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했다고 오늘은 좀 나으려나.

시간흐름은 그럴 수 있겠다.

차도 조금 편안하게 달일 수 있겠지.

내리 나흘이지만 오는 아이들은 바뀐다.

중학교 전교생이 네 패로 나뉘어 들어오는 예술명상 수업.

이른 아침 수행부터 하고 아침뜨락의 밥못으로 가 못을 치고

창고동 난로에 불을 지펴 냄새도 없애고 찬기도 몰아내고.

날이 화창하지는 않으니 온기를 채워야 할.

가마솥방 부엌으로 달려내려와 오늘의 밥상을 준비하다.

밥도 내리 나흘 비빔밥으로 통일했다.

데치고 무치고, 남은 무채는 점주샘이 맡는다.

 

아이들을 맞고, 바깥 해우소를 먼저 안내하고, 가마솥방 들어서서 물꼬 한 바퀴를 시작.

달골 오르기 전 책방에서 이름표들을 쓰고 있는데,

오래된 이름표들에서 민서 이름이 나왔다.

민서가(이름이) 나왔어요!”

우리도 민서 있는데...”

그러자 같이 온 수학담당 현숙샘이 답했다.

그 민서가 이 민서예요!”

그랬다. 이곳에서 태어난 민서였다.

물꼬 일을 오래 같이 했던 샘 둘 사이에서 태어났던 아이.

지금은 면소재지에서 아동센터를 하고 있는데,

늘 사는 게 코가 석자로 교류는 드물었다.

버스에서(마을 주차장) 내려 어디로 가야 하냐는데 민서가 자기가 여기 잘 안다고...”

반가웠고, 잘 자라주어서 고마웠다.

니네 부모님이 고생하며 가꿔준 물꼬야. 그 바탕에서 지금도 무사히 학교를 꾸리고 있어.”

훌륭한 부모를 두었다고 칭찬해주었다.

뜨겁게 같이 일했더랬다. 그리운 시절이다.

보건담당 정원샘도 동행해왔다.

현숙샘이며 물꼬 공간이 좋아라 했다.

예술적이라고, 좋은 데 많이 가 봤지만 구석구석 아름답다고.

아이들도 물꼬 투어 뒤 그랬다, 폐교인데도 예쁘다고.

걸어서 달골 올랐고, 아침뜨락을 걷고,

창고동에서 차를 마시다.

어제보다 더 정리된 찻자리였네. 차도 맛있었다.

아이들이 티매트를 까는 것도, 다식을 놓는 것도, 감잎으로 찻잔받침을 두는 것도

민서가 도움꾼으로 잘 움직여주었다.

오늘의 다담은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시간.

자신의 관심사들을 들려주었다.

작은 학교이고, 그래서 사이좋게 지내면서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나눌 기회는 드물었다지.

 

달골 계곡에서 마을길로 합류하는 지점에서

길가 토끼풀 속을 유심히 보며 걸었네.

! 네 잎이 보인다. 다섯 잎도 보이고.

네 잎 토끼풀은 군락으로 잘 자더라.

여러 개를 뽑았다. 아이들에게 하나씩 쥐어주었다.

더러 제가 찾은 아이들도 있었다.

 

낮밥에 오른 달걀후라이가 어찌나 예쁘던지.

시간이 많아서...”

달골에서 조금 천천히 움직여서 내려왔더니 밥상이 그랬다.

뭘 맡기면 언제나 그 이상을 하는 사람과 일을 하는 즐거움.

그는 언제나 온 마음으로 한다, 그것도 효율적으로.

마음은 그 만큼일지 몰라도 효율에서는 떨어지는 나는

그런 점주샘이 늘 경이롭다. 무엇보다, 고맙다.

이곳에서 언제나 책임지는 자리에 있어서 일의 마지막이 내 눈을 거쳐야 한다면

그가 맡은 일들에는 일만 주고 눈을 돌리지 않아도 되는.

 

어제는 7학년다움으로 키득거리기도 하더니

호흡명상과 춤명상을 마치 오래 해온 아이들처럼 집중하는 아이들이었네.

8학년이라고? 한 살이라도 많으면 뭐라도 다르달까.

여선생님 두 분도 함께해서 분위기를 더하셨다.

나무춤을 추고 가마솥방으로 옮아가 갈무리글을 서둘러 쓰고 나니 어느새 나갈 시간.

다섯 시간이 이리 금세라.

 

아이들을 보내고 창고동 찻자리부터 정리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하지만 아이들 일정이 바빠 정리는 내가 대표로 하마 놓고 갔던.

달골을 나서는 저녁답의 하늘

불안정한 대기는 하늘에 분홍색의 잘 풀어놓은 수채화를 보였더라.

학교로 다시 내려서니 저녁밥 때.

어제는 낮밥에 남은 걸로 저녁에도 비빔밥을 먹고,

오늘은 저녁밥상에서 나물들을 반찬으로 먹고.

노란 소국 화분이 일곱 들어왔다.

하얀샘이 배달해주었다.

달골 대문 안 쪽 들머리에도 둘 올렸다.

낼도 들어오신다 하기 장볼 몇 가지를 부탁했다.

나흘 동안 쓸 장을 봤지만 예상보다 더 잘 먹는 중학생들이었다.

별 밥상도 아닌데 아주 맛나다고 했더랬네.

 

이틀을 보냈고, 이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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