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20.해날. 맑음

조회 수 375 추천 수 0 2020.10.20 22:43:39


 

스무날이다, 9월이 오고.

봄은 느린 할아버지의 발걸음으로 오는데 가을은 뛰어서 온다.

경쾌한 뜀박질이 아닌 무슨 운동선수마냥 내달아서.

하기야 봄도 왔는가 하면 저만치 아이처럼 뛰어가고 말기도 하더라만.

 

손목이 좀 불편해서도 그랬을 터인데,

책들을 빼내는 일이 힘깨나 들었던 모양이다.

간밤 일찍 잠자리에 들고도 늦은 아침이었다.

오늘도 책방 일부터 잡았다.

책을 좀 치워내고 있다.

경제지에 있던 기자가 퇴직하며 사무실에서 그간 두었던 책을 치울 때

상찬샘이 물류 차를 동원해 실어 보내주었는데

아무래도 물꼬에 어울리지 못하는 책이 꽤 되었기

이참에 꺼내고 있다.

자기계발서 같은 거.

 

부엌 곳간도 바닥을 쓸어내고,

선반을 닦으며 묵은 것들을 치웠다.

청소를 할 때마다 갈등하다 다시 두고 둔 것들; 담근 포도주며 효소들이며...

발효가 덜 끝나 기다리던 것도 의도대로 되지 못하고 맛을 버린 것도 가끔.

오래 쥐고 있다 결국 버린다.

끌어안고 사는 게 어디 물건만일까.

던지지 못한 마음들도 내 안에 살고 있는 게 얼마나 많은지.

이참에 그렇게 짚어지는 것들도 사물에 붙여 딸려 보내기도.

그러다 잊고 있던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봤을 때 어여 먹어야지.

보리똥효소는 당장 부엌의 양념선반으로 보낸다.

묵은 고추장 항아리도 돌본다.

된장 간장은 묵은장이, 고추장은 햇것이 좋던데...

위쪽을 걷어내고 소금을 뿌려 봉한다.

매워서도 아이들 있을 땐 잘 먹지 않았던 것이다.

푸성귀들 박아 넣는 고추장장아찌용으로 써도 좋겠네.

 

낮밥을 물리고 습이들과 산책을 한다.

사람 말고도 같이 사는 것들의 기본 욕구를 해아리자 한다.

걷고, 냄새 맡고, 마킹하고, 놀고, 누고, ...

우리는 습이들이 사람을 물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야성을 잊지 않은 진돗개들이 사람을 공격한 예를 자주 들었다.

하니 묶어두지 않을 수 없는.

산책이라고 해도 학교 마당 안팎만 돈다.

마을로 나갈 땐 입마개를 해야겠지.

몇 차례 학교 뒤란 마을로 내려가 보기는 했지만

역시 입마개를 해야지 싶더라.

풀섶에서 새며 고양이며 바스락거릴 때 확 튕겨나가는 기세가 여간 사납지 않았으니.

 

어제 전체로 예취기를 돌렸던 달골도 학교도

오늘은 하얀샘과 학교아저씨가 각각 벤 풀을 긁거나 불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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