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자 열 하루째 1월 15일 나무날

조회 수 1978 추천 수 0 2004.01.16 19:01:00
< 모임이 셋이나 생겼대요 >

전체적으로, 보다 안정되고 여유 있는 일정이나 워낙에 같이 하던 일꾼들이 많다가 그들이 이제 좀 빠져나가고 나니 쉬 짬이 잘 안나네요. 아침 해 건지기 전에 잠깐, 점심 때 건진 뒤 잠깐, 겨울살이 때 잠깐, 저녁 먹고 잠깐, 샘들 하루재기 전 잠깐, 모든 하루를 끝내놓고잠깐, 그래서 이 글쓰기도 차츰 더뎌집니다려.
"옥샘은 절대 안가!"
여기가 집이니까요. 아침, 이불 안에서 아이들이 뒹굴며 누가 돌아갔고 누가 남았나를 따져보고 있더이다.
"여기서는 시간이 왜 이리 잘 가요?"
찬종이가 역시 이불 안에서 데굴거리며 말합니다. 그래요, 휘이 휘이 날이 잘도 갑니다.

오늘은 잠시 읍내에 회의가 있어 나갔다가 붕어빵을 실어왔습니다. 식기 전에 날라야한다고 열심히 달렸지요. 사기는 얼마나 쉽고, 얼마나 많은 상품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늘려있는지를 이런 계기에 아이들은 실감합니다. 이 산골에선 새로운 세계, 새로운 관계(우리가 알던 문화와 다른)가 문을 열고 있으니까요. 살아왔던 세상에 대한 거리두기라고나 할까, 그래서 관조하기, 돌아보기, 다시 보기를 한다고나 할까요.

어제부터 으윽, 하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면 소곤소곤방 녀석들이 꼭 있습니다. 고 아래 인석, 승찬, 영환, 재헌, 이런 녀석들이 깔려 있어요. 3, 4, 5년들이 예닐곱 살 아이들을 데리고 그런 모습으로 노는 광경을 보는 건 흔치 않은데, 새끼일꾼들 빈자리를 그렇게 느낍니다. 새끼일꾼들이 샘들 도움꾼으로서 자잘한 진행자의 역할, 어른과 아이 사이의 징검다리 역 따위 적지 않은 역들을 하는데, 그 가운데 아이들과 몸을 써서 놀므로서 실제 샘들의 방패(?)노릇하는 게 가장 커지요. 그들이 돌아가고, 이제 아이들 안에서 그렇게 지들끼리 형아로서 선배로서의 역할들이 이뤄지는 거지요.

젊은 할아버지와 열택샘이 들어간 김치볶음밥(이렇게만 읽으니 김치볶음밥에 젊은 할아버지랑 열택샘이 들어가셨다?)이 후라이팬에 많이도 눌었더랍니다. 예린, 희영, 홍주, 미녀 삼총사가 그 맛을 알아버려 십분이고 이십분이고 긁어먹고 있더랍니다. 자기들끼리 어깨 아프다, 팔 아프다 해대면서.
체육은 공포의 외인구단처럼 눈 위를 뛰어다니고 기태, 석현, 승찬, 채규가 죽도로 촛불끄기를 하였다는데 너무나 열심히 하고 잘하던 승찬이가 정작 실전에서 잘 되지 않았다 합니다.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게지요. 그런데 연습때는 되지도 않던 석현이가 세 차례나 촛불을 껐다는데(아무 생각 없이 해서?) 그 순간 진한 깨달음이 그들 위를 덮쳤다네요. 실력이란 게 그런 거다, 어느 순간이 아니라 꾸준히, 마음을 비우고, 그러면 어느 때일 것 없이 촛불은 꺼지는 거다 뭐 그런.
교생을 나갔던 경험을 전하면서 한 샘은 그저 그때 애들이 눈만 한 번 반짝하면 그게 감탄이었는데, 여기랑 견주면 터무니없는 감동이었답니다. 여기선 애들이 너무 많은 것을 너무 잘한다는 거지요. 게다가 서울에서는 이리 살지 못했다고, 해본 적 없는 숱한 음식들과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움직이는 것, 마음에 이는 열정, 여기 와서 정말 많은 걸 한다며, 그런 것들이 이곳으로 자기를 부르고 또 불러서 오고 또 온답니다.
한땀두땀 바느질에서는 시량, 정욱, 나영, 지후가 들어와 기를 쓰고 바늘과 실을 붙들더랍니다. 잘도 하구요.
동네어른 특강은 어르신이랑 짚을 가지고 놀았는데 그 힘 조절에 따라 쓰임이 달라지는 새끼에 대해서도 듣고 금줄이며 새끼를 생활에서 어찌 썼는지도 여러 가지 배웠지요. 굵기에 따라 엇따 쓰는 지도 들었구요. 동주, 호준이, 하다, 혜린이, 예린이,... 큰 놈이고 작은 놈이고 기를 쓰고 했습니다.
진만이는 줄기차게 뛰어다니고, 채규는 줄기차게 다른 이들과 부딪히고, 예린이 낮은 목소리도 줄기차게 말하고, 경민이는 높은 목소리로 줄기차게 떠들고, 연규는 한데모임에서 줄기차게 손을 들고, 경은이는 줄기차게 어깨에 올라타고, 줄기차게 줄기차게...
대동놀이며 밤에 함께 하는 시간은 뭘 해도 즐겁습니다. 어제는 손으로 할 수 있는 놀이란 놀이는 다했더랍니다. 쌀밥 보리밥에서부터 퐁당퐁당, 토끼와 거북이, 춘향이와 이도령... 옛날 이야기에 맞춰하는 손놀이는 그 얘기에 웃느라고 뒤로 아주 드러누웠더이다.(영환이랑 짝이었는데 어찌나 재미나던지 그래 웃어보기는 근래에 첨이었습니다, 이렇게 날마다 스무 번도 더 말한다지요.) 오늘은 비디오를 보았네요. <눈사람>. 또 봐도 따뜻하고 재밌습니다. 그 말없음도 너무 좋은. 아이들이 잔잔하게 웃고 있습니다요.

