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계자 이틀째 1월 27일 불날

조회 수 1939 추천 수 0 2004.01.30 17:56:00
< 요강을 엎으면 어떡해요 >

1월 27일 불날 저 청아한 하늘

저녁답에 6학년이 되는 덕현이가 곁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었지요.
"너는 어디서 온 거냐?"
"춘천요."
"서울에 친척이 있는 거야?"
"아니요, 아침에 춘천에서 서울 가서 서울에서 왔어요."
"어이구야, 힘들었겠구나."
그러고 보니 참 곳곳에서도 모였습니다.
대구, 부산, 서울, 영양, 문경, 부평, 일산, 광주, 안동, 춘천, 황간,
그리고 이곳 공동체 아이.
무슨 시도 대표들 같습니다.
아이들 모일 때마다
다옴(사랑이란 뜻이던가요)이 이름은 맨 마지막에 불러봅니다.
그래야 다 온 게 된다고.

열린교실 과목이 여섯 개,
그런데 아이들 적으니 사흘마다 두 교실씩 열자 하고
신화와 문학, 과학에 나눠서 신청들을 했습니다.
신화와 문학의 혜윤샘은 생의 첫 수업입니다.
얼마나 상기되어있던지...
그만큼 단단한 준비가 아이들을 신화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게 합니다.
세 신화를 들려주고 그 가운데 하나를 연극으로 만들면서
여전히 포세이돈이 좋다는 인원이를 위해 포세이돈 생일잔치도 집어넣고
과학교실을 잃어버려 들어온 혜연이,
안했음 어쩔뻔 했냐 싶을만치 신이 났고
기어코 다른 신화로 하겠다고 고집 피우던 정근이를
도움샘으로 들어간 기표가 설득해 감독일을 맡기고...
과학은 물을 찾아 떠나서
시를 안고 돌아왔답니다.

작년 한 해 이 지역 아이들을 데리고 방과후공부를 했더랬습니다.
교보생명에서 돈을 좀 보태주었지요.
그때 요 웃마을 돌고개에 사는 6년 민근이도 함께 했는데
아이들 들어오던 어제 대해리행 버스에서 만났더랍니다.
놀러 오라 했다네요.
우편물을 챙기러 대문으로 나가는데 마침 민근이 들어왔어요.
"온다 그랬는데 안오면 그렇잖아요."
아이들이 이 곳에 살고 이웃에서 놀러를 옵니다.
친구의 집은 아무리 멀어도 가까운 법이지요.
민근이는 겨울살이 가운데 뚝딱뚝딱에 들어와
톱질에 낫질에 못질에 선생이 되어주었고
좋은 의견도 내며 아이들을 도와주었답니다.
뭣들 했느냐구요,
활들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머잖아 멧돼지 사냥을 떠날 거거든요.
지난 계자 곰사냥을 위해선 방패와 창이 주류더니.
애고 어른이고 한 무데기를 이뤄
못박고 불피우고 은행도 굽고,
지나며 작업실을 넘겨다만 보는데도 재미가 다 전해지더이다.
자고 가면 안되냐 민근이도 다른 아이들도 물어오는데
잠은 제 집에서들 자라했지요.
또 하나의 겨울살이 방은 한땀두땀이었습니다.
앞치마를 만드는 중이라네요.
"예전에는 아이들이 하면 그걸 봐주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이젠 제가 제 걸 하고, 아이들이 와서 그걸 보고, 필요하다 그러면 도와주고..."
어른들을 '열 두 번도 더 달라진 자기'를 경험하게 하는 아이들.

보글보글방은 아이들 복닥복닥하지 않아
모둠방이 아니라 가마솥집에서 느끈히 할 수 있었지요.
"애들 칼질 정신 없을까 걱정했어요.
그런데 당근도 잘 썰고
이걸 하자하면 차례를 지켜가며 하고
재료는 딱딱한 것부터 넣는 거라고 왔던 놈들이 가르쳐주고..."
먹고 싶을 텐데도 넘들 주는 것부터 챙기며 참더라이다.
어떤 약속을 지켜나가는 것이 예뻤다 합니다.
호떡은 아주 가게를 차려도 되겠다하였지요.
경단도 얼마나 곱게들 빚었던지.
떡볶기는 그 화려하기가 궁중요리 못잖았지요.

