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 5.달날. 맑음

조회 수 427 추천 수 0 2020.11.15 12:05:09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로 시작하는 아침이었다.

천국이다. 아이들이 와 있고, 수행하고 공부하고 일한다,

깊은 멧골의 가을에, 마스크를 벗고.

정토다.

 

한가위 연휴가 있었던 지난 한 주 정오가 다 돼 일어났던 아이들이라지.

천천히 아침을 열기로 했다.

7시가 조금 지나 아이들을 깨우다.

깔개이불들을 각각 들고 창고동에.

창고동에 요가매트가 없는 것도 아니나 좀 차가우니까.

몸들이 뻣뻣해서 자주 서로를 보면서 웃었다.

몸을 풀고 대배를 하고 호흡명상으로 마무리하는 해건지기.

간단한 아침을 먹고

10학년은 온라인수업을 듣기 시작하고,

11학년은 차를 마시고 도라지밭으로 갔다.

일을 시작하기 전 농기구 창고부터 정리.

흙 묻은 삽이며들을 꺼내 씻고 말리고, 그 사이 창고도 쓸고.

아침뜨락 아고라에 들어가 잔디 사이 풀을 뽑자던 계획과 달리

도라지밭을 매기로.

일 방석도 꺼내 앉아서.

도라지는 목숨 줄 붙든 벼랑 아래 바위틈 풀 하나처럼 키 큰 풀들에 둘러싸여

겨우 겨우 얼굴을 땅바닥에 열거나, 가늘게 제 자리를 겨우 버티고 있거나.

살아 있는 모든 생의 장한 질김이라.

보랏빛 도라지꽃을 피운 것들은 앞서 풀을 매서 숨통을 틔워준 쪽에서 자란 것들.

이거 완전 콩쥐팥쥐네. 팥쥐는 거실 소파에서 온라인수업을 듣고

 콩쥐는 산 아래 자갈밭에서 김을 매는 군.”

 

한 아이가 12시 온라인수업을 끝낸 것에 맞춰 모두 달골을 내려오고,

13시에 다시 이어진 원격수업(16시 끝)을 들으러 콩쥐가 간 뒤 팥쥐는 설거지를 하고.

책방으로 가 여기서 지내는 동안 할 학습계획 짜기.

콩쥐가 지난여름부터 6개월 필리핀에 가 있던 시간들은 영어학원이었던.

다른 과목은 검정고시를 본 때를 빼고는 학습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필리핀에서 잠시 들어왔던 110일 이후 9개월간 말이다.

적어도 지방 거점 국립대를 가겠다 목표를 가졌지만

영어를 뺀 타 과목이 거의 준비되지 않은.

대입검정을 통과하긴 했는데 그건 그야말로 수능을 칠 능력이라는 의미일 뿐

수능 성적이 평균은 나온다는 의미가 결코 아님.

할 수 있다는 것과 한다는 것은 다른 의미이다.

현실을 모르는 자신감은 자신감이 아닌.

수영을 잘 하지만 하지 않으면 수영대회 입상을 할 기회는 없는 그런 거.

무엇이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지 가늠하는 사흘이 될 것이다.

그리고 위탁 기간의 방향을 잡겠지.

 

책방에서 아이들 읽을거리를 챙기다 기쁘게 만난 책 몇 권.

언제부터 찾던, 달못에 얽힌 이야기가 담긴 책도 찾았네, 얇아서 찾기 쉽지 않았던.

마침 찾던 자료도 손에 넣고.

관심 있는 분야의, 그러나 여태 보지 못했던 책도 찾고.

책방을 거니는 일의 즐거움!

아이들도 같이.

 

저녁 설거지와 가마솥방 바닥 청소를 모두 나눠 하다.

달골로 올라와 책 읽는 밤.

멧골의 짙은 밤 읽는 책이라.

갈무리에서 아이들이 말했다.

이렇게 알차게 보낸 시간에 뿌듯하고 아침에 몸을 풀어 맑았다고.

양말과 속옷 손빨래는 내일부터.

어제는 자정에, 오늘은 23시에 불을 끄기로.

 

벗의 문자가 닿았다.

그가 물꼬 다녀가는 걸음 편에

그 댁 어머니께 명절 선물을 못 보낸 대신 식사 한 끼 하십사 아주 작은 봉투를 보냈더랬는데,

그걸 또 어머니님 당신이 크게 받으셨더라.

그때 이 친구, 당신께 물꼬 측백 분양을 안내해드렸다지.

게다 돌아가신 아버지 나무도 해드리고 싶어 그 이름까지 올린다고 한 문자라.

어깨가 펴졌다.

세상에서 제일 괜찮은 친구가 나를 지지하고 지원할 때 드는

그 의기양양함이랄까!

때때로 보태는 손발도 모자라 돈도 보태고, 이제 부모님까지 물꼬 연줄을 만든 그였네.


아침: 인절미와 사과와 오렌지주스

낮밥: 잔치국수

저녁: 현미밥과 된장찌개, 고구마줄기김치, 깻잎졸임, 애호박볶음, 김치부침개, 떡볶기, 그리고 참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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