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24.물날. 비 / 장마 시작

조회 수 278 추천 수 0 2020.08.13 02:55:31


 

이른 오후 올 장맛비가 시작되었다.

 

사택에 불을 지피고 거실 바닥에 빨래를 널다.

새벽에 눈을 떠 책상(식탁이기도 한)에 앉는 대신

빨래들 사이 따순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수를 좀 놓았네.

쉬는 일이었다.

제도학교 지원수업 중인 주중은 오직 학교에 충실하기.

그러기 위해 늦은 시간까지 깨어있는 걸 피한다.

물꼬에서라면 새벽 2,3시 자는 게 예사.

그야말로 물꼬에서 잠드는 시각에 여기선 아침을 시작한다 할 만.

 

이른 출근, 특수학급 청소가 끝날 무렵

학교에 제일 먼저 오는 윤전이와 채밤이가 닿았다.

체육관으로 가서 공놀이를 한다.

찡찡이 채밤이는 울고 소리치는 대신 이제 제법 제 뜻을 잘 전한다.

그간 우리는 말하기 연습도 차곡차곡 했더랬지.

삐치고, 화내고, 바닥에 구르는 대신

내 마음을 표현하는 법, 요구하는 법을 익혀왔던.

 

1학년 통합 풍물수업이 있는 날.

특수아 진새도 보조샘과 함께 가락을 친다.

진새는 나만 보면 손을 모으고 애쓰셨습니다!”를 외치는데,

말을 길게 듣고 싶지 않을 때도 애쓰셨습니다!” 하고,

저가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애쓰셨습니다.”

그 말이 끝내는 인사인 줄 아는 게지.

진새의 급식을 도우러 가서는

앞에 있는 식판의 음식 익히기.

노래가락처럼.

먹는 걸 시도하기도 하고.

그의 감정이 오를 땐 가만가만 안고 노래를 불러주지.

 

물꼬로 일찍 넘어온 저녁.

제도학교에는 내일과 모레 연차를 냈다; '연어의 날' 준비.

신청자가 한번에 우르르 쏟아졌는데, 스무 명으로 마감.

코로나19 아래서 우여곡절을 겪는 거야 여기라고 다르지 않다.

전국에서 모이는 거라 조심스러운.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이들도 있고.

아침뜨락에 가서 백일홍 주변 풀을 뽑고 수로부터 치고 나왔네.

 

점주샘 맞이가 연어의 날 준비의 모든 것이여.”

내일 점주샘이 먼저 들어올 거다.

같이 사이집에 머물 거라, 사이집 청소부터.

벽시계 하나도 자리를 잡아주고,

들꽃들을 수놓은 앞치마 하나 현관 벽에 조각보 벽장식처럼 걸다.

이웃 덕조샘을 중심으로 사이집 북쪽에 쌓았던 돌담과 같은 선으로

준한샘은 서쪽 언덕 편에 붙여 돌을 더 쌓다. 완성!

그 사이가 사이집 들어오는 대문이 되는 셈.

밤에는 사이집 거실 천장 아래에 있는 커다란 사각 조명등 안의 허공으로

쉬폰 천을 드리웠다. 하하, 점주샘 맞이 끝.

 

지난 5월 낸 책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의 서평이 하나 닿았다.

단지 산을 오르는 내용이 아니다.

산을 오르며 작가가 고민하는 모든 내용이오르는 산보다 크고 높고 어렵다.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안나푸르다가 있다는 제목이 곧 책이다.

분명 히말라야 트레킹 이야기인데

나는 학생들의 교육을 고민하고

과거의 어떤 일을 잠시 떠올리다 이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생각한다.

답이 없는 문제를 생각하고,

답도 없는 문제를 고민하는 것이 삶이려니 l하고 잠시 멈추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모두 저마다의 안나푸르나를 찾길 바라는 것.

그리고 그 산이 단단히 그리고 담담히

자신과 우리를 지탱하길 바라는 것 뿐이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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