'하다'는 오늘 첨으로 혼자 하루재기를 썼더랍니다.
모둠에서 그걸 읽어도 주었더라네요.
배우지 말라 말라 하는데 기어코 글씨를 배웁니다.
"지금부터 조금씩 배워야
여덟 살 되어서 읽고 쓸 수 있는 거야.
갑자기 다 배워지는 게 아니거든."
그러면서 핑 돌아 엉덩이 삐죽거리며 저만치 갑니다.
여덟 살이 되면 글씨를 가르쳐준다 하였거든요.
그래서 공동체에서 같이 사는 구영이와 구슬이는
"아니, 그러면 우리가 하다 여덟 살 될 때까지 책을 읽어줘야 해요? 으아악-"
그랬다지요.
"공동체에서 같이 키우는 '하다'가 그렇게 커가는 게 진한 느낌이데요.
이 안에서 그렇게 커가더라구요."
식구 한 샘이 그럽디다.

할 만한 사람들이 공간을 맡아서 돌보면 어떻겠냐,
한데모임에서 일을 나눠봤지요.
손 번쩍 들고 너도 나도 하자 합니다.
끝까지 모른 체하는 이는 또 모른 체하지요.
모두방을 덕현과 호준, 하다가 맡고
가마솥집은 혜연이
책방은 다영과 나현이
작은화장실은 령이(오줌이 묻어도 괘한타-괜찮다-합니다) 하겠답니다.
그런데 하다는 생각이 바뀌었다고,
"운동장에 똥도 있고... 쓰레기가 많더라구요."
그래서 운동장을 맡겠다고 했지요.
그런데 모든 일정의 끝 하루재기를 끝내고 우리의 호준 선수
잊어먹지도 않고 빗자루 들더니 방을 쓸더랍니다.
"나도 뭘 좀 도와줄까?"
"쓰레기를 저기 한 곳에 모아줄래요?"
다른 이에게 역할을 지정해 줄줄도 알고,
아이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책임감을 갖는 것에 놀랐다는 지나샘.
덕현이는 대동놀이에서 팔꿈치부상을 입어 같이 못했다 아쉬워하고.
"학교에서도 청소를 하지요,
그런데 하기 싫어하니까 일을 나누는 게 어렵습니다.
그런데 여기선 너무 자발적이예요."
학교에 돌아가 어떻게 써먹을까,
이런 움직임을 적용하려면 어찌해야 하나 생각 많다는 품앗이일꾼들입니다.

와봤던 녀석이 요강을 쓰자는 제안도 나왔습니다.
"작은 화장실이 있는데도?"
"귀찮잖아요."
"귀찮은 게 아니라 편리해서지."
"밤에 잘 안보여 엎으면?"
"청소는 누가 해?"
"아침에 버리는 건?"
지들이 구석구석을 맡아서 돌보니 청소도 남의 일이 아닌 게지요.
어다가 둘 거냐, 어떻게 쓸 거냐 얘기 많다가
그러면 그게 가장 필요하다 싶은 어린 친구들에게 묻자 합니다.
호준이가 복도에 두쟤요.
하다는 재래식 화장실이 더 편한데다
밤에 마려운 오줌은 그냥 화단에 나가 누면 그만이라 합니다.
그 틈에 다시 청소 얘기가 끼어듭니다.
"요강을 닦는 건 누가 해?"
"그러면 두지 마요."
호준이가 간단하게 정리해주었지요.

동네어른특강은 보건진료소장님 오셔서
국선도 또 나눠주셨지요.
이번 특강은 지난 계자에 오셨던 분 말고도
다른 어르신들이 새로 등장도 하실 계획이랍니다.

