

우리가 무엇을 주었다고 그의 삶 전반까지 관여하러 들어서야 되겠는지.

그러니 그대 계속 기부하시길.

월드비전을 생각해보시라.

2017년 한국월드비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전체지출 254.249,950,954원 가운데

사무비(인건비, 운영비, 업무추진비) 지출이 5,998,338,316원이었다.

지출의 42%였다.

(그에 견주면 물꼬는 참 열악하고 말도 안 되는 공간이다.

굳이 인건비를 따지자면 그것으로 쓰이는 금액이 하나도 없다.

일을 오래 하려면 이렇게 하면 안 된다.

하지만 아직 대안은 없다. 아니 여태 대안이 없다.)

그렇더라도 우리 계속 기부할 수 있기를.

단 하나의 생명을 구하기만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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