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안개 깊다...

 

아침, 두 시간 가까이 그저 아침을 준비했다.

책상 앞에 앉지 않았다는 말이다.

물꼬로 돌아올 준비, 짐들을 챙기다.

많았다, 이번 길은.

한 제도학교가 공사를 하면서 버려지는 물건들이 적잖았다.

저걸 다 어쩌나,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을 어쩌나.

또한 아무리 새 것일지라도 쓰일 것이 아니라면 가지는 건 욕심이라.

그 가운데는 물꼬에 요긴한 것들도 있었다.

가끔 곁에서 사람들이 혹 이건 물꼬에 가져가면 어떠냐 권해주기도.

생태적으로 산다는 건 덜 쓴다는 의미도 있지만

이미 나온 물건들을 잘 쓰는 것을 말하기도.

그리고 밥상을 차렸다.

분교 텃밭에서 나온 열무로 엊그제 사택에서 담은 김치와

누룽지와 차가 놓인 식탁.

그것만으로도 만찬인, 꽉 찬 밥상이었더라.

뭐하려고 그리 많은 걸 가지고 사냐, 이것으로 충분하다, 그런 생각이 깃들던 순간.

 

아침엔 빗속에 맨발로 본교 마당을 걷다.

거기 바람, 거기 나무, 거기 하늘, 마치 나의 나라라고 부를 만한 눈부신 풍경.

그 속으로 커다란 새 한 마리 하늘로 훨훨 날아오르다.

들어와 특수학급에서 해건지기, 우리들의 아침수행.

오늘도 또 한 사람이 늘어 같이 하다.

 

IEP(개별화교육계획), 부모에서부터 통합학급담임과 관리자의 결재들을 받는.

그게 또 관리자의 부재면 진행이 수월하지 않은.

분교로 들어갔다가 다시 본교로 와서 교무실 실무사샘까지 동원해

보고공문을 보내다. 역시나 본교 특수샘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던.

기한이 오늘까지였네.

퇴근 직전 관리자한테 전화 넣어 대기하십사 하고 무사 제출.

 

11시 교장실로 모이라는 안내방송.

스승의 날 기념 떡나눔이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오늘 알려드릴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세상에! 교장 그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

교장샘이 스승의 날에 더해 깜짝 출판기념회를 해주셨다.

아니! 저 알림판은 언제 만드셨대나.

커다란 책 사진 아래

옥영경 선생님 책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초등학교 직원 일동

여기저기서 책이 나온 상황을 알려오다.

드디어 온라인에 떴다는, 알라딘과 인터파크부터.

 

미리 실어두었던 짐에다 몇 가지 모종을 더한다.

본교 꽃밭이며 둘레의 정리가 한창이고,

거기 패여 나가는 꽃뿌리들이 있었다.

제도학교 교장샘이

(물꼬를 수차례 다녀가기도 했고, 당신 계신 학교 아이들과 1년짜리 프로그램을 꾸리기,

그 학교에서 특강도 여러 차례했던 몇 해의 인연.

이번 제도학교 담임 초빙도 그렇게 이루어졌던.),

수레국화며 부용화며 패랭이며 꽃양귀비며 몇 뿌리를 나눠주시다.

이거 저희 치우려고 하는데 혹시 물꼬에서 필요하시면...”

특수학급에서 자꾸 발에 채는 짧은 소파 하나도 실어주고.

아침뜨락에 손 보탤 몇이 들어오는 주말,

장을 봐서 대해리로 들어섰다.

멀리서부터 제습이와 가습이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저녁 물꼬에 들어와

아침뜨락의 달못 옆에 배롱나무를 심었더라.

그토록 앉혀주고 싶었던 연못가 배롱나무!

부슬비 아래 이따따만큼 어느새 자란 그 곁의 풀들을 뽑아내는데

달맞이꽃은 남겼다,

이제부터 달맞이꽃의 시절,

달맞이라 부르는 벗에게 소식 전할 때가 되었네.

내일 아침에는 달맞이를 시작으로 두셋에게 물꼬의 근황을 전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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