대동놀이에선 토끼몰이를 했지요.
어른들이 더 신이 났습니다.
애들보다 더 흥분합니다.
겁나게 몰아댑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흥이 더 넘칩니다.
"어른들의 몰입,
어른의 모범이 얼마나 중요한가 또 절감했지요.
그처럼 아이들 속에서 우리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투영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이좋아야하고 우리가 평화로워야 하며
우리가 사람되어야할 것입니다."
잘 지내자 다짐하는 샘들입니다.
뭘 하자 하지말고,
우리가 하는 걸 보여주자 합니다.

학교 살림을 돌보는 일패들은 학교 아저씨의 지휘아래
시내로 가서 산으로 가서 돌을 나릅니다.
돌탑을 쌓으려고 지난 달부터 조금씩 모아오던 참입니다.
"아이들하고 떨어지는 느낌이 별로 안들었습니다.
아이들도 같이 수업을 하지 않는다고 서먹한 게 아니라
한데모임이며 대동놀이 공부와 공부 사이에 놀기도 하고
오며가며 이름을 멀리서 부르기도 하고..."
삼촌이, 엄마가, 이모가, 할아버지가 선생님이기도 한 곳,
그 느낌을 아이들이 받는 거지요.
교사일과 다른 일이 여기서는 한가지란 걸 아는 게지요.
"똑같은 돌인 것 같지만 흘러온 것도 다르고 과거도 다르고 다 다르게 생기고..."
돌을 나르며 우리도 저마다 그렇겠구나 싶더랍니다.
일이 단순하고 반복적이긴 하나
얼음장 밑 물소리 들으며 다른 반복과는 다른 재미가 있더랍니다.
자연만한 스승이 어딨겠습니까.
어른도 배우고 아이도 배우는 이 산골의 삶입니다.

동네 할머니 한 분 달려오셨습니다.
가스를 좀 연결해 달라합니다.
열택샘이 달려갔지요.
힘쓸 일이나 전기 가스 손이 필요한 일들이면
어르신들이 예 젊은 것들 있으니 찾아오십니다.
아이들은 어르신들 만나면 제 어른인양 냉큼 인사들을 하고.
학교가 그렇게 마을의 일부가 됩니다.

"요새 아이들이 아무리 압박 받고 산다더라도
어떤 의무에서 놓여나서는
이토록 쉽게 맘을 열고 자연스런 본성을 펼칠 수 있구나..."
십 년을 준비했다는데, 얼핏 그렇게까지 준비할 게 있을까 싶더니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를 위해 훈련을 해왔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는 기훈샘.
출판일도 하고 절공부도 하고 농사도 지어봤던 그가
귀농을 생각하면서 물꼬 가까이로 와 볼까한답니다.
"저는 참 완고하게 지도하거든요, 일단 호령부터 하고,
그런데 교장샘은 가만히 보니 안그러시더라구요. 다른 샘들도 그렇고."
오늘 들어오신,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진익샘은
학교로 돌아가면 어찌할까 생각을 많이 하신답니다.
귀한 방학을 그래도 아이들을 위해 이런 곳에 와서 고생하는 사람들 보면
(지나샘은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지요)
마음이 참 좋습니다.
배우겠다 나서는 그 걸음이 고맙습니다.

작은 잡지에다가 어른이 읽는 동화를 이어달리기로 싣고 있습니다.
이 달 원고 마감이 27일이니 오늘이었지요.
틈틈이 간장집에 올라와 글을 쓰고
어스름녘 두어 샘이 읽어봐주고
다시 잘 다듬어 보냈습니다.
예전엔 계자동안 다른 모든 일을 중단하고
계자 그것에만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이젠
우리 공동체 삶의 한 부분이 학교일(물론 가장 중심이지요)이고 보니
다른 일상들도 변함없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속에 우리 아이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살아온 것처럼
이곳의 한 부분이 되어있습니다.
그저 고마울 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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