효석이랑 문정이 한데모임 사회를 보았습니다.
진만이가 눈물 뚝 떨어질 만치 아이들한테 혼이 나고 죄송하다고 고개숙인 일이 먼저 있었지요. 고요함을 유지해보자는 본관에서 주구줄창 뛰어서, 책방에서 넘들 책읽는데 맘에 안드는 페이지를 찢어서, 사람 몸이 나온 것을 변태라고(그럼 우리 몸이 변태냐고 따지는 아이들) 책 잘 읽고 있는 아이들을 휘저어서 혼났지요. 그래요, 그런 순간 혹 다수의 힘에 상처가 될 수도 있을 것을, 어떤 분위기였냐하면요, 지 잘못이 그런 반응까지 불러올 줄은 몰랐다, 참회한다, 그랬지요. 혼을 내는 아이들도 단지 비난이 아니라 말 그대로 따끔한 한 마디 정도였다 하면 되려나, 듣는 진만이가 참 예쁘게 받았던 거지요.
모둠방에 골고루 흩어져있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부터 앞으로 몰려가 앉더니, 나중에 돌아보는데 뒤가 휑 뚫렸습니다. 오늘은 유달리 그럴 만치 첨예한 문제가 있었거든요.
어제 결성된 모임(지들이 클럽이라 부르는)이 하나 소개되었지요. 어떤 인물들이 거기 있나 얼굴이나 보자고 앞에들 불러 세웠습니다. 인석, 재헌, 효석, 승찬, 기태, 정한, 승종, 찬종, 또 누가 있었더라...
"도대체 그 클럽의 목적이 뭡니까?"
답변을 인석이가 도맡아 합니다. 말하자면 주동자쯤인가 봅니다.
"먹을 게 있으면 잘 나눠먹고 우리가 싫은 아이들이 있으면 왕따시키고..."
"먹을 건 누구랑 나눠먹는다는 겁니까?"
"우리 클럽 애들끼리요."
그런데 앞에 선 그 식구들끼리 내분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그냥 같이 하자고 해서 왔는데..."
"그런 목적인 줄 저는 몰랐어요."
"아이 참, 야, 그게 목적은 아니지."
보고 있던 아이들이, 목적이 그러한데 그 목적에 동의하지 않으면 나와야 한다고들 합니다.
"나도 왕따를 당해봤는데..."
왕따를 시키는 게 얼마나 당사자를 아프게 하는지 경험을 내놓고 그것에 대한 자각들을 모두가 공유하면서 이 클럽을 반대하는 분위기를 만듭니다.
"왕따 당하면 정말 죽이고 싶어요."
"봐요, 왕따를 시키면 당하는 이가 이런 마음까지 든다는데 그래도 그 상처를 남기면서 왕따를 시키고 싶으세요?"
"예."
인석의 거침없는 대답입니다. 그것이 그 클럽에 대한 보다 강한 반발을 일으키고 클럽 아이들이 하나 둘 빠져 나옵니다.
"그런데도 그런 클럽에서 같이 있고 싶어요? 정말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탈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무리 속으로 넘어오고 기태, 승찬이가 마지막 순간까지 고뇌합니다. 열두 번도 더 나왔다 들어갔다 하다 마지막 순간 결국 그들도 나왔지요. 형만한 아우 없다더니 저 형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진 않다고들 승찬한테 그랬더이다. 이제 인석과 효석만 그 클럽에 남았습니다.
그때 혜린이와 다예가 '반왕따 클럽'을 만들겠다 선언합니다. 그 목적은 왕따 당하는 아이들을 보호해주고 먹을 것을 모두랑 잘 나눠먹고...(나중에 이들은 조직화 방안을 냅니다. 소곤소곤방과 1, 2학년은 혜린이 맡고 큰 아이들은 다혜가 맡는다지요. 보조교사도 셋을 둘 거랍니다. 한 샘이 벌써 가입을 했지요.)
그때 덩달아 문정이도 모임을 하나 만든다는데 '욕사모'입니다. 욕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죠. 그런데 고대로 묵살을 당하고 말았네요.
한쪽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의 지선이도 한마디 했습니다. 원교를 도와주는 모임을 만들자구요. 아침 해건지기 무렵 마침 채은이와 지선이가 보여 원교 옷 입는 것을 도와 주면 좋겠다 한 일이 있었지요.)
"두 모임을 다 가입해도 되지요?"
이제 학교에 모임이 셋 있는 겁니다. 왕따모임, 반왕따모임, 원교를 도와주는 모임.
한데모임, 정말 이런 말하기 문화라면 살만한 세상 아니겠는지요!
(그런데 우리의 석현 선수, 앞에 주욱 늘어서서 고뇌하며 분위기 한참 심각한데 끝에 선 승종에게 자꾸 물었지요. 형 왜 나왔어 하고. 고 앞에 딴짓하다 못들은 게지요. 승종이는 자꾸 좀 가만있으라는 듯 슬쩍슬쩍 미는데 석현이는 묻고 또 묻습니다. 웬만하면 가르쳐주지... 그래서 또 배꼽을 잡고 웃었더랍니다.)
다온이가 한데모임 끝내놓고 그래요, 엄마한테 말해서 여기 식구처럼 살고 싶다고. 다온의 엄마 서성희님은 아주 오래된 물꼬의 논두렁이시지요. 그 정도 긴 시간의 애씀이면 언제라도 와서 계실만 하구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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