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글을 보내주시는 분이 계시다.

지역의 작은 병원의 원장이면서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어느 날부터는 당신의 글이 와야 하루가 시작되는 듯하단 생각이 들기도.

읽지 못하는 날도 있지만.

날마다 써서 보내주는 글을 읽는 것만도 날마다 못한다니.

답문자 한 줄조차 게으르다가 오늘은 이 골짝 소식을 전하다.

선생님도 예술명상 수업을 듣고 싶다는 답문이 와 있었네

 

같은 일정은 내리 사흘,

오늘 아침은 사람 같이 일어났네 하며

06시 알람 없이 편안하게 잠을 깨다.

수행하고, 아침뜨락 밥못부터 치고, 창고동 난로에 불을 지피다.

여유 있었고, 그래서 외려 여유가 없기도.

익숙해서 느리작거린 면으로 아이들이 올 적엔 서둘러야했던.

가마솥방에 닿아 다림질부터 했다.

수놓아서 내놨던 티매트에 찻물 든 것들 있었고,

어제 빨고 삶고 말려두었더랬다.

5분이면 하리라던 일이 조금 길어지고

한순간 확 바빠져 버린. 하여 에너지를 한 번에 훅 쓴.

안내모임을 한 뒤 아이들이 이름표를 쓰고 달 동안 밥 한 술을 다 떴더랬네.

 

오는 아이들은 같은 학년이어도 서로 다른 분위기.

어제는 풍성했던 언어가 오늘은 아이들에게 자꾸 말을 시켜주어 다양한 말을 꺼내놓게 했다.

그러자니 전체적으로 일정이 좀 더뎌지는.

동행하는 샘들이 주는 분위기도 한 몫 할 테다.

오늘 같이 온 교사는 학교에서 근속 차가 두 번째로 긴.

그래서 지역에 대해서도 학교에 대해서도 구석구석 아는 게 많았고,

어쩌면 그런 만큼 이미 잘 안다는 생각이 새로운 곳을 만나는데 걸림돌이 되었을지도.

 

면소재지에 사는 아이가, 오늘 일정에 온 학교에 둘이나 있었다.

한 아이는 그 아이 어릴 적 장순샘네 밭에 손을 보태러 갔을 때 본 적이 있는.

커서 아빠처럼 농사를 지을 거라며

포도가 잔뜩 담긴 농사용 노란 컨테이너 박스를 번쩍 들던 열 살짜리 사내애.

그 아이 자라 중학생이 되었다.

지금도 농사꾼이 되려느냐 물어보진 못했네.

다른 한 아이는 이웃 마을에 산다고.

의정부에 살다 일곱 살엔가 고향으로 온 부모님을 따라왔다고.

모르세요? 이 집에 애들이 다섯(여섯이라고 했나...)인데 인간극장에도 나왔는데...”

인솔교사가 말했다.

저희가 세상 소식에 약해요...”

농사짓는 젊은 부모, 그리고 여러 형제들,

각만으로도 뿌듯해지는 이야기였다.

이야, 동생을 넷이나 거느린 한 집안의 장남! 멋지다!”

집안일을 많이 거든다고 했다. 고마웠다. 훌륭하기도 한 부모님이시라!

 

인간극장이라면 물꼬에 무려 아홉 번(여덟?)이나 섭외요청을 해왔던 곳.

특히 기락샘이 완강하게 반대하던.

너무 신파라는 게 이유였고,

내 편에서는 지나치게 영향력이 크다는 게 당시 출연을 고사하던 까닭이었다.

물꼬도 한 때 해마다 영상 다큐프로그램 영상물에 등장하던 적이 있었다.

환상을 키우지는 않게, 그러나 잊히지는 않게라는 생각으로

해마다 종이매체는 두 개까지, 영상 매체는 한 개만 등장하겠다고 선언했던,

그건 고스란히 물꼬 발자취의 기록이 된다는 긍정도 주었다.

하지만 몇 해 전까지만이었다.

물꼬의 움직임이 예년같이 활발하지 않은 까닭도 있겠지만

생각이 좀 달라진 바도 있었던.

이제 더는 그런 거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우려했던 대로 연출과 편집에 따라 얼마든지 내용은 달라지니까.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오류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만.

내보이는 삶, 굳이 민낯까지 무얼 위해 그리 내보였나,

농산물을 팔아야 한다거나 하는 홍보가 필요한 일 아니라면

굳이 그럴 것까지는 아니겠다 생각한.

그 생각이 어쩌면 한편 물꼬의, 혹은 나의 더한 고립을 가져왔을지도 모르지만

이후 이 삶의 고즈넉함이 좋았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저 조용히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내는 것, 그것으로 충분한.

