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사아저씨는 아침부터 쌀 방아를 찧고 계십니다.

땅에 묻은 김장이 있고,

된장 고추장 간장이 있고,

이 겨울 산골을 나가지 않고도

밥을 지어먹을 수 있다니, 고맙습니다.

 

식구들이 챙겨 먹을 수 있도록

밑반찬이며 찌개며 국이며 마련해놓고

이틀 동안 남도를 다녀오기로 합니다.

‘발해 1300호’ 13주기 추모제가 마산과 통영에서 있습니다.

늦은 오후, 선배가 가는 편에 우리 모자도 실려갔지요.

운영위원이라고 이름만 달랑 올려놓고

별 하는 일 없이 올해도 맞았네요.

 

97년 12월 31일, 발해 건국 1300년을 앞두고

네 명의 젊은이들이 그 시대의 뗏목을 복원해

옛 발해의 땅인 러시아 블라디스톡에서

발해 해상항로를 따라 바람과 해류에 의해서만 항해를 시작합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날로 심해지던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의 발해관 폐관과 서구의 해양국경선 200해리 선포 준비들이

그들이 뗏목을 띄우는 일에 박차를 가하게 했지요.

혹한 속에서도 24일 간의 항해는 성공적인 듯하였으나

98년 1월 23일 오후 일본의 오끼섬을 앞에 놓고 난파되고 맙니다.

장철수 대장과 이덕영, 이용호, 임현규 대원들은 그렇게 떠났지요.

잃어버린 영토에 우리의 주권도 있다고 생각했던 젊은이들,

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으려나요.

이후 전무하던 발해관련 박사논문들이 나오고,

발해관련 드라마가 만들어지고,

마침내 통영시 수산과학관 내에 기념탑과 네 분의 동상이 세워지고

교과서에 이름이 올려지기에 이릅니다.

그들을 잊지 않은 이들이 고맙습니다.

그 긴 시간 자리를 지켜온 이들도 고맙습니다.

그리고, 모여준 이들도 고맙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준비해준 이들이 더욱 고맙습니다.

 

첫날 장대장의 고교 모교가 있는 마산에서(마산 3.15아트센터 국제회의실)에서

추모음악회가 있었습니다.

마산에서 밤을 묵고 이른 아침 장대장의 고향 통영으로 이동하였지요.

달아공원을 지나 수산과학관 내 기념탑과 동상 앞에서 추모제가 있었습니다.

탑 앞에서 내려다보는 남해안은

말로 듣던 한려수도 그대로였지요.

죽어서야 그 뜻이 전해지다니요...

여전히 그들은 그 바다를 향해 뗏목을 타고 나아가고 있었지요.

 

개례, 헌관을 시작으로 헌촉, 헌향, 합수, 합토, 축문으로 이어가는 시간이

헌작, 참례, 헌다, 헌시, 헌가, 헌무로 길어지자

같이 간 아이에게는 조금 지리했던 듯도 합니다만

추운 날씨가 어려울 만치는 아니었고

그마다 다 깊은 뜻 있어

어쩌면 그냥저냥 떠밀려 살아가던 마음이

성찰로 돌아올 수 있게 도왔더랬답니다.

 

그런데, 뒤풀이를 갔던 아이가

이런 의미 있는 자리에 아이들을 위한 배려 더 있었으면,

아쉬움 토로하데요.

왜냐하면 앞으로의 역사는 저거들의 것이라는 게지요.

주최측에서도 당연히 그런 부분들을 이제 고려하고 있을 겝니다.

우리 문화로 봐서도

죽은 자를 위한 자리는 아이들의 삶과 무관하다고 생각하기 쉽지요.

왜냐하면 그들에게 죽음은 아주 먼 거리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아이들은 죽은 자를 위한 제라든지에서

사실 주변부일 수밖에요.

그 죽음의 의미가 점점 커지면서 나이를 먹어가는 게 아닐는지요.

다만, 왜 이런 자리가 마련되었는지, 왜 하는지,

짧게 다시 알리는 것은 아무리 반복해도 지나치지 않다 싶데요.

왔던 이들만, 그들을 아는 이들만 늘 자리하는 게 아닐 테니까요.

 

뭘해도 늘 먹는 일이 젤 큽디다.

제 음식이며, 안내소의 떡과 차, 그리고 뒤풀이,

잘 먹었습니다, 가장 크게 고마운 분들이십니다.

가득 쌓였던 설거지,

보고도 오는 길이 바빴습니다.

그나마 사람들 나간 자리를 같이 치우고 올 수 있어 다행이었지요.

같이 간 아이가 한몫했습니다.

 

고속도로 어디께였을 꺼나요,

저 북쪽으로 어둠 내리며 몰아치는 눈 보였습니다.

곧 그 아래를 달렸지요.

우리나라 최고의 바리스타라는 부암동 클럽에스프레소의 마은식님이

눈 깊어지는 예까지 동행해주셨습니다.

들어는 봄직한 직업이더니

바 안에서(즉석에서) 커피를 전문적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

뭐 그런갑습디다.

그런데 그가 들려주는 커피이야기보다

목공관련 주제가 더 재미나고 자극도 컸지요.

늘 고마운, 물꼬의 큰 논두렁이기도 한 박주훈 형님이

오래 운전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을을 나가다 미끄러져 차가 한 바퀴 돌았다 하나

무사히 댁에들 가셨다는 소식 들어왔네요.

 

헌데, 무슨 마음에 제대로 저녁밥상을 차려내지 못했던 걸까요, 글쎄.

머무는 시간 제법 되었는데도 말이지요.

어둠 내린 산마을로 들어서자마자 부랴부랴 와인을 내놓느라,

그리고 퍼붓는 눈에만 마음 쓰여, 가실 걸음만 생각했던 게지요.

‘지금’에 머물지 못했던 탓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음을 기약합니다.

 

눈보라치는 달골을 올랐습니다.

눈 짙어 개들도 침묵하는 밤이었습니다.

 

* 여러 날 뒤,

추모제를 다녀오고 쓴 류옥하다 선수의 글도 붙여놓습니다.

http://hada0614.blog.me/10102238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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