사실... 물꼬 삶이 그리 내보일 게 무에 있겠는지.

 

어제까지 달였던 다즐링과 달리

오늘은 차를 처음 접하는 아이들도 낯설지 않을 얼그레이로 냈다.

차가 편안했다.

다식으로 촉촉한 걸 준비할까 하는 생각도 없잖았으나

내려가면 바로 낮밥을 먹을 거라 오늘도 마른 다식으로.

오늘도 비빔밥에 잘 볶아진 고기 고명과 참 예쁘게 구워진 달걀후라이가 얹혔다.

부엌에서 점주샘이 밥상을 편히 준비해줘서

진행자로서 매우 편안하기도. 어제도 그제도 그랬지만.

 

춤명상을 시작하기 전 호흡명상은 깊이 잘 몰입들을 하더니,

일곱 살들도 무난하게 하는 춤명상인데,

라고 중얼거릴 만큼 오늘 등장한 아이들은 기본동작 안내에도 흡수가 약했다.

다른 게 당연하겠지만.

다른 곳, 다른 시간에는 또 다를 수 있을.

성적대로 반을 갈랐냐 농을 할 만치 어제와 먼 거리의 분위기.

같은 아이들이 와도 그날 분위기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게

이곳에서 아이들을 새로이 만나게 하는 면이 되기도 하지만.

그렇다면 오늘은 오늘의 아이들로 잘 안내하기.

아이들이 못하면 그건 안내하는 이가 서툴러 그렇다고 늘 생각한다.

반나절 일정을 한 시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넣고 있으니

더 세세하게 잘 안내해야.

 

갈무리글을 끝으로 아이들이 일어서고,

3시 찻자리를 정리하기 위해 창고동으로.

마침 숨은 곰팡이라도 있나 싱크대 장을 들여다보다,

지난여름 길었던 장마가 여기라고 성할까 하고,

내친 김에 청소를 하자 든 점주샘.

그야말로 점주샘이 있어서 가능한.

누가 그리 일을 나서서 낡은 이 산골 후미진 곳을 헤집어줄 것인가.

손발은 또 어찌나 잘 맞던지.

함께 일하면 그렇게 기분 좋은 이들이 있지.

몇 해는 걱정 없을 만치 묵은 먼지를 닦았더라.

 

, 나흘 일정 가운데 내일 하루를 남겨놓으니 편안해진 마음에

우리들은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젖었다. 와인잔도 높이 들고.

어제는 요새 사람들이 많이 듣는다는 음악들을 두루 구경했는데,

오늘은 아주 사랑하는 음악으로.

, 이런 가수가 있었어?”

흘러넘치는 한 음유시인과 한 천재 음악인의 노래에 몸을 널고 쉬었더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6502 2023.11. 4.흙날. 흐림 옥영경 2023-11-12 266
6501 2023.11. 3.쇠날. 구름 걸린 하늘 옥영경 2023-11-12 271
6500 2023.11. 2.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3-11-12 228
6499 2023.11. 1.물날. 맑음 옥영경 2023-11-12 229
6498 2023.10.31.불날. 맑음 옥영경 2023-11-12 273
6497 2023.10.28.(흙날) ~ 29(해날). 대체로 맑음 / 10월 빈들모임 옥영경 2023-11-07 234
6496 2023.10.27.쇠날. 흐리던 오전 / 숲 안내② 옥영경 2023-11-07 226
6495 2023.10.26.나무날. 맑음 / 숲 안내① 옥영경 2023-11-07 245
6494 2023.10.25.물날. 맑음 옥영경 2023-11-07 252
6493 2023.10.24.불날. 좀 흐린 옥영경 2023-11-07 257
6492 2023.10.23.달날. 맑음 옥영경 2023-11-07 262
6491 2023.10.21(흙날) ~ 22(해날). 흐리다 맑음 / 10월 집중수행 옥영경 2023-10-30 367
6490 2023.10.20.쇠날. 갬 옥영경 2023-10-30 204
6489 2023.10.19.나무날. 밤 비 옥영경 2023-10-30 252
6488 2023.10.18.물날. 맑음 옥영경 2023-10-30 212
6487 2023.10.17.불날. 맑음 / 의료자원에 대해 생각하다 옥영경 2023-10-29 306
6486 2023.10.16.달날. 살짝 흐린 옥영경 2023-10-24 283
6485 2023.10.12.(나무날)~15(해날). 흙날 잠시 비 떨어진 걸 빼고 맑았던 / 난계국악·와인축제 옥영경 2023-10-24 269
6484 2023.10.11.물날. 맑음 옥영경 2023-10-24 232
6483 2023.10.10.불날. 맑음 옥영경 2023-10-